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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머리가 심장으로 들어간
열정적인 질문이다

당신은 머리가 심장으로 들어간 열정적인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생이 아픔과 슬픔이 

씨줄로 날줄로 직조된 얼룩과 무늬라면 

그런 생에게 따듯한 입맞춤 해주며 

헐벗은 옷 갈아입혀 따듯한 온돌방에 

잠재우고 싶은 마음을 견디다 못해 몇 줄 쓴 시, 

그게 내 삶의 절규였음을 증명해주고 싶었다. 


비바람을 등지고 안간힘을 써가며 

간신히 켜진 성냥불에 주변이 잠시 밝아진 틈을 타서 

돌아온 지난 생의 어둠을 잠시 잊고 싶은 게 

당신의 작은 소망임을 뒤늦게서야 깨닫고 몸부림을 친다


농익어가는 당신의 가슴속엔 

한 많은 눈물방울들이 어둠의 이불을 덮고 

체온을 보존하며 중얼거리는 말,

생(生)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며, 

아파하는 울부짖음 속에서도 

저녁노을이 부르는 어둠을 맞이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이라고 오늘도 당신은 

어둠의 적막에게 침묵으로 아우성치고 있다



반복되는 일상이 모두 비상하는 상상력의 텃밭일 수는 없으며, 

매번 맞이하는 아침이 경이로운 기적일 수는 없어도 

보잘것없는 보행이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위대한 행보로 다가오는 그날을 위해

바람 타고 쓸려간 상처 속의 신음도 

내 인생악보를 구성하는 찬란한 슬픔의 화음으로 재생시켜

곤경 속에서도 풍경을 낳는 상상력으로 

잉태시켜 출산하려는 당신의 의도를 

지금에서 깨닫는 서글픔이 앞을 가린다


당신은 어제 흘러간 강물을 되돌려 후회하지 않고 

스치는 바람에 맨살을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황혼 예찬자이며,

새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 타고 허공에 몸을 던져도 

두렵지 않은 어릿광대이며,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던져 바다에게 

술 한 잔 사주고 싶은 철부지 예술가다  


당신은 지나가는 바람을 붙잡아 노래를 만드는 작곡가, 

떠도는 구름이 남긴 얼룩으로 무늬를 그리는 화가,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하고 싶은 말로 문장을 건축하는 소설가, 

아스팔트를 뚫고 지상으로 용솟음치는 

한 포기 풀의 찬가를 언어로 번역하는 시인이다



당신은 비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르는 들깻잎에도 

입 맞추고 싶은 디오니소스이며, 

저녁이면 광기가 발동되어 야상곡에 맞춰 

몸이라도 흔들고 싶은 그리스인 조르바다


당신은 어떤 풍경으로 그려내도 

화폭에 담을 수 없는 그림이며, 

여전히 시인을 기다리며 그리움에 젖은 시심이고

연인을 만나기 3일 전부터 심장이 떨리는 설렘이며, 

대중 연설을 앞두고 청중을 기다리는 연사의 긴장감이고 

자식을 떠나보내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뒷모습에 

울컥하는 부모님의 애틋한 사랑이다 


당신은 찰나의 충동에도 귀를 기울여 들어보며 

뛰는 가슴에게 대책을 물어보지 않고

쏟아지는 폭우에도 갈 길이 멀다는 

핑계를 끌어오지 않고 밖으로 나가는 용기로 

계산하는 머리를 이기는 심장박동의 몸부림이다



얼음장 속의 시냇물이 노래하는 까닭은 

한 겨울에도 새봄을 찬양하는 희망가라고 착각하고

수시로 타오르는 뜨거운 가슴이지만 

차가운 이성에게 가끔씩 길 안내와 통제를 받아야 할 나이, 

하지만 얼음을 녹여버리는 열정이 

여전히 얼음 위에 군림하는 이성을 이끌고 가는 나이임을

인정하지 않고 세월의 흐름에 맡겨버리는 당신의 지혜가

여전히 매력을 넘어 마력으로 작용하는 까닭이다. 


중년은 관념이 신념을 지배하기 전에, 

고리타분한 경험의 덫이 사기 충천한 결심을 희석시키기 전에 

먹구름 속에서도 태양을 상상하는 시기이고

할까 말까 망설이는 주저함이 

과감한 실천을 가로막기 전에 

다가오는 파도에 몸을 던지는 결단의 다른 이름이다



오십은 연초록으로 시작하는 새봄의 설렘보다 

녹음으로 점철된 여름이 맞이하는 가을날의 은행잎이고

주소도 없이 흩날리다 비에 젖은 단풍잎 하나가 

찬 바닥에 달라붙어 긴 한숨을 쉬는 것처럼 

우수에 젖어 앞조차 보이지 않았던 

어둔 시절을 상상하며 

끊임없이 출렁거리며 부는 바람에 

몸을 맡긴 파도처럼 흔들리는 삶 덕분에 

세상을 뒤흔드는 냉철한 영혼을 넘어서는 

예능과 관능이 삶을 이끌어가는 동인임을 깨닫기도 했다.  


