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명대사에서 배우는 짧은 문장의 힘
영화 명대사에서 배우는 짧은 문장의 힘: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만나고 싶은 영화 명대사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계획을 하면 모든 계획이 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거든.”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명대사다. 사람마다 성향과 취향이 다르겠지만 대체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달성을 위한 계획을 세워서 매일매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로 성과를 달성하지만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다른 목표를 향해 자의 반 타의 반 달려갈 수밖에 없는 효율적이고 능률적인 삶을 무한 반복한다. 하지만 목표는 계획대로 달성되지 않는 경우고 생긴다. 목표를 달성하는 데 치중하는 사람들의 치명적인 문제는 현재를 즐길 수 없다는 점과 우연을 만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수수께끼. 그래서 우리는 오늘을 선물(현재)이라 불러(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But Today is a gift).” 과거로 흘러간 역사는 이미 일어난 일, 되돌릴 수 없는 일을 붙잡고 후회해도 바뀌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에서 성공과 실패는 오늘을 사는 나에게 소중한 교훈으로 작용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미스터리'라서 어떤 미래가 올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거나 미리 끌어당겨놓고 걱정해도 바꿀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영어 단어 'Present'가 '현재'와 '선물'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 현재를 선물로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면 후회로 점철된 과거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회생되고, 아직 오지 않은 ’ 미래(未來)‘도 아름다운 ’ 미래(美來)‘로 바뀐다.
내가 순간을 붙잡는 게 아니라 순간이 나를 붙잡는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잡아라”라는 메시지가 의미심장해지는 까닭이다. “오늘을 즐겨라, 얘들아. 너희들의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Carpe diem. Sei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하지 못하고 미래의 어느 순간에 다가올 일을 위해 준비하고 계획을 수립하며 꿈과 비전을 찾아가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들에게 이 명대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커피나 차를 마시는 순간에 몰입하고 지금 당장 내 곁에 있는 사람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이 커피와 차를 마시면 카페인과 차 성분이 내 건강에 미치는 영향력을 분석한 다음 그 성분이 미래 내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따져 물어보느라 커피와 차 마실 시간이 없는 사람이 많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릴 것. 우리에게 내일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으니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영화에 나오는 명대사다. 내일 해가 뜰지 비가 올지 말지는 내가 걱정하고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통제할 수 있는 변수는 아니다. 계획을 세워도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가 미지수는 언제나 불시에 부각된다.
“순간을 붙잡으라는 말이 있잖아,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해. 순간이 우리를 붙잡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시간은 영원하잖아 늘. 지금이 순간이 되는 거지.” 영화 보이훗(boyhood)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대사다.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는 순간을 붙잡으라고 했는데 사실 엄밀히 따져 물어보면 그 반대라는 것이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특정한 그 순간이 먼저 있고 내가 흐르는 시간에 그 순간에 머무를 뿐이라는 이야기다. “레스라, 너 아니? 때로는 우리가 읽을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이 우리를 고르는 것이지.” 영화 ‘허리케인 카터’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순간을 붙잡지 않고 순간이 우리를 붙잡듯이 내가 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선택한다는 발상도 곱씹어볼 만한 대사다. 실제로 서점에 가서 신간도서 코너에 가면 내가 책을 선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워있는 책이 나를 점찍어서 자신을 데려가라고 명령해서 내가 그런 요구에 응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영화 명사다 짧은 문장처럼 정상적인 기대를 망가뜨리고 생각의 물구나무를 서는 역발상이 담겨 있을 때 흘려보지 않고 멈춰 서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는 인생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포착하려고 평생을 찾아다니다 죽기 일보 직전에 깨달았다. 우리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결정적인 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보내는 매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다. 흐르는 그 순간에 내 몸을 내려놓고 만끽하면 의미 없이 흘러가던 물리적 시간, 크로노스가 새로운 의미를 머금고 주관적이고 심리적으로 소중한 순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나에게 각인된다. 크로노스는 24시간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물리적 시간이지만 카이로는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오로지 나에게 의미 있는 소중하고 주관적인 심리적인 시간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야. 이 삶보다 더 소중한 게 어디 있어. 매일이 마지막인데.” 영화 ‘비포선셋(Before Sunset)’에 나오는 대사다. 한 번뿐인 인생을 뭔가를 준비하고 무슨 일을 할지 계획을 세우다 낭비하는 경우가 많은 사람들에 폐부를 찌르는 한 마디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도 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 오랫동안 준비하다 완벽하게 시작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게 실패를 준비하는 의미도 될 수 있다.
