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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Feb 18. 2021

집으로 가는 길

가족을 위한 일

“용재야!(가명)”     

짧은 외침이 들려 방청석을 돌아봤다. 할머니 한 분이 급하게 몸을 웅크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외친 듯했고, 법정의 정적을 깬 자신의 목소리에 스스로도 놀란 것 같았다. 막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구치소 직원들에 의해 법정 밖으로 퇴정하는 중이었다.     

 

40대 초반의 피고인은 이미 수차례 교도소 생활을 했고, 오늘도 어김없이 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는 외침이 있던 방향으로 돌아보지 않았다. 어쩌면 돌아볼 수 없었으리라.     


설 명절을 앞두고 있는 재판이었다. 이런 날만이라도 아들 얼굴을 보고 싶었을까? 노모는 두려운 마음으로 낯선 법정을 찾았지만 자식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어미의 부름에도 돌아보지 않은 자식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부모에 대한 죄책감이었을까? 나를 이렇게 키운 것에 대한 원망이었을까? 나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건 이 선고로 인해 그가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설 명절.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부모를 그리며 고향을 찾아오는 시기인데, 설을 앞둔 법정 풍경은 아름답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법원에서 견학 담당 업무를 하던 시절. 모 공기업으로부터 법정을 방청시켜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사내에서 부패방지 교육을 하고 있으니, 부패범죄 사건을 보여달라고 했다. 마침 회삿돈을 빼돌린 업무상 횡령 사건의 재판이 있어서 안내를 했다. 법정에 들어서자 마침 피고인이 최후 발언을 하고 있었다. 30대 중반 정도 나이가 되어 보였는데 카키색 수의를 입고 있었다. 즉 그는 구속상태였다.      


“우리 애가 아직 유치원생인데, 제가 멀리 해외로 출장 간 줄 알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속이 너무 길어지면 애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두렵습니다. 아빠를 찾을까 봐 겁이 납니다. 제발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피고인은 눈물을 떨구며 말했다. 방청석에서 한 젊은 여성이 그 모습을 보며 같이 흐느꼈다. 부인인 듯했다. 이런 상황에 나는 피고인에게 부인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김 조카를 만나기 전, 배우자가 없는 피고인이 구속되어 초등학생인 딸이 보육원에 맡겨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은 피고인이 구속되어 그 가족들의 생계가 곤란할 경우,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일정기간 생계를 지원한다. 그러니 피고인이 구속된다고 해서 당장 가족들이 밥을 굶지는 않을 거다.     


재판을 마치고 법정을 빠져나왔다.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사건의 내용을 설명한 후 덧붙였다.   

  

“회삿돈에 손을 대면 횡령한 돈은 당연히 물어줘야 하고, 회사에서는 해고당하겠지요. 소득이 없어지니 대출금을 못 갚게 되어 집은 경매로 넘어가고 가족들은 살던 집에서 쫓겨날 겁니다. 경제적으로만 힘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만약 구속된다면 아이한테 부모의 장기간 부재를 뭐라고 얘기할 건가요? 당장은 출장 갔다고 얘기한다고 해도 구속기간이 길어지면 또 뭐라고 할 건가요. 아이가 부모가 죄지은 걸 알게 되면 어떨까요. 주변 사람들마저 알아서 범죄자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이라도 하면 또 어떻고요. 좋은 집에서 살게 하고 좋은 학원 보내는 것만 가족사랑이 아닙니다.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면 죄짓지 마세요.”     


가족을 위한다는 것이 때로는 대단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죄짓지 않고 떳떳하게 사는 것. 부르면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 형사법정에 있으면 이런 너무 당연한 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게 되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손에 들린 것이 묵직한 돈 봉투가 아니라 고작 통닭 한 마리일지라도,

집으로 가는 그 길 위에서 소소하지만 안전한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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