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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 인격의 거울일 뿐

by 파충류 이회

어떤 할머니가 접수창구에 오셔서 설명을 해드렸다. 잠시 뒤, 내게 “가장 친절한 공무원”이라며 음료수를 건네주셨다. 극구 사양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이 더운 날씨에 할머니가 얼마나 고마웠으면 그랬겠냐”며 그냥 받으라고 권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받았다.


나는 ‘친절하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부끄럽다. 기본적인 예의를 갖춰 응대했을 뿐, 누군가에게 특별히 친절을 베풀려고 애써본 적은 없다.

다만 법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을 보면, 집에 계신 어머니나 이웃집 이모님이 떠올라 법률 용어 대신 일상의 언어로, 예시를 들어가며 천천히 설명하려 노력할 뿐이다.


그것뿐이다.

나는 그저, 내 앞에 선 사람의 '품격'에 맞게 대우할 뿐이다.

무지하거나 장애가 있어도 품격 있는 사람이 있고, 많이 배우고 가진 사람 중에도 천박한 인격의 소유자는 많다.


내가 친절하게 느껴졌던 사람들은 사실,

스스로가 품격 있는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반대로, 나를 보고 "여지껏 만난 공무원 중 가장 불친절한 사람"이라며 소리 지르던 이도 있었다.

그 사람은 동료들에게 갑질을 하다가 나와 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에 끌려 나가거나 형사재판을 받고 감옥에 간 경우도 있었으며, 어떤 이는 가족들에 의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되기도 했다.


내가 다정하게 보였다면,

그건 내가 품격 있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당신의 품격을 알아보고 그에 걸맞게 대우할 뿐이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당신 인격의 거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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