“특별한 날에 좋은 와인을 따는 것이 아니라 좋은 와인을 마시는 날이 특별한 날이다.”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에 나오는 대사다. 사람들은 생일이나 뭔가 위대한 성취를 이룬 기념일이 될만한 날을 특별한 날로 잡아서 그날 평소 아끼던 특별한 와인을 마신다. 하지만 이 대사도 반전의 효과가 있다. 오히려 좋은 와인을 마시는 모든 날이 다 특별한 날이라는 역발상이다. 앙리 까르띠에가 찾아다니다 뒤늦게 깨달은 ‘결정적인 순간’과 일맥상통하는 정문일침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닌 것처럼 특별한 날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우리가 와인을 마시기로 결정한 그날이 바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날이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는 “인생 최고의 감독은 우연이다”라는 또 다른 명대사가 심금을 울린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도 대단한 사건이나 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보내는 매 순간이다.
모든 순간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세상의 광휘, 그 눈부심을 찬양하라. 지상에 살아있음이 기적이다. 비록 위태로운 기적일지라도 기적은 기적이다. 성숙은 끝없는 찬탄의 연습에 드는 것이다(303쪽).” 파스칼 브뤼크네르의 《아직 오지 않는 날들을 위하여》에 나오는 말이다. 살아있는 동안만 기적이다. 세상의 광휘는 지금 여기서 느낄 수 있을 뿐,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더 휘발되기 전에 광휘와 함께 춤을 춰야 되는 이유다. 노벨 문학상을 탄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23∼2012)의 '두 번은 없다'는 시도 지금 이 순간의 기적과 감동을 노래하고 있다.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결정적인 순간을 격정적으로 지금 이 순간 만끽하지 않으면 그 순간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또다시 반복될 것이라는 가정 하에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즐기지 않고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고 견디며 살아간다.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2014년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4,130m)에 오른 적이 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오르기 전에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3,700m)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 4시에 출발한다. 마차 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저녁노을 덕분에 주변 바위들이 붉은 바위로 타오르는 일몰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사진을 찍은 다음 아름다운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때 만든 법칙이 3M이다. 모든 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로 만들어라(Make Moment Memorable).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서 저녁노을이 만들어준 붉게 물든 바위의 한 순간을 보면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나오는 션 오코넬의 대사가 생각났다. “어떤 때는 사진을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아름다운 순간을 사진 찍는 데 몰입하다 정작 아름다운 순간을 감상하지 못하고 그 경이로운 순간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장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다. 나를 바꾸려면 내가 보내는 매 순간을 이전과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매일 하는 일이 나를 결정하듯, 내가 매일 보내는 순간순간의 시간이 이전과 다른 나를 탄생시키는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지금 일몰의 순간을 바라보는 시간도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다. 아름답고 황홀했던 찰나의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아쉽고 그리워질까. 모든 순간이 다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이 되는 이유다.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아주 죽기 전에 지금 뭔가를 하세요
”너 같은 애들-재즈의 정통성을 고집하는-이 재즈를 죽이고 있다고. 재즈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라고.” ”재즈는 꿈이에요. 충돌하고, 화해하고… 정말 흥분되지 않아요?.” 영화 ‘라라랜드’에는 대조적인 말이 나온다. 재즈는 과거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다. 과거의 전통과 관습에 얷매여 새로운 창작의 가능성을 포기하거나 그 굴레에 묶여 벗어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인생을 살지 말라는 의미다. 현재를 무시하고 미래를 지향하하는 메시지보다 과거의 굴레나 관습에 얷매이는 타성에 젖은 재즈보다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고 다양한 실험과 모색을 반복하며 한계에 도전하는 재즈에 밝은 미래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답습하는 재즈보다 기존 재즈 스타일에 맞지 않아도 충돌과 마찰을 일으키는 재즈를 실험하고 모험을 해야 이전에 없었던 재즈의 미래가 열린다는 것이다. “뒤돌아 보지 마 유다, 자네 삶은 앞에 있어.” 영화 ‘벤허’에 나오는 말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까닭이다. 이처럼 영화의 명대사도 대사 그 자체만으로 배울 점을 찾기보다 언제 어떤 상황과 맥락에서 그 대사가 통용되는지에 따라 그 대사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맥락적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pp.260-61).”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와 데이비드 케슬러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버킷 리스트도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꿈의 목록이 아니라 어디든지 갈 수 있는 건강한 몸일 때 해보고 싶은 꿈의 목록이라고 바꿔 써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그때부터 버킷 리스트를 쓰고 삶의 막바지 시간을 보내려고 사투를 벌인다. 늦기 전에, 더 늙기 전에, 아주 죽기 전에 신체성이 개입되는 관능적 행복감을 만끽하지 않으면 몸이 느끼는 행복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죽을 수도 있다. 우리가 순간을 만끽하며 행복한 충만감을 느껴본 적이 언제인가? 결정적인 순간은 사전에 계획을 세워서 만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나모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다가오는 마주침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그 순간이 바로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원동력이자 내 인생의 운명도 바꾸는 결정적인 사건이다.
