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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Jul 04. 2022

[쓰는 요가] 매트 위에는 확실한 뭔가가 있다


바빴다. 정말 쓸데없이 바빴다. 매주 한편씩은 그래도 글을 써야지 했는데 어쩌자고 한 달이나 훅 지나가 버렸는지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또 한 번 놀랐다. 본업과 요가강사 사이를 오가며 수련하고 수업하고 일하고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훌쩍 지나갔다. 감사하게도 그사이 요가 수업이 늘어났다. 그리고 7월엔 또 하나가 늘어난다. 그냥 내 수련 비용을 벌 수 있을 만큼만 요가 수업으로 벌어보자 하던 게 시작이었는데 다이어리에 적어둔 요가 수업 시간표를 보며 언제 이렇게 늘어났지 싶어 깜짝 놀랐다. 



우연히 대강 수업을 갔다가 회원님들이 좋아한다며 원장님이 수업을 맡아달라고 하셨고, 또 한 곳은 좋아하는 선생님께서 자신이 그만두는 자리에 추천을 해주셨다. 이걸 내가 다 맡을 수 있을까 처음부터 생각했다면 아예 시작도 못 했을 텐데, 회원님들이 좋아한다는 말에 기뻐서 잠깐의 고민 후에 승낙을 해버렸고, 또 좋아하는 선생님이 꽤 규모가 있는 요가원에 추천을 해줘서 경력이 짧은 내가 언제 또 이런 자리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겠나 싶어 하겠다고 해버렸다. 


그사이에 고민은 본업이 되어버렸다. 대학 졸업과 함께 지금까지 내 인생의 반평생을 함께 해온 직업인데 그 반평생을 함께 하며 사실 나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래서 시작한 요가였고, 그래서 위안받았는데, 요가에 빠지면 빠질수록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진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수련 루틴을 마치고 수업하고 그 사이사이 나를 위해 썼던 시간이었는데, 본업을 병행하고 나니 내 하루 사이사이에 시도 때도 없이 돌멩이가 던져지는 기분이다. 잔잔한 호수 같던 내 마음이 불시의 일들로 요동쳐야만 했다. 내일 또 출근을 앞두고 아 새벽에 수련 갔다가 아침에 요가 수업 갔다가 집에 와서 씻고 빨리 또 출근해야 하는데 수업에 수련은 스트레스가 안 되는데 출근은 왜 이렇게 스트레스가 되는지. 



문제는 돈이다. 요가강사의 수입이라는 것은 내가 배우는 입장이기만 할 때는 전혀 몰랐던 아주 작고 귀여운 것이었다. 이것으로 대출금에 각종 공과금, 생활비를 충당하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아침저녁으로 수업을 풀로 채우지 않는 이상 말이다. 하지만 또 수업을 풀로 채우면 내 수련을 못하게 되겠지. 그래 인생 무엇 하나 쉬운 것은 없다지만,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네. 그래 대기업 때려치우고도 자기 꿈 찾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뭘! 근데 막상 본업을 그만두고 후회하면 어떡하지?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리니 인생을 살면서 내가 미치게 행복했던 순간들이 과연 얼마나 있나 싶은 반문이 들었다. 미치게 힘들었던 순간들도 지나고 나니 별거 아닌 게 되어버린 것처럼, 미치게 행복했던 순간들도 별거 아닌 것들로 무뎌진 걸까. 행복에 대한 답이 참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뭐가 제일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어처구니없게도 요가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수련의 재미에만 푹 빠져지나다가 수업하고 나니 또 전혀 예상 못했던 수업의 재미도 나날이 커져간다. 최근 들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하나 꼽으라면 얼마 전 요가 수업 때였다. 요가를 처음 했을 때 뚝딱이 시절의 내가 생각나서 회원님들께 핸즈온을 많이 해드리는 편인데, 안되는 자세에 반사적으로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잔뜩 경직된 상태에 손을 닿으면 그 마음의 경직도 손을 타고 전해진다. 꼿꼿한 몸이 내 손길을 거부하는 게 느껴진다. 그럴 땐 호흡을 조금 더 편안하게 하라는 말씀을 드릴 뿐인데 그러다 보면 그 반사적인 경직이 사르르 사라지는 순간이 느껴진다. 몸인지 마음인지 조금은 흐물흐물해진 것들이 이제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있구나, 이제 나를 믿어주는구나 느껴지는 순간! 그 어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전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의 긴장감, 경계심 같은 것들이 사르르 사라지는 순간을 손을 타고 느낄 수 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진상 회원님들도 있다지만 다행히 아직은 수업하면서 그렇게 진상이라 느껴진 분들은 없었다. 오히려 소소한 행복들이 가득했다. 매번 오전수업에만 나온다던 회원님이 우연히 내 수업을 듣고 저녁 수업 시간에 꼬박꼬박 나와주실 때의 행복이라든가, 수업이 끝나고 예상 못 한 선물들을 하나둘 손에 쥐여주는 회원님들의 마음을 마주할 때의 행복이라든가, “선생님 유투브는 없어요? 있으면 보고 싶은데”라고 해주셨을 때의 행복이라든가, 함께 탄 엘리베이터에서 어느 회원님이 너무도 수줍게 “선생님 수업 너무 좋아요”라고 고백했을 때의 행복이라든가. 그 한마디에 그날은 집에 오는 내내 마음속에 달이 뜬 것처럼 어두웠던 맘속에서 뭔가 차갑고 뜨끈한 것이 한참을 덩실거렸다. 


어쩌자고 요가는 별거 아닌 행복을 내게 자꾸 안겨주는지! 스트레스로만 점철된 본업에서는 호흡 안에서 편안하게 머무르는 순간이 과연 있긴 했었나. 그런데 매트 위에는 확실한 뭔가가 있다. 내 손길에 느껴지던 마음의 빗장이 사르르 풀리는 순간, 수련하며 안 될 것 같은 아사나에도 도망가지 않았구나 겁내지 않았구나 아무도 모르겠지만 마음이 자란 나를 발견하는 순간, 핸즈온을 해주신 선생님이 고생했다는 말 대신 어깨를 툭툭 쳐주실 때 믿음직스러운 큰 힘이 나를 응원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순간, 손에도 마음이 있다는 걸 알려준 순간... 많은 순간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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