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회 Feb 20. 2021

화분

사무실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다음 주 재판이 잡혀있는 피고인이었다. 어머니 뻘 되는 아주머니(또는 할머니)였는데 이미 재판을 두 번이나 불출석한 상태였다. 재판이 있는지 몰랐다고 재판을 며칠 늦춰 달라고 했다. 희귀병을 앓고 있어서 병원에도 종종 다녀서 집에 없는 날이 많다고도 했다.     


죄명이 ‘야간 주거침입절도’였다. 이 화려한 죄명은 간단히 말해서 밤에 남의 주거 공간에 들어가서 물건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냥 도둑, 절도범의 죄명이 이렇다.


사방에 CCTV가 설치된 세상이라 요즘은 딱히 대도라고 할만한 사람들이 없다. 도둑은 그냥 잡범이다. 경제적으로 빈한하고 의지할 데도 없는 사람들. 그래서 나는 절도범을 동정하는 편이다. 그들 삶에는 빛이 별로 없다.


아주머니가 가지고 나온 물건이 ‘화분’이었다. 5만 원짜리 화분 두 개, 20만 원 정도 하는 화분 하나. 명품백이라도 하나 훔쳐 나왔으면 밉기라도 했을 텐데. 오히려 왜 화분을 훔쳤나 궁금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해서 꽃 살 돈은 없는데, 꽃을 좋아해서 키우고 싶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훔친 식물들이 자신의 희귀병에 좋아서였을까.


이런 경우 동정심 많은 직원이라면, 그 동정심을 발휘해서 판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재판 일정을 한 달쯤 늦춰달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이 그들을 진심으로 위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동정심에 앞서 본인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주는 게 중요하다.


“아주머니, 재판이 있는지 몰랐다고 해서 재판에 안 나온 것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지 않아요. 법원 우편물은 특별 등기라 집배원이 세 번을 찾아가요. 문 앞에 연락 달라고 노란 딱지도 붙여놔요. 재판이 있는 걸 몰랐다는 건, 그걸 무시하고 우편을 안 받으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법원에도 성실히 주소 신고를 안 하셨다는 게 돼요. 일반적인 관공서와 다르게 법원은 그런 사람을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해요. 그럼 소재가 불분명한 사람을 재판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경찰을 보내서 잡아오라고 하겠지요. 형사재판은 내가 몰랐다고 해서 책임이 없어지지 않아요.”     


아주머니는 자신이 희귀성 질병이 있어서 종종 병원에 다니고 몸이 좀 안 좋으니 재판을 빠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진단서나 치료받은 자료를 보내주면 재판 일정에 참고해 보겠다며, 형사 재판을 이전에 받아 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아주머니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더 재판이 무섭고 나오기 싫었겠지. 재판에 나오시라고 설득했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형사 법정에 올 일이 잘 없어요. 인생에 정말 큰 이벤트지요. 친구랑 약속처럼 전화 한 통으로 쉽게 바꾸고 미룰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에요. 그보다 빨리 재판받아서 잊고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주말에 푹 쉬시고 컨디션 관리 잘하셔서 가급적 빨리 재판받으세요.”     


아주머니는 가능하면 나오겠다고 했다. 그 화분 하나가 뭐라고 사람을 이렇게 두렵고 비참하게 만드나. 죗값은 받아야겠지만, 법정에 나온다면 그분께 화분을 하나 선물해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으로 가는 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