인생 최고의 감독은 우연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명언, “때론 잘못 탄 기차가 우리를 올바른 곳으로 데려다준다.” 영화 ‘런치박스’에도 나온다. 한때 고시 공부를 하려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고시행 기차가 나를 행복의 목적지로 데려다줄 것 같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기차에서 내렸다. 잘 못 탄 기차였지만 그 기차에서 내리고 다른 기차를 갈아탄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내 인생이 풀리면서 대학교수이자 작가이며 명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다. 완벽한 계획과 결정적인 순간이 우리 삶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대책 없이 아무 역에나 내리면 뜻밖의 대책이 곳곳에 널려 있음을 우연히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철저한 준비와 완벽한 계획, 이미 걸려든 알고리즘 속에서는 우연이라는 변수를 만나기 어렵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의미를 잉태하고 있는 사물이나 현상은 언제나 늘 가까이 있다.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는 거란다.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아름다움 속으로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단다.” 영화 와일드(wild)에 나오는 대사다. 일출과 일몰이 매일 반복되지만 똑같은 일출과 일몰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는다. 일출과 일몰은 언제나 오늘이 처음이다. 그걸 맞이하는 사람이 일출과 일몰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갇혀 살기 때문에 늘 똑같은 현상이 반복된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음악은 우리 주위 모든 곳에 있어.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냥 들으면 되는 거야.” “음악이 무엇인지 아니? 우주에 우리 말고 다른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의 작은 목소리지. 어디에나, 심지어 별에도 있는 생명체들의 조화로운 연결고리란다.” 영화, ‘어거스트 러쉬(August Rush)’에 나오는 대사다. 음악은 작곡가가 작곡하고 작사가 가사를 만들어야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창작물이 아니다. 일상의 어느 곳에서 어제와 다르게 귀를 기울이고 귀담아듣기만 하면 온 세상이 다 저마다의 소리를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존 케지이(John Cage)의 도발적 음악, ‘4분 33초’도 지휘자가 4분 33초 동안 각 막마다 지휘봉을 들고 가만히 서 있다가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음 막에도 침묵을 유지한다. 4분 33초 동안 사람들의 숨소리, 자동차 경적소리,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 등 모든 자연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실제로 4분 33초 악보를 보면 ‘1막 침묵’, ‘2막 침묵’, ‘3막 침묵’으로 아무런 악보도 없는 악보다. 짧은 문장으로서의 명대사도 사람들의 통념을 깨북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때 큰 깨달음을 얻고 낯선 생각을 잉태하게 만들어준다. “뮤지션한테 은퇴란 없대요. 음악이 사라지면 멈출 뿐이죠. 제 안엔 아직 음악이 남아있어요.” 영화 ‘인턴(The Intern)’에 나오는 대사다. 곳곳이 음악이기도 하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존재가 음악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울려 퍼지는 음악이 우리 삶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들어준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
영화의 명대사를 짧은 문장이 추구하는 방향에 비추어 보면 평범한 일상에서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사소하고 익숙한 습관이나 모습에서도 얼마든지 삶의 통찰을 끄집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익숙한 곳에서 멀어져야 가고픈 곳에 닿게 돼.” 영화 ‘곰돌이 푸’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추구한다. 행복을 거창한 추상명사로 생각하는 순간, 행복은 관념이 될 뿐 일상을 매일 행복하게 살아가는 실천적 덕목이나 구체적인 행동지침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에서도 그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일이 될 수 있음을 깨우쳐주는 소중한 교훈이다. “중요한 건 ‘고도’가 아니라 ‘태도’(Your attitude determines your altitude).” 영화 ‘에베레스트’에 나오는 이 말이 ‘곰돌이 푸’에 나오는 대사의 의미를 되짚어주고 있다. 한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산의 높이, ‘고도’는 그 사람에 산에 오를 때 임하는 자세와 ‘태도’가 결정하듯이 내가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일상은 상상력이 비상하는 텃밭이 될 수도 있다.
