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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회 Mar 12. 2021

곁에 있는 사람

가족이라는 이름

신입 때 새벽 일찍 출근했다. 일은 많은데 요령이 없으니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사무실에 도착하면 아직 6시 전이었다. 당직자를 깨워서 사무실 문을 열었다. 밤 12시에 퇴근했으니 그 당시 법원 문을 여는 사람도, 잠그는 사람도 나였다. 그 생활은 6개월 넘게 했다.     


새벽에 일찍 나오니 청소용역 아주머니들과 긴 시간 마주쳤다. 아주머니들도 일찍 나오셨다. 원래 문을 여는 사람이 그분들이었는데, 내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바뀐 것이다.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고 있으면 아주머니들이 청소를 하며 내 자리로 오셨다. 그분들이 얼마나 부지런히 일하시는지 자연히 보게 되었다. 물론 아주머니들도 그런 나를 보고 계셨 보다.     

새벽에 졸음을 쫓으려고 세수를 하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물었다.

“공익이에요?”

“아니요. 직원인데요.”

내 입장에서는 질문 자체가 황당했다. 그런데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내가 황당했던 것 같다. 9시 칼출근이 메리트인 공무원이 매일 자신보다 먼저 출근했으니. 당시 아직 20대 중반이었고 나이에 비해 어려 보였기에 종종 직원들에게도 사회복무요원(옛 공익요원)으로 오해를 받긴 했다. 상황이 이러니 아주머니도 내가 특수한 형태의 군 복무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셨을 수도 있겠다.      


직원이란 걸 알고는 자기 아들도 공무원 준비하고 있다며 친근감을 표현했다. 어찌 공부했는지 이것저것 물으셨다. 고작 9급 공무원일 뿐이고 새벽 일찍 출근해서 잠을 쫓으며 쌓인 일을 처리해야 했지만, 누군가의 어머니란 눈으로 보면 그 모습조차도 기특해 보였나 보다.


아주머니 역시 공시생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잠을 쫓으며 새벽에 나와서 청소하셨을 거다. 새벽 일찍 출근한 나를 보며, 미래에 이 자리에 앉아있을 자신의 아들을 상상했을까? 아들 열심히 일하라는 마음으로 깨끗이 청소해 주셨을 지도. 이런 상상을 하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드님도 빨리 합격하셨으면 좋겠다고 응원해 드렸다.      



수년 전, 한 판사가 법복을 고 소수 정당의 국회의원이 되었다. 법원 사정을 잘 아는 그는 국정감사를 통해 법원에서 미화(청소) 업무를 하는 용역 직원들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그때 나는 국정감사 준비팀에 있었기에 미화용역 아주머니들이 얼마를 받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분들 상당수는 내가 입사하기도 전부터 일하셨다. 법원공무원 신분은 아니어도 법원 짬밥으로는 선배였다. 그런데 아주머니들의 임금은 충격적이었다. 당시 월급이 고작 120만 원 정도였다.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데도 최저시급 정도를 받고 있었다. 이걸 받고 생활이 가능한지 의심스러웠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그분들 노고에 비해서는 턱없이 낮은 금액이었다. 임금이 “비인간적”이었다. 국정감사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 준 국회의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적은 임금을 받는 용역 직원 신분이었지만, 법원이란 공간에 애정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새로 옮긴 부서에서 사무실 입구에 붙은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손글씨로 정성스레 쓰인 종이엔 명절 덕담이 담겨 있었다. 고마워서 나와 몇몇 직원이 덕담 아래에 감사의 메모를 남겼다. 아주머니가 메모를 남긴 직원들 옆에 와서 친근하게 말을 건넸다.     


어떤 날은 한 직원이 우연히 아주머니의 딸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부서장께 건의해서 축하 화환을 주문했다. 같은 부서 직원들에게도 단체 메일로 결혼 소식을 전했다.     


직원들이 아주머니를 찾아가 축의금을 드렸고 결혼식장에는 법원 명의의 화환이 걸렸다. 딸의 결혼식을 마치고 출근한 아주머니가 떡을 돌리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그리곤 말끝을 흐렸다.

“나는 법원 직원도 아닌데..”


한 직원이 대답했다.

“법원 가족이시지요.”

아주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수년간 함께한 아주머니의 담당구역이 바뀌게 되었다. 많은 직원들이 아쉬워했다.

입구에 다시 쪽지가 붙었다.   

   

<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모두들 열심히, 성실하게 근무하는 여러분들께 먼저 박수를 보냅니다. 지면을 대하니 마음 한구석이 찡하니 눈물이 나려 하네요.      


8년을 8층에서 일하면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과장님을 비롯한 많은 직원분들의 따뜻한 마음씨와 다정한 눈빛도 제겐 신선했으니까요. 나름 열심히 한다고는 했으나 부족함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제 딸 결혼식에도 모두들 축하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대학 갈 환경이 되었는데도 제 불찰로 대학 못 간 것 지금까지도 후회가 됩니다. 저처럼 후회하지 말고 열심히 도전하십시오. 실패가 두려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면 인생이 너무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제가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8층에서의 추억은 절대로 잊지 않을 겁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들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    


인생 선배이자 “법원가족”인 아주머니가 오랜 시간 우리를 관찰하며 남기신 생생한 목소리. 아직 젊었던 우리들을 향해 주시는 애정 어린 조언들. 그 마음에 눈가가 촉촉해졌다.     

아주머니가 입구 문에 쪽지를 붙이면 빈 공간에 직원들이 메모를 달았다.

최근 대기업 본사의 엘리베이터에 갇힌 청소노동자에 관한 뉴스를 접했다. 포브스가 선정한 일하기 좋은 기업 순위에서 세계 50위 안에 든 대기업이었다. 직원들도 종종 그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일이 있는데, 몇 분만 갇혀도 꽃이나 사탕을 주며 직원을 위로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일하기 좋다던 세계적 기업이  엘리베이터에 1시간가량 갇힌 청소용역 직원을 외면했다고 한다. 청소 용역 아주머니는 공황장애가 와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지만, 대기업은 보안 경비업체에 책임을 넘기고 보안 경비업체는 다시 청소 하청업체에 책임을 넘겼다. 그렇게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계약기간이 끝났고, 청소용역 아주머니는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직장을 잃었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114703_34936.html


뉴스를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신분제 사회처럼 대기업 사원증이나 공무원증을 걸친 사람만 대우받는 공간이 아름다울까?

대학생 때 실존철학 수업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우리는 지금껏 인간 대접을 받기 위해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답게 살아야 합니다.”   



같은 공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꾸준히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꾸준한 관심과 애정이 단지 인간 대접받기 위한 삶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 줄 거라 믿는다. 그런 배려로 쌓은 가족 같은 직장, 아름다운 사회를 꿈꾼다.


지금도 복도나 엘리베이터에서 아주머니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소식을 묻는다.

나와 동료들에게 미화용역 아주머니들은 법원가족이었다.

우리의 가장 곁에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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