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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Dec 31. 2021

이름 없는 사람

용역 내지 미화 직원이었던

올해 여름의 어느 날, 출근했는데 쓰레기통이 바뀌어 있었다. 보통 우리 직원들은 A4 박스를 쓰레기통처럼 쓰고 나 역시 그러했는데, 내 자리에 깨끗한 플라스틱 쓰레기통이 있었다. 청소하시는 분이 위치를 착각하여 다른 사람의 쓰레기통을 내 자리에 잘못 뒀나 하는 의심을 했다. 쓰레기통의 주인이 내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간 걸로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됐다.


새벽에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으니 미화 직원분이 내 자리로 오고 계셨다. 내가 묻기도 전에 쓰레기통이 마음에 드냐고 하셨다. 물품 부서에서 쓰레기통을 받았는데 이 건물 안에 아는 직원이 두 명뿐이라 그 둘을 바꿔주었다고 했다. 우리 건물에 직원이 180여 명 되는데 내가 그 영광의 두 명에 드는 줄도 모르고 괜한 걱정을 했던 것이다. 아주머니가 이 건물에 근무하신 지가  20년이 넘었는데 아는 직원이 두 명 밖에 안 된다고 하니 쓸쓸한 마음도 들었다. 은퇴 2년 남으셨다는데 퇴직할 때 선물이라도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전, 아주머니가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신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신규 직원으로 처음으로 법원에 발을 들였을 때도, 승진 발령으로 수년간 다른 곳으로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도 이 건물 2층을 지키고 계셨다. 지금은 그때보다 몸이 많이 왜소해졌다. 정년이 2년 남았지만 허리가 아파서 수술을 해야 한단다. 그제야 뒤뚱뒤뚱 걷는 게 보였다. 일찍 그만두게 됨에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미화 직원 중 팀장님은 새벽 4시 반에 나온다. 다른 아주머니들도 대개 새벽 6시 전에 출근해서 청소를 한다. 출근 시간을 아는 건 나도 그 시간에 출근하기 때문이다. 6~7년 전에는 용역 직원 신분으로 최저시급 정도를 받았다. 팀장은 120만 원, 다른 분들은 110만 원 정도.. 대중교통도 다니지 않는 새벽에 출근해도 용역 회사에 떼이고 받는 돈이 고작 그 정도였다. 신분도 불안정했다.


이번 정부 들어 미화 직원들을 용역이 아닌 공무직 직원으로 직접 고용하게 되었고 최저시급이 오르면서 급여도 자연스레 올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면이다. 그럼에도 직원들 대부분은 이분이 사라져도 모를 거다. 직원이라고 했지만 사실 인사발령문에 잉크 한 방울 찍히지 않는 공무직이기 때문에.


아주머니의 연세가 있으시니 당뇨 있는 사람한테 괜히 단 걸 사드리는 실수를 할까 봐, 어설픈 센스로 선물을 고르기보다 직원들이 떠날 때 주는 전별금을 준비했다. 직접 전하기 부끄러워 부서에서 전달하는 선물에 끼워 보냈는데 나를 찾아오셨다.


좋은 일 있으면 연락하라며 연락처와 이름을 알려주셨다. 처음으로 그분의 이름을 알았다. 자신이 20년 넘게 근무한 평생직장과 같은 곳에서 수많은 직원들 사이에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사셨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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