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상식(沒常識), 몰지각(沒知覺), 몰염치(沒廉恥), 몰인격(沒人格)
만나는 순간 ‘몰락(沒落)’하는 몰씨 집안의 4형제:
몰상식(沒常識), 몰지각(沒知覺), 몰염치(沒廉恥), 몰인격(沒人格)
긍정적인 몰입과 몰두와 다르게 부정적 뉘앙스를 품고 있는 몰락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나 조직이 한순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몰 자로 시작하는 말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에 몰상식과 몰지각, 몰염치와 몰인격은 사람 사이에 사랑이 흐르지 못하게 막아버리고 관계 속에서 경계를 쌓고 건널 수 없는 벽을 만드는 병적 존재들이다. 우선 세상을 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공동체 생활을 하려면 마땅히 지켜야 할 매우 기본적인 매너나 에티켓, 함께 지키기로 약속한 규칙을 자연스럽게 습득해 나간다. 어느 순간 이런 상식을 무시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데 이런 사람을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제 또 다른 몰씨 집안의 두 번째 사람은 몰지각이다. 단순한 상식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면 좋을지를 생각하지 않고 눈치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 바로 몰지각한 사람이다. 알아서 생각하고 판단해서 행동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는 단순한 행동이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세 번째 몰씨 집안 형제는 몰염치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는 사람인데 정도를 넘어서면 파렴치한(破廉恥漢)이라도 한다. 몰씨 집안의 마지막 네 번째 형제는 몰인격이다.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인간적 존중과 배려를 전혀 하지 않고 모욕감과 심한 자괴감이 들에 행동하는 사람이다.
1. 몰상식(沒常識) - “어떻게 저렇게 상식이 없지?!”
몰상식은 상식이 없다는 뜻이다. 상식은 보통 사람은 마땅히 다 알아야 하는 기본적인 판단력이나 당연히 생각하고 배려해야 할 덕목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마땅히 숙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당연히 지켜야 할 기본적인 약속이나 예의범절, 또는 에티켓이나 매너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를 몰상식하다고 한다. 몰상식한 사람은 본래부터 그런 성격이나 행동을 하는, 즉 악의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마땅히 알고 지켜야 할 우리 모두의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기대를 모르거나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실천적이고 경험적인 지혜는 의도적으로 배워서 생기는 자세나 태도 또는 덕목이나 자질이라기보다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습관적인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예의나 기준이다. 누가 봐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그걸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말하거나 행동하는 사람을 몰상식한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다. 몰상식한 사람을 알아보는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공동체가 유지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 같이 지켜야 할 기본 예의나 사회적인 약속, 일반적인 매너나 규범, 당연한 규칙을 지키는지의 여부다. 몰상식한 사람은 한 마디로 세상 물정도 모르는 사람, 기본예절도 모르는 사람, 한 마디로 상식을 식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KTX나 SRT 기차를 타고 지방에 강연을 가는 경우가 많다. 전화벨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경우는 참아줄 수 있지만 큰 소리로 통화하면서 옆에 사람을 정말 무시하는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인간존재의 가벼움을 느낀다. 어린아이도 아니고 나이가 지긋하게 들은 어른이지만 주변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듯, 혼자 기분내면서 시끄럽게 통화하는 모습을 보면 어른이지만 아이 같은 어른 아이다. 상식으로 판단해 보자. 내가 이렇게 시끄럽게 통화하고 있으면 내 옆이나 곁에서 책을 읽고 있거나 조용히 같이 가는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얼마나 상식에 어긋나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인지를 왜 모르고 그런 만행을 저지르는 것일까. 모든 사람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면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거나 자료를 찾아 뭔가를 열심히 메모하는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큰 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열차 안에서처럼 혼자 휴대폰으로 큰 소리로 통화하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도 몰상식한 사람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된다. 영화관이나 강의장에서 전화 벨소리 진동으로 바꾸라고 해도 모르고 바꾸지도 않고, 전화 벨소리 크게 울리면 빨리 꺼야 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전화받아서 자기 할 말 다하는 사람도 몰상식한 사람이다. 친한 친구나 가족에게 전화를 하면 상대방 사정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본인 이야기만 무조건 일방적으로 그것도 꽤 오랜 시간 동안 떠드는 사람, 그것도 밤늦게 계속 전화해서 본인 용건만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자야 한다는 상식이 부족한 경우다.
