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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 am a stem cell Jul 27. 2020

겉모습은 변한 것 같지만 정신은 그대로인 회사생활

조직문화 변화를 위해 집중해야 할 영역은?

매일 아침 5시 55분, 개짖는 소리 알람에 깜짝 놀라 눈을 뜬다. 알람을 끄고 밤새 뻣뻣해진 관절들을 움직여 일어나 출근준비를 한다. 세면대 앞에서 세수하다 문득 거울을 봤는데 오늘은 왠지 얼굴에 팔자주름이 더 깊어 보인다. 눈가의 주름도 더 많아지고 짙어진 것 같다. 흰머리는 또 언제 이렇게 많아졌는지. 세수하며 매일 마주하는 얼굴인데 유독 세월의 흐름이 더 크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통근버스에 앉아 SNS 어플을 열었는데 8년전 과거의 오늘 사진을 보여준다. 세면대 앞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며 느낀 세월의 흐름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매일 크게 변하지 않는 하루를 지내는 것 같은데 어느 날 뒤돌아보면 크게 변한 것들에 놀라곤 한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한 변화에 놀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변하지 않아서 놀라운 것들도 있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흰 머리카락이 검은 머리카락을 뒤덮으려 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하지 않고 놀고 먹는 꿈을 꾸는 철부지 같은 나의 생각들이 그렇고, 때때로 화를 참지 못하고 여전히 버럭버럭 화를 분출하는 나의 모습들이 그렇다. 사람 참 변하지 않는다.

변해서도, 변하지 않아서도 놀라는 건 나에 대해서도 그렇고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다. 아직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직장생활에서도 그렇다. 처음 일을 시작해서 한 곳에서만 있다보니 회사에서 변한 것들과 변하지 않은 것들이 눈에 보인다. 나의 변한 모습과 그대로인 모습을 보며 놀라듯 회사생활에서도 놀라운 모습들이 있다.

회사에 입고가는 옷

1990년대 후반 악동같은 이미지의 그룹 DJ DOC의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었다.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여름교복이 반바지라면 깔끔하고 시원해 괜찮을 텐데!” 청바지는 회사에 적합한 복장이 아니었고 학생들 교복도 제복같은 느낌이 강했던 시절이었다. 반항끼 가득한 모습으로 자유로움을 노래하던 그룹이 노래에 담을 만한 사회의 모습이었다.

저 노래가 나온 지 약 10년쯤 지나서 회사에 처음 들어갔다. 그 때 난 어떤 옷을 입고 회사에 갔을까? 신입사원 교육을 받을 땐 정장을 입었지만 교육 이후엔 노래 가사처럼 청바지를 입고서 출근을 했다. 물론 선배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그래도 넥타이까지 맨 정장을 입던 모습은 거의 사라지고 난 뒤였다. 다만 여름에 청바지에 면티 한장만 덜렁 입고 갔더니 당시 실장님이 혀를 끌끌 차며 “옷이 그게 뭐냐?”라 하시긴 했다. 그렇다고 그런 복장으로 출근을 못하게 하지는 않았다.


한겨레(반바지를 입고 출근하는 회사원들)


  
그로부터 또 10여 년이 지난 요즘 난 어떤 복장으로 회사에 갈까? 20여 년 전에 반항아들이 노래했던 반바지 교복! 바로 그 반바지를 입고 회사에 출근한다. 지난 해인가 회사에서 틀에 갇힌 문화에서 벗어나자며 복장 자율화를 선언했다. 여름엔 반바지를 입어도 된다고 했을 때 괜한 짓을 한다 생각했다. 윗사람들 눈치를 보는 직원들이 어찌 감히 반바지를 입고 출근하겠는가.

그런데 요즘 직원들은 시원하게 반바지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도 반바지를 선뜻 입지 못했다. 상사의 눈치보다는 나 스스로의 틀을 깨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이 셔츠나 남방을 고수할 때 나름 면티 한장 걸치고 출근하던 나였는데 10여 년이 흐르고 나니 나도 옛 선배들처럼 되어가는 것일까? 그럴 수는 없다! 조금 어색하지만 반바지를 꺼내 입고 출근을 했다. 한번 틀을 깨고 나자 이젠 언제 반바지를 불편해 했나 싶다. 시원하고 좋기만 하다.

유연해진 출퇴근 시간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는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고 점차 정착되기 시작하던 때였다. 갓 입사한 내게는 주 5일 근무가 당연한 것이었지만 당시 회사에겐 큰 변화였던 것 같다. 제도가 시행된 지 2년 여가 지났는데도 회사에선 특정 년차 이상의 직원들에게는 순번을 매겨서 토요일에도 교대로 출근을 하게 했다. 여기에 해당되는 직원들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회사에서 하라니까 어쩔 수 없이 토요일에도 출근을 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토요일에 나와서 일을 더 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오전에 잠시 일하는 척 하다가 점심 식사 후 모여서 게임을 하러 간다던가 함께 운동을 하곤 했다고. 회사는 괜한 우려와 관성 때문에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져도 곧바로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요일 교대 출근은 사라지게 되었다. 회사도 토요일에 출근해봐야 전기요금만 나간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 아닐까 싶다.