“선생님 어떡하죠? 전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거기엔 약이 있다네.” “아니에요. 약은 필요 없어요. 저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영화 ‘일 포스티노’에 나오는 말이다. 역시 반전과 역발상이 숨어 있는 대사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심하게 앓기 시작하는 데, 이 병을 치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사랑에 더 깊이 빠지는 것이다. 시를 가르치는 스승이 약을 처방해 준다고 해도 그 약을 먹고 싶지 않은 이유는 약을 먹고 빠진 사랑에서 빠져나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뭔가에 깊이 빠지지 않으면 빠질 수 없고, 깊이 빠져야 빠져나올 수 없다. 모든 사람이나 사물은 다 저마다의 존재이유가 있고, 존재하는 목적이 있다. 사랑은 그 존재 자체가 살아가는 이유나 목적에 매료되는 순간에 시작된다. 겉으로 드러난 경제적 부나 외모, 신체적 조건과 같은 피상에 빠지면 금방 빠져나올 수 있다. 하지만 존재 자체의 아름다움에 빠지면 대체 불가능한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 돌의 존재의미를 나는 모르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별도 그런 거야. 너도 마찬가지지.” 영화 ‘펠리니를 찾아서’에 나오는 말이다. 존재 이유를 묻기 시작할 때 사랑은 더욱 깊이 빠지게 된다. 사랑과 질문은 동격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면 질문이 폭발하면서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고 삶의 혁명을 어제와 다르게 반복한다.
글은 곧 길이다
“나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만 살아왔어. 언제나 누구의 딸, 엄마, 그리고 아내였지. 나는 나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엄마가 네게 가르칠 게 딱 하나 있다면, 네 최고의 모습을 찾으라는 거야. 그 모습을 찾으면 어떻게든 지켜내고.” 영화 와일드(Wild)에 나오는 대사다. 나로서 살아가는 삶, 나답게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삶, 소명을 다하고 사명을 완수하는 삶이야말로 원본의 의미와 가치대로 살아가는 삶이다. 다른 원본과 비교하기 시작하는 삶은 그때부터 복사본의 인생으로 전락한다. 나의 인생이 아니라 남의 인생을 살기 위해 늘 절치부심하고 동분서주하지만 왠지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바쁘게 살았지만 뿌듯하지 않은 허망한 삶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기 시작한다. “이 길은 당신을 무너뜨리고 비워버린다. 그리고 다시 당신을 세운다. 기초부터 단단하게.” “길은 모두에게 열려있지만 모두가 그 길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옳은 길은 있어도 틀린 길은 없어요.” 영화 ‘산티아고’에 나오는 말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이 내 삶이고 그 삶은 누구와 삶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이름값을 하는 삶이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뇌리를 떠나지 않는 명대사가 있다.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 분)이 남긴 말이다. “신의 문서는 ‘글’이 아니라 ‘길’이옵니다. 전하께서 밟고 걸어가셔야 할 길이옵니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라는 충언을 전하면서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겠다는 치욕을 견디면 살 수 있다는 명분을 담은 글이다. 하지만 글은 글로서 끝나지 않고 길로 연결된다. “내가 쓴 글은 내 글 이상도 이하도 아닌 정확히 나의 글이다. 왜냐하면 내 글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123쪽)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성복 시인의 ‘무한화서’에 나오는 글이다. 글을 읽으면 그 사람이 보이는 이유다. 글은 그 사람의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무관하게 글을 쓸 수 있고, 삶과 다르게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글은 독자와 공감하기 어렵고 감동을 주기도 어렵다. 글과 삶은 하나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삶이 바뀌지 않고서는 글도 바뀌지 않는다. 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 자기 다운 색깔이 드러나는 글, 살아온 삶을 담아내는 글쓰기가 진짜 글이고 글쓰기다.