당신은 정열의 울타리로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고, 

열정의 도가니로 불안한 미지의 세계로 몸을 던지며

욕망의 울타리로 현실을 살아가지만, 

절망을 뒤집어 희망의 텃밭으로 만드는 역전의 명수다. 


당신은 니체를 읽다가 주식에 투자하고, 

소크라테스를 읽다가 뱃살을 걱정하는 신경세포가 

거미줄처럼 뒤엉켜 서로가 서로에게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불가사의의 전형이다



당신은 우울의 그림자가 느닷없이 다가와도 

군말 없이 갈 곳을 찾아 항해하며 

진부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이고

알 수 없는 미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가능성이 

골목을 돌아 나올 때마다 반가운 미소로 반기는 

아름다운 미래(美來)다. 


하루는 맑게 갠 날씨와 더불어 

뜨거운 몸을 식히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다, 

혹한과 한파에 떨고 있는 몸에게 

뜨거운 사케를 주입하는 냉정과 열정을 넘나드는 

알 수 없는 경계에서 살아가는 게 

당신의 일상이다 


바람에 날리는 벚꽃 잎이 땅으로 떨어지는 순간 

기다렸던 땅거미가 꽃잎을 이불 삼아한숨을 쉴 때 

당신은 요동치다 만난 저녁노을이 부르는 노래를 

받아 적는 소설가다



푸른 모과가 햇볕을 정면으로 받다가 

옅노란색으로 바뀌는 순간 지나가던 바람이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여 하늘을 바라볼 때 

당신은 마감시간이 불러온 영감을 붙잡고 

한 편의 시를 쓰는 시인이다


녹슨 기차 길 위로 눈보라 몰아치다 

외로움의 평행선과 맞닿는 순간 

저 멀리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휘파람 불며 노곤함을 달랠 때 

당신은 오늘도 한 뼘 자란 생각으로 

내일의 찬가를 작곡하는 음악가다


어둠 속을 헤매다 붙잡은 물줄기가 

줄기차게 줄기를 타고 흐르는 순간 

안타까운 소식 듣고 달려오다 

물관부의 떨림이 감지될 때 

당신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허덕이는 목숨을 노래하는 가수다



외딴집 양철 지붕 위로 쏟아지는 소낙비가 

하소연을 하는 순간 숨죽이며 기다리던 

매미의 안간힘이 나무줄기를 타고 느껴질 때 

당신은 어슬렁거리다 삐딱하게 다가오는 

게으름을 안아주는 새벽안개다


엉거주춤 서 있다 나비의 급습으로 꽃가루를 빼앗기는 순간 

느닷없는 공격으로 쩔쩔매는 난처함이 

거처를 찾아 헤맬 때 당신은 

한심한 상투성을 거부하고 

낯선 마주침을 즐기는 비바람이다


꺼져가는 연탄불 위로 마지막 숨을 거두며 

아궁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순간 

여전히 피어오르는 불길의 멱살을 붙잡고 

세상과 결별을 선언할 때 

당신은 소소함에서도 경이로운 기적을 찾아 떠나는 

고독한 방랑객이다



한 많은 세월의 얼룩이 서글픈 사연을 머금다 

목구멍 사이로 터져 나올 순간 

차갑게 식은 냉가슴을 달구는 한 잔 술이 

온몸을 휘감을 때 당신은 텅 빈 종이를 바라보다 

어둠을 밝히는 밤하늘의 등불이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살던 질경이가 

기지개를 켜는 순간 

하늘에선 공중에 매달려 있던 까치집에 

예고 없는 불청객이 방문할 때 

당신은 인생이 시답지 않아도 시답게 살기 위해 

시달리며 쓰는 시인이다


불판 위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하며 

몸에 붙은 모든 기름을 쏟아 붙는 삼겹살을 만나는 순간 

고통의 강도가 겹겹이 쌓여 삶의 주름을 아로새기다 

막다른 골목에 멈춰 섰을 때 

당신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적막한 밤에도 

사막을 달리는 희망의 파수꾼이다 



P.S.: 이 글은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책의 프롤로그를 시 형식으로 바꿔써 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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