요즘은 어떨까? 상당히 늦은 감이 있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도 드디어 1일 노동의 시작과 끝 시간을 조금이나마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원래는 8시 시작 5시 종료였는데 이제는 7시~10시 사이에 출근을 하면 되고 4시부터 퇴근할 수 있다. 왠만한 회사들에게는 이 역시 구닥다리 근무제도겠지만 전통적인 제조업 회사에선 새로운 시도다. 이 역시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장려하겠다는 의도에서 시행되었다.

일찍 출근, 일찍 퇴근을 선호하는 나는 가끔씩 늦게 출근하는 직원들을 보면 놀란다. 당당하게 지각하는 줄 알고. 한편 오후 4시에 당당하게 사무실을 나서는 나를 보면서 놀라는 직원들도 있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 퇴근하는 모습이 그들에겐 너무나 어색한 것 같다. 이 근무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좀 넘게 지났는데도 느지막히 출근하는 직원들과 1시간 일찍 퇴근하는 직원들을 보며 여전히 어색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새로운 것에 익숙해지는데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대로인 상명하복 구조

기술과 사회의 변동 속도와 폭이 점점 더 빠르고 커짐에 따라 미래를 예측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몸집이 거대해진 조직은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그리 적합하지 않다. 의사결정 속도가 너무 느리고 결정된 사안에 대해 조직원들이 공감하기 어려워 추진력을 얻기 쉽지 않다. 게다가 거대해진 몸집 만큼이나 조직은 관료화되어 조직의 역동성을 갉아먹는다.

과거에는 미래에 대비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행해 나가는 것이 능력이었지만 요즘엔 트렌드를 읽고 변화에 얼마나 민첩하게 대응하는지가 능력의 기준이 되었다. 회사는 이를 위해 나름대로 의사결정 구조도 단순화하고 직원들에게도 책임과 권한을 부여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하지만 최고 결정권자의 제왕적 권위가 여전한 구조 아래서는 조직문화는 왠만해선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전 보다는 사용할 수 있는 예산 범위가 조금 더 늘어났고 결재를 받아야 하는 임원들 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결국 중요한 의사결정은 최고 결정권자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중간에 아무리 부사장 사장이 있다고 해도 그들도 결국 한 사람이 결정해 주기를 기다리곤 한다. 이런 구조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항상 위를 바라보며 결정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는 모습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상위 결정권자의 의중을 잘 알아서 적절히 대응하는 것을 능력으로 쳐 주는 모습도 여전하다. 옳은 소리를 하기보다는 상사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아랫 사람들’. 조직문화를 바꾸자고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는 팀에서는 복장도 자유롭게 하고 출퇴근 시간도 유연하게 하면서 창의성을 발휘해 보자고 권한다. 하지만 여전히 공고한 상명하복 구조 안에선 직원들만 고통스러울 뿐이다.
 

꼰대의 발견 책표지(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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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는 영원하다

한 때 ‘라떼 이즈 홀스 latte is horse’라는 댓글과 해시태크가 크게 유행했다. ‘나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들의 옛이야기 시전 방식을 풍자하는 말이었다. 내가 신입사원일 때도 꼰대는 있었고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꼰대는 있다.(그 꼰대가 나일 수도 있겠다) 다만 다행인 것은 나때는 꼰대들의 꼰대짓을 그냥 견뎠다면(앗! 나때는 말이야~) 요즘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요즘엔 꼰대짓이 과거처럼 노골적이지도 만연하지도 않다. 만화에서부터 블로그, 책,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미디어에서 하도 꼰대와 꼰대짓에 대해 비판적이다 보니 어디에나 존재하는 꼰대들이지만 자신들의 정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먹이를 노리고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있다가 달려드는 고양잇과 동물들처럼 발톱을 세우고 ‘나때는 말이야~’를 발사하곤 한다.

사실 꼰대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권위주의적 사고와 자기 경험의 절대 우월성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나이를 가리지 않고 꼰대가 된다. 윗 세대 꼰대들의 꼰대짓을 교훈삼아 더욱 훌륭한 젊은 꼰대가 탄생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후배에게는 꼰대짓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 경험과 지식에 매몰되다 보면 결국 편협한 시각을 갖게 되고 꼰대로 변해갈 수 밖에 없다.

겉모습이 바뀌면 정신도 바뀔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차원에서도 적응하고 대응하기 위해 일하는 문화가 기존과는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회사도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이렇다할 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는 듯 하다. 복장도 바꿔보고 출퇴근 시간도 바꿔보면서 겉모습은 바뀐것 같지만 근본적인 조직의 상명하복식 운영방식이라는 정신은 그대로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엔 회사에서도 직원들에게 정신분열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기업의 한 팀에게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것처럼 일하라고 한다든지, (의사결정 구조는 여전히 하향식인데) 자율성을 보장해 주었으니 책임을 지라든지 하는 요구를 하곤 한다. 변화조차도 피라미드의 맨 꼭대기 사람부터 시작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정신분열적이다.

겉모습을 바꿔서 내면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난 반대의 경우가 더 맞는 방향일 것 같다. 사실 내면이 혹은 정신이 변한다면 겉모습은 변해도 그대로여도 변화는 자연스럽게 찾아올 것이다. 물론 거대한 조직에서 이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정신분열적 노력을 하며 10년을 보낸다면 아마도 내가 몸담고 있는 이곳은 10년 후 미래에는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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