확신은 부패한다. 질문은 방부제다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그 사람이 말하는 메시지는 그 사람의 삶이 농축된 결정체다. 삶을 담은 메시지를 긁으면 글이 되고 그리면 그림이 되며, 목소리로 담아내면 노래가 된다. 어떻게 살아가는 게 진짜 나다운 삶인지를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겪은 스토리가 바로 창작의 원료가 된다. 모든 예술가는 자기 삶을 재료로 예술적 창작을 한다. 그들에게 삶은 예술이고 예술이 곧 삶이 된다. 창작의 기본은 기법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창작하는 사람의 삶이 만들어 간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의 생각은 결국 자기가 겪은 삶의 결론이라고 믿습니다(37쪽).” 신영복의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에 나오는 말이다. 글은 테크닉을 연마해서 쓴 산물이 아니다. 글쓰기는 내 생각을 녹여내는 사고의 과정이다. 내 생각은 내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다. 글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생각을 바꾸려면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힘겨운 전투를 벌이며 살아갑니다.” 영화, ‘터미널’의 대사다.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기 위해 싸우는 삶의 전투가 그 사람의 생각을 만들어간다. 비슷한 고민과 고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각자가 처한 위치나 상황, 그 상황에 개입되는 문제의식이나 문제 상황을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가 저마다 다른 생각을 잉태하게 만든다.
내 생각만 옳은 것도 아니다. 내 생각도 틀릴 수도 있다. 그러니 자기가 믿는 확신에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확신은 부패한다. 그 부패를 방지하는 방법은 질문이다. 질문을 방부제다. “질문이 곧 공부다. 외우기만 하는 공부가 나라를 망쳤다.” 영화, ‘자산어보’에 나오는 말이다. 우리는 늘 누군가 던진 질문이나 문제에 대한 정답을 찾는 공부를 해왔다. 내 생각을 정립할 기회조차 상실해 왔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전대미문이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아가 되어야 세상의 흐름을 역전시킬 수 있는 생각을 잉태할 수 있다. 질문을 던져도 문제는 너무 답이 정해진 뻔한 질문이거나 틀린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당신의 진짜 실수는 대답을 못 찾은 게 아니야.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가 없잖아.” 영화 ‘올드 보이’에 나오는 말이다. 틀릴 질문을 던져놓고 올바른 답을 찾는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해서 범해왔다. 물음표의 크기, 깊이, 그리고 넓이가 감동의 느낌표가 품은 강도를 결정한다. 하지만 물음표는 바꾸지 않고 어제와 다른 느낌표를 기대한다.
