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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한 Apr 08. 2019

04 : 가라는 진리대학은 안 가고 단수이에서 한 것

잔잔한 듯 뜨겁게, 타이베이

작별하는 아침은 신나는 음악이 방을 가득 메웠다. 

언니는 타오위안 공항으로, 나는 혼자 하루를 머물 숙소를 찾아갈 예정이었다. 3박 4일간 널브러져 있던 짐을 차곡차곡 챙겼다. 언니의 아이폰에선 쉴 새 없이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이 나왔다. 이런 취향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친한 친구가 인피니트 성규의 팬이라는 이야길 들었던 터라 어느새 취향을 닮았구나 싶었다. 침대 뒤 창문으로 내다본 타이베이의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빵빵한 솜 같은 구름 때문에 기분이 좋아졌다. 


시먼딩으로 향했다. ‘가기 전에 망고빙수는 먹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우리가 간 빙수집은 카페 분위기는 아니고, 아이스베리나 맥도날드 같은 느낌이었다. 

빙수 전문점이라 메뉴판이 온갖 빙수로 그득했는데, 그중 당연히 망고가 듬뿍 올라간 빙수를 골랐다. 빙수는 빠르게 나왔고 찌는 날씨에 캐리어를 질질 끌며 다닌 터라 허해진 속에 찬 빙수가 들어가니 절로 춤이 나왔다. 금세 한 그릇을 해치웠고 언닌 마지막 한 숟갈의 망고를 내게 넘겨줬다. 

대만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망고빙수!

그리고 타이베이역에서 언니를 보냈다. 공항버스를 타도 되지만 40분이면 타오위안 공항까지 가는 AIRPORT MRT가 있었다. 살짝 멜랑꼴리해진 기분으로 하루 묵을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슈앙리엔역으로 떠났다. 나에게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로 다음날이면 나도 비행기를 타야 했다. 


게하 프런트에 짐만 맡기고 바로 단수이로 향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유명한 타이베이 근교의 단수이는 빨간색 MRT가 연결되어 있다. 주말이라 가족 나들이객이 많이 보였다. 30분가량 탔을까. 단수이에 내려 붉은 벽돌 역사를 나와 사람들을 따라갔더니 바다가 있었고 주변엔 먹거리 좌판이 가득했다. 


옛날엔 이 항구가 세관 부두로 이용되었단다. 지금은 관광객을 노리는 좌판들이 옛날엔 무역상과 뱃사람들을 상대했을까. 단수이의 옛 모습이 궁금했다.

단수이의 강태공.
바다를 따라 먹거리 좌판이 굉장히 많았다.
그냥 이런 풍경을 따라 달렸다.

나는 자전거를 빌렸다. 서울시 따릉이 같은 타이베이 공공자전거 ‘유바이크(U-bike)’를 타려고 했는데 숙소에 유심 번호를 놓고 오는 바람에 옆 사설 대여소에서 빌렸다. 다들 바다를 따라 천천히 걷는 틈을 뚫고 가기 힘들었는데 유명 관광지인 진리대학 부근을 지나자 갑자기 길이 뻥 뚫렸다. 


도로가 맨질맨질해 자전거 타기는 딱이었다. 알고 보니 단수이는 자전거 여행지로도 유명한지 코스를 알려주는 이정표도 있고, 중간중간에 쉬어갈 만한 커피숍도 있었다.  


내가 단수이에 간 건 <말할 수 없는 비밀> 촬영지였던 진리대학 때문이었다. 중학생 때 봤던 영화 속 붉은 벽돌 건물들이 단수이에 있다길래 궁금했고 이밖에도 홍마오청이라는 문화 유적이 있다길래 간 것인데 자전거 타는 게 너무 재밌는 바람에 진리대학 생각이 사라져 버렸다. 


혼자 여행하면 충동이 계획을 다 이긴다. 끌리는 대로 달리고 멈추고 구경하고 쉬었다. 

알고 보니 자전거 코스였다.
Lover's bridge.

거기서부터 10여 분 달리니 ‘Lover’s bridge(연인의 다리)’라는 관광지가 있었다. 석양이 지면 예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순 없었다. 한낮에 자전거를 타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탓에 얼굴은 이미 벌게졌고 목이 탔다. 편의점에서 탄산수를 하나 사 들이키고 가림막 있는 벤치에 누워 조금 쉬었다. 


연인의 다리를 기점으로 다시 단수이역 방향으로 틀었다. 중간에서 왔던 길과 다른 길로 빠졌더니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성당이 보였다. 옆에는 젤라또 가게가 있었다. 마카오에 갔을 때 세나두 광장에서 혼자 젤라또를 먹었던 생각이 나면서 홀린 듯이 젤라또 가게로 들어갔다. 

사실 자전거를 타기로 한 것도 태국 치앙마이에서 자전거로 시내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아주 좋게 남았기 때문이기도. 다니다 보니까 한 여행이 다른 여행을 닮는다. 또 다음 여행지에서도 약속한 것처럼 자전거를 빌리고 젤라또를 사먹겠지. 이렇게 내 여행 스타일이 만들어진다. 


나는 진한 보라색의 용과맛을 골랐다. 색이 참 예뻤다. 가게 맞은편 벤치에 털썩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열심히. 천천히. 어릴 때 종종 먹었던 백년초 선인장 맛이 났다. 이어지는 올드 스트릿에서 대왕 카스테라니 대왕 오징어튀김이니 하는 단수이에서 유명한 간식들과 인파를 구경했다. 자전거 때문에 진이 빠졌던지 돌아오는 MRT에선 꾸벅꾸벅 졸았다.

붉은 벽돌 성당.
올드 스트릿(old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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