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의 팬도 아닌데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컴백했던 지오디 영상이 자꾸 떴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로 시작되는 지난 노래가 이제와 귀에 꽂힌 건 정말이지 남들 다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단 사실을 깨닫고서였다. 그렇다,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다. 그래서 나는 그 가난을 참 싫어했다. 그리고 그 가난의 씨앗이었던 아빠를 나는 참 미워했다.
아빠는 아주 고지식하고, 고집불통인, 유교 사상으로 점철된, 엄마를 힘들게 하는, 가족에겐 무뚝뚝한, 1부터 100까지 나와는 맞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학교에서 가족 신문을 만들어오라는 뻔하디뻔한, 귀찮은 숙제를 내줄 때면 그런 모습은 쏙 빼놓고 내가 적는 말은 늘 정해져 있었다. 태권도 7단, 유도 2단, 검도 2단, 합기도 4단, 총합이 15단인 태권도 관장. 그런 소개를 보면 선생님이고 친구들이고 ‘우와’ 하며 우리 아빠를 대단한 사람인 양 생각했다.
하지만 내 기억엔 그놈의 태권도였다. 아빠는 아무런 돈도 도움도 안 되는 태권도 협회의 작은 자리를 참 명예스러워했고, 어느 날엔가부터 하나둘 떨어져 나가는 태권도 도장의 회원 수와 반비례로 무섭게 늘어나는 빚과 무관하게 끝까지 태권도 도장을 지켰다. 도장 월세를 못 내서 쫓겨나야 했던 극한의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포기를 못 했다. 어린 날의 나는 돈도 안 되는 도장은 그냥 빨리 때려치우고 가족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속으로 많이 분노하기도 했었다.
물론 가난만이 그를 미워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나는 아빠와 자주 싸웠고, 멀어졌고, 성인이 된 후로는 인연을 끊고 살았다.
그때의 나는 다가온 그의 죽음보다도 암 투병비가 두려웠고 그런 생각을 하며 난 참 나쁜 년이구나 놀라움에 먹먹해지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아빠는 암 선고를 받고 난 후, 한 달도 되지 않은 채 세상을 떴다. 가족에겐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아니었지만, 거짓말처럼 아빠의 장례식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나보다도 슬퍼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며 또 생각했다. 나는 참 나쁜 년이구나. 왜 안 슬프지?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말하면 우리의 결말이 나쁘지 않았다. 더 이상의 나쁜 기억도 없었고, 죄책감으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 좋은 기억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잊고 살아온 아빠를 거짓말처럼 요즘 수련하며 자주 떠올린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닮고 싶지 않은 그를 실은 내가 참 많이 닮았다는 걸 수련하며 깨닫는다. 그놈의 태권도가 뭐라고 볼멘소리를 했던 지난날이 무색하게, 나는 요즘 그놈의 요가가 뭐라고 라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나에게 요가는 어느 날은 참회의 시간이 되고, 어느 날은 응원의 시간이 되고, 어느 날은 위로의 시간이 되고, 어느 날은 행복의 시간이 된다. 매트 위에 서면 나를 괴롭히다가도 결국 나밖에 없다고 나한테 또 의지하고, 몰아세우다가도 화해하고, 이만하면 됐다고 안아주기도 하고, 왜 그랬을까 반성하기도 하고, 매트 밖의 시간과 매트 위의 시간이 뒤엉켜 결국엔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된다. 그래서 이 요가를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인간의 상상이란 참 신비한 영역이라 보지도 못했던 장면이 머릿속에 강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대체로 그 장면은 빚쟁이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는 텅 빈 태권도장에서 혼자 수련했을 그의 모습이다. 어쩌면 아빠가 놓지 못했던 건 태권도장의 자리, 태권도 관장이란 직함, 도장을 가득 채우는 아이들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수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요즘에서야 든다.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자신을, 스스로도 미운 자신을, 그럼에도 스스로를 응원하는 자신을 만나며, 그렇게 또 위로받지 않았을까. 기댈 곳이 거기뿐이진 않았을까. 어쩌면 아빠에게는 태권도가 유일한 빛 같은 게 아니었을까.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아도 될 마음이라며 묵묵하게 혼자 수련을 했을 그를 생각해보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된다. 그 텅 빈 수련실을 무슨 마음으로 채우고, 무슨 마음으로 수련했을지, 무슨 마음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지, 아주 조금 짐작이 간다.
그렇게도 싫던 아빠의 무식한 고집이 이제와 참 외로웠을 거란 생각이 들고, 그 외로운 시간에 태권도가 있어 다행이었겠다 싶다. 그 무식했던 고집이 실은 아빠의 수련이었다고 생각하니,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미움이 이해의 길로 한 발짝 방향을 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