자신이 고통받는 날들이 자기 인생의 최고의 날이다
“남들을 따라 해서 차이를 만들어낸 사람은 없어요.” 영화, 위대한 쇼맨에 나오는 말이다. 남과 다른 길을 걸어가야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언제나 어제와 다른 질문을 던져놓고 질문이 탐구하는 방향을 향해 언제나 과감하게 몸을 던진다. 불확실하고 복잡한 현실이라는 바다에 몸을 던지지 않고 깨우칠 수 있는 지혜는 없다. “하여간 인생의 막바지에 도달해서 이런 결론을 내렸어. 자신이 고통받는 날들이 자기 인생의 최고의 날들이었다고. 그때 자신을 만든 시간이었으니까. 행복했던 때는 완전히 낭비였지. 배운 게 하나도 없었어."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Little Miss Sunshine)에 나오는 말이다. 고통받는 순간은 당시에 힘들었겠지만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힘이 생긴 원동력이 되었음을 반추하며 깨닫게 된다. 고통스러운 경험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체득하게 해 준다. “아무리 힘들어도 금방 괜찮아져. 그래봐야 또 힘들어지지만!” 영화, ‘우리의 20세기’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깨달음의 메시지다. 힘든 상황에 직면해서 좌절하거나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그걸 극복하면 고통이 없는 유토피아 올 것 같지만 또 힘든 상황이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그저 이 또한 지나가면 이전에 경험적 지혜로 다가오는 힘든 상황을 극복하면서 저마의 방식으로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라.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바라보라.” 영화 ‘원더(Wonder)’에 나오는 감동적인 대사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바라보면 모두가 저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며 살아간다. 그 사람을 정말 이해하고 싶으면 나의 판단기준으로 함부로 재단하거나 평가하지 말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라는 것이다. “당신이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해 살아왔어요.”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오는 대사다. 오늘의 나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 덕분에 한 사람의 인간으로 거듭나며 살아가는 것이다. 힘들 먼저 손 내밀어 준 사람, 좌절과 절망의 늪에서 헤맬 때 따듯한 눈길로 희망과 용기를 건네준 사람 덕분에 한 사람은 무수한 사람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이다. “무릎 꿇을 때, 내려놓을 때, 눈물 흘릴 때, 누군가는 완성된다.” 영화, ‘에릭 클랩튼’에서 기타의 신을 생각하며 말하는 대사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견디기 어려웠으면 무릎을 꿇을까, 그리고 가진 것으로 포기하고 자신을 낮추며 내려놓고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한 사람은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거듭난다.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런 경험을 하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해발 7,8000미터만 올라가면 철학적인 생각이 막 떠오를 거 같죠? 그런데 안 그래요 오로지 제 자신이 보입니다. 고통과 힘겨움 속에서 진정한 나를 볼 수 있지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은 살면서 진정한 나를 볼 수 없을 거예요.” 영화 ‘히말라야’에 나오는 말이다. 고통과 힘겨운 경험에 부딪히지 않으면 진정한 나를 대면할 시간을 가질 수 없다. 한계 상황에서 위기를 돌파하는 자신에게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진면목이 있다.
뿌리가 깊어야 뿌리칠 수 있다
“금이라고 해서 모두 빛나는 것은 아니며 방황하는 자가 모두 길을 잃는 것은 아니다. 강한 자는 나이 들어도 시들지 않으며 깊은 뿌리에는 서리가 닿지 못한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대사다. 뿌리가 깊어야 뿌리칠 수 있다.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힘은 아래로 뻗은 뿌리의 깊이다. 뿌리가 깊은 사람은 바람에 흔들려도 뿌리까지 뽑히지 않는다. 흔들려본 사람은 나아가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 아래로 뻗은 뿌리의 깊이가 위로 성장할 수 있는 높이를 결정한다.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뿌리 내리는 사람은 결정적인 찬스를 놓쳐도 다음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다 다시 역전시킬 수 있는 내공을 연마한다. “인생은 추입(追入)이다!” 영화 ‘챔프’에 나오는 말이다. 경마용어인 ‘추입’은 앞서가는 기수를 부러워하지 않고 초반에 천천히 달리면서 힘을 아꼈다가 중반 이후 강력한 스퍼트를 시작, 막판에 고삐를 당겨 앞서 가는 말들을 죄다 따돌리고 역전한다는 의미다. 추입은 “사람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어느 목욕탕 간판의 말을 되새기게 해 준다. 결정적인 때가 오면 그동안 축적한 힘을 한꺼번에 쏟아부으면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에 나오는 말이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위업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묵묵히 준비한 사람이다.
