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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May 19. 2021

나는 늘 같은 자리에 서 있지만, 제자리걸음은 아녜요

낡아버린 매트에 대한 고찰



올 한 해를 되돌아보니 일은 일대로 안 풀렸고, 코시국 덕에 나의 롱디는 점점 더 롱롱디가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쉬지 않고 뭔가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룬 게 하나도 없지? “이 나이 되면 차도 있고 집고 있고 다 있을 줄 알았는데” 흔하디흔한 그 대사가 입가에서 맴돌았다. 왜 꼭 이럴 땐 주위에 잘 나가는 사람들 소식만 들리는지, 날짜를 보고 놀란 마음은 내게만 또 화살을 연신 쏘아댔다. 나만 요로고 사는구나. 이럴 때 보면 마음은 참 빠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마음이 또 빛도 안 들어오는 저 아래 깊은 곳까지 구덩이를 파 놓은 것이다.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왜 맨날 제자리걸음일까. 이상하게 억울했고, 억울해서 속상했다.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빨래하러 오늘도 요가원에 갔다. 마이솔 수련을 하러 가면 여기저기 슝슝- 이것은 정말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정말 매트 위에서 날아다니는 고수들이 천지다. 오늘 베베꼬인 마음 때문인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그 광경에 “저 사람들처럼 날아다니는 것까지 바라진 않아도, 수련은 좀 더 깊어지고 있는 거니!” 위험한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구덩이 끝까지 내려간 마음이 다시 바닥을 툭 치고 올라왔다. 에휴 남은 남이고 나는 나지. 누가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알 게 뭐야. 내 수련이나 하자며 매트를 펼쳤다. 



작년 이맘때쯤 오래 쓰겠다고 나름 고르고 골라서 산 매트였는데, 어느새 매일 하는 다운독자세 위치를 따라 매트가 낡아져 손발 자국이 도장처럼 새겨져 있었다. 언제 이렇게 낡았지? 근데 나 그동안 진짜 열심히 수련했나 봐. 한 게 없긴 뭐가 없어! 이렇게 매트가 낡아 버릴 만큼 열심히 수련했는데! 스스로 쌓아 올린 자기학대의 벽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오늘의 수련은 시작도 전에 나를 또 이렇게 위로하는구나. 그래서였을까 오늘은 매트 위에서 감사하는 마음이 자꾸 올라왔다. 
 

특히 요즘 한창 애쓰고 있는 드롭 백 컴 업을 할 때였다. 바르게 선 자세에서 몸을 뒤로 말아 접어 내려가며 손으로 바닥을 터치하는 걸 드롭 백, 그대로 손끝을 세워 다시 바르게 선 자세로 일어나는 걸 컴 업이라고 하는데, 워낙에 고난도라 둘 다 현생에서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세들이었다. 그런데 이걸 내가 매일 하고 있다고? 감탄 섞인 의문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심지어 얼마 전부터는 드롭 백이 되기 시작했고, 요즘은 컴 업은 또 언제 될까 기다려지는 것이다.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저 꿈의 자세였는데 어느새 코앞까지 와 있다. 


 

양발로 서 있어도 쉽게 휘청였던 내가 이제는 양발이 아닌 거꾸로 머리 서기를 한 채로 가부좌를 트는 파드마도 만들고, 머리 서기에 파드마를 한 채로 좌우로 비틀기까지 하게 됐으니 말이다. 마음의 파도는 감사함에서 미안함으로 한 번 더 이어졌다. 그동안 대체 뭘 했냐며 스스로를 타박하며 요가원에 왔는데, 낡아버린 매트를 보니 왜 그렇게 나를 못살게 굴었나 부끄러웠다. 하루아침에 엄청난 아사나를 하게 변할 순 없어도, 어제와 오늘 사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보이진 않아도, 분명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낡아버린 매트가 말해주고 있었다. 


요가 수련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세상을 반으로 접고 접고 접고 또 접으면 매트 위가 되는 게 아닐까. 그 세계 위에 선 나는 하루아침에 성공하고픈 욕심이 생기기도 하고, 남들이랑 쉽게 비교하기도 하고, 매일 연습해도 아무것도 안 되는 것 같아 좌절하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미워지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안아주는 사람 또한 내가 된다. 어느새 낡아버린 매트가 그동안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건네 왔다. 너는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러니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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