“장사꾼은 보이는 곳에 투자하고, 사업가는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하는 거야.” 영화 ‘1987’에 나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 투자하는 사업가의 안목은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낯선 곳을 바라보거나 아무나 다 보지만 볼 수 없는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일상을 관찰하는 사람이다. 장사꾼은 ‘법’대로 하지만 사업가는 법대로 안 되면 자기 나름의 ‘방법’을 개발한다. 법은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없지만 방법은 내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 단 방법은 책상에서 개발할 수 없고 반드시 어제와 다른 시행착오를 통해 개발된다. 사업가가 어제와 다른 실패를 반복하며 어제와 다른 실력을 쌓는 비결이다. 장사꾼은 시장이 안 좋으면 철수하지만 사업가는 시장이 안 좋은 덕분에 기회를 잡는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말이다. 사업에 실패한 장사꾼은 저마다의 이유로 사업에 실패했고 사업에 성공한 사업가는 그 이유가 모두 엇비슷하다. “나침반은 , 내가 측량하며 배웠는데 서있는 곳에서 정 북쪽을 가리키죠. 근데 늪지대 얘기는 없죠. 사막, 협곡 등 도중에 만나는 것 말이요. 목적지를 향해가다 장애물을 모르고 거꾸러져 늪에 빠지는 정도밖에 못 이룬다면... 정 북을 아는 게 무슨 소용이요?” 영화 ‘링컨’에 나오는 말이다. 장사꾼은 누군가 만들어 준 지도를 따라 목적지를 향해 매진하지만 사업가는 목적지를 향하는 여정에 다양한 지형을 살피며 지도를 스스로 만들어간다. 장사꾼은 큰 것 한 방을 노리지만 사업가는 작은 실천을 진지하게 반복하며 축적된 힘으로 반전을 노린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하나씩 낸 다음 그것을 행동으로 옮겨라!”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Pay It Forward)’에 나오는 명대사다. 장사꾼은 자신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포기한다. 하지만 사업가는 주변 세 사람을 바꾸고, 그 세 사람에게 당신도 내가 했던 방식으로 세 명을 바꾸라는 미션을 준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우를 일으키듯 3명에서 시작한 작은 변화가 결국 세상을 바꾸는 놀라운 방법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은 걸림돌도 디딤돌로 바꾼다. 그에게 걸림돌과 디딤돌은 같은 돌일 뿐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사람에게 세상은 모두 장애물이고 걸림돌이며 장벽이다. “스크린(Screen)은 또한 실제로 하나의 장벽(Screen)이었다. 스크린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차단했다(Screened).” 영화 ‘몽상가들’에 나오는 말이다. 스크린을 통해 바라보는 세상에 매몰된 사람은 스크린은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없게 차단하는 장벽일 뿐이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업가들에게 스크린은 오염된 세상을 걸러내는 차단제가 될 수도 있다. 똑같은 스크린을 어떤 용도로 쓰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용도로 변화될 수 있다. 스크린에 갇혀 사는 사람과 스크린으로 자신만의 관점을 걸러내는 사람의 차이는 점차 천지차이가 된다. 스크린에 갇혀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크린 너머를 꿈꾸는 사람도 있다.
“별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한다. 빛을 비춰주는 것이 있어야 빛을 낼 수 있다.” 영화 ‘라디오스타’에 나오는 말이다. 별은 덕분에 빛을 내고 어둠 덕분에 더욱 빛이 나는 것이다. 스타플레이어도 누군가의 도움 덕분에 결정적인 찬스에서 기회를 잡은 사람이다. 안개꽃 배경 덕분에 장미꽃 전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예술이다.” 영화 ‘위대한 쇼맨(The Greatest Showman)’에 나오는 대사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는 관계 속에서 더불어 행복한 삶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은 유일한 이유가 당신이란 걸. 인생은 한 번 이에요. 최대한 열심히 사는 게 삶에 대한 의무예요. 대담하게 살아요. 끝까지 밀어붙여요. 안주하지 말아요.” 영화 ‘미비포유(Me Before You)’에 나오는 대사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이 한 사람의 운명도 바꾼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 역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있다. 행복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찾아가는 삶의 미덕이다. “당신은 내 존재의 이유이고, 나의 모든 이유는 당신입니다.” 영화 ‘뷰티플 마인드(A Beautiful Mind)’에 나오는 명대사다. 나의 존재이유다 당신이기 때문에 나의 아픔은 언제나 관계의 아픔이다. 내가 건강해야 되는 이유도 나의 건강은 언제나 당신의 건강과 연결되는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노력하는 사람한테 우연이라는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사랑은 논리적 설명의 대상이 아니다. 존재자체가 맺는 관계가 사랑이다. 나의 전부를 걸고 던지는 사랑은 언제나 심각하게 아프고 위험하다. 아프지 않고 위험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는 이유도 없다. 그래서 “기억은 지워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영화 ‘이터널선샤인(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중에서 나오는 말이다. “사랑은 바람과 같아서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 있다.” 영화 ‘워크 투 리멤버(Walk to Remember)에 나오는 말이다. 사랑에 대한 명대사만 모아도 사랑에 관한 책을 한 권 내고도 남을 것이다. 그만큼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 자체이고 모든 존재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바로 인생을 낭비하는 사람이자 살아가면서 가장 큰 죄를 범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흉악한 범죄가 있다고? “넌 살인죄로 구속된 게 아니다. 네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흉악한 범죄, 바로 인생을 낭비한 죄다.” 영화 ’ 빠삐용’에 나오는 대사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세상과 싸우며 자기다움을 증명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예요.” 영화 ‘도가니’에 나오는 역발상의 대사다. 보통 변화되는 세상에 적응하거나 세상의 변화를 주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는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우리를 바꿔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싸운다는 생각의 물구나무서기를 한 것이다.
“운명이란 말이야, 노력하는 사람한테 우연이라는 다리를 놓아주는 거야.”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나오는 말이다. 서로의 존재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우발적으로 마주칠 수도 있다. 우연한 만남이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도움이 되는 하나의 다리가 되어 운명도 바꾸는 혁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연이라는 다리를 건너가는 사람에게 다리 건너의 삶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미지의 불확실한 세계다. 거기에 가보기 전에 그 세계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미리 계획된 대로 펼쳐지는 시나리오 기반 삶이 아니라 변수와 미지수가 수시로 등장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끌고 가는 불확실한 삶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오늘도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백지위에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때론 텅 빈 페이지가 가장 많은 가능성을 선사하죠.” 영화 ‘패터슨’에 나오는 대사다. 썼던 글이 어떤 일로 사라지고 다시 백지 앞에서 무엇을 쓸지 고민하고 있을 때 간신히 쓴 한 줄이 또 다른 한 줄을 불러오면서 백지는 천천히 그동안 벌인 사투의 흔적이 얼룩에서 무늬로 직조되고 있다. “나는 쓴다’의 미래형은 무엇인가?” “나는 읽을 것이다.” 영화 ‘아부의 달인’에 나오는 말이다. 영화의 명대사에서 배우는 짧은 문장의 힘을 썼지만 미래의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다면 짧은 문장은 짧게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주관이 주인의 관점이고 객관은 손님의 관점이다
문장은 짧지만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심장함의 크기가 커서 오랫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으면 쓴 사람의 기분도 좋아질 것이다. 나는 애쓰기로 쓰고 있지만 미래의 독자들은 이 글을 읽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며 영화 같은 삶에게 던져준 영화 명대사에서 배우는 짧은 문장의 힘을 길게 쓰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영화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말이다. 편견은 스스로 각색한 자기만의 주관적인 의견(疑見, 의심해 볼 만한 견해)이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접근할 수 없게 만든 차단벽이나 다름없다. 편견과 오만을 내려놓고 내 몸이 겪은 진솔한 경험적 깨달음이 몸을 관통하고 남긴 흔적과 얼룩으로 글을 쓰는 지금, 미래의 독자는 언젠가 읽어줄 것이라는 희망으로 설렌다. 아무리 나만의 관점과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거기서 겪어낸 경험으로 글을 쓴다고 해도 책은 저자의 신념과 용기와 열정으로 버무려진 주관적인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주관이 주인의 관점이고 객관은 손님의 관점이다. 객관을 뒤집으면 관객이 되지 않는가. 관객의 관점으로 경기를 아무리 관망해도 경기장 안에서 육박전을 치르는 선수들을 주인공의 관점, 주관으로 글을 엮어내기 어렵다.
“우리는 진짜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 눈앞에 보이는 세상만을 진짜 현실로 착각할 뿐이다.” 영화 ‘트루먼쇼’에 나오는 말이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을 나의 편견과 오만으로 바라보지 않기 위해 가까이서 주도면밀하게 관찰도 해보고 거리를 두고 관망하면서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내 생각을 교차 점검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영화를 보는 괁점도 관객의 입장으로 관망만 하면 영화 주인공의 관점으로 영화를 감상하기 어렵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그 당시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를 역지사지로 개입해서 생각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영화 명대사는 짧은 문장으로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최고의 예술이다. 명대사를 영화 전체 줄거리에 비추어 음미해 보고,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대사로 상대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용기와 희망을 주었을지를 반추해 보면 또 다른 명대사가 탄생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