몰상식한 사람은 다 같이 지키기로 정한 약속이나 규칙을 밥먹듯이 지키지 않는 걸 당연한 것처럼 생각한다. 모두가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행사나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사전 언급이나 통지 없이 무단 불참하는 사람은 몰상식한 사람이다. 예를 들면 모든 대학원 재학생은 격주에 한 번 하는 스터디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와야 한다는 약속은 원칙이고, 격주에 한 번, 오후 4시에 스터디를 한다는 약속은 규칙이다. 공부의 원칙과 규칙은 다르다.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은 비슷하지만 규칙은 사람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정할 수밖에 없다. 원칙은 상황 변화에 관계없이 공동체 구성원이 일관되게 지켜야 할 준칙이다. 원칙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지 않는 일종의 난공불락의 철칙이다. 원칙은 인위적으로 바꾸기 어렵다는 점에서 규칙과 다르다. 이런 원칙을 위반하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고 아예 결석하거나 습관적으로 지각을 반복하는 사람은 상식에 위배되거나 거스르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규칙을 습관적으로 지키지 않으면 각종 변칙이 판을 치기 시작한다. 경기 규칙이나 출퇴근 시간으로 정한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공동체의 질서가 파괴되지만,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공동체 질서가 무너지고 신뢰관계가 무너지질 수 있다. 어느 순간 원칙을 무시하고 변칙이 판을 치기 시작하면 공동체 질서는 무너지고 구성원 간 신뢰도 산산조각 난다.
2. 몰지각(沒知覺) -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말해라!”
몰지각은 지각(知覺)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지각은 말 그대로 알아서 깨닫는 능력,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분별하는 능력, 감각 기관을 통하여 대상을 인식하는 능력이다. 어떤 상황이나 사물에 대해 바르게 판단하고 깨닫는 능력이 없는 상태를 몰지각이라고 한다. 몰상식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을 모르는 문제라면, 몰지각은 그걸 알아차리는 인지 능력이나 해당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순간적으로 의사결정하고 판단하는 능력의 문제다. 지각능력을 갖추려면 우선 상황판단을 통해 지금 여기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아야 하고, 그 앎을 기반으로 내가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올바른 언행인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해야 한다. 몰상식은 인지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땅히 지키고 기대 수준에 맞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상태다. 반면에 몰지각은 아무 생각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해서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행동이다. 몰지각은 한 마디로 말하면 맥락적 사유 능력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현재 내가 어떤 상황인지를 인지하지 못하고 함부로 행동함으로써 가져올 수 있는 역기능이나 폐해를 예측해서 행동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움직이는 상태가 바로 몰지각한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이다. 맥락적 사유가 없는 사람을 숙맥이나 눈치 없는 사람이라고도 한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자기 판단 기준으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몰지각한 사람이다.
좌회전 신호를 받고 좌회전하려는데 앞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다. 직진 차선은 분명히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앞으로 다가온다. 그냥 내버려 두면 사고가 날 것 같다. 창문을 열고 신호등을 지키라고 했더니 입에 담을 수 없는 쌍욕을 한다. 오히려 나보고 정신 차리라고 한다. 본인이 퍼부은 욕설이 얼마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지 알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한다. 분명히 좌회전 신호등이 파란불이니 직진 신호를 빨간 불임에도 불구하고 파란 신호등을 지키며 좌회전하는 사람에게 비난과 욕설의 화살을 날린다.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혹시 신호등을 잘 못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이 퍼붓는 몰지각한 언행은 참을 수 없는 인간존재의 한 없는 천박함을 느낀다. 저런 사람을 양산한 같은 사회 속에서 동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올바르게 판단하고 주어진 본분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깊은 절망감을 주는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자주 발생할까를 생각하니 두렵기조차 하다. 또 다른 예로는 코로나 시국에 많이 목격한 사례다.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나의 건강은 물론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의 건강을 해치지 않으려는 판단이 올바른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도 안 쓰고 사람들 많은 곳을 활보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무모한 생각과 행동이 나와 관계되는 모든 사람에게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인지하고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소식이 뜸했던 한 대학의 교수님에게 전화가 왔다. 이런 사람에게 전화가 온다는 건 뭔가 부탁할 일이 생겼다는 반증이다. 제주에서 휴가 중 전화를 받았다. 지도 학생 중에 한 명이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데 외부 심사위원으로 와주면 좋겠다는 부탁이다. 본래 외부 심사위원을 거의 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심사위원과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주로 고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경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을 승낙한 이유는 같은 전공의 교수님이고 그래도 예전의 각별한 인연을 생각해서 논문심사를 허락했다. 바쁜 일정을 쪼개가면서 몇 번에 걸쳐 논문을 읽고 피드백하는 심사에 참석해서 결국 그 학생은 원하는 대로 박사가 되었다. 그 후 한 참이 지나 갑자기 그 학생 논문 최종 심사 결과도 궁금해서 전화했더니 박사논문이 통과되었다는 것이다. 그 심사를 통해서 내가 바라는 바는 적어도 상식이 있고 어느 정도 판단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박사 논문 심사에 참석한 외부 심사위원들에게 박사를 받으면 적어도 직접 찾아와서 논문을 전해주지는 못할망정, 그동안 심사에 참석해 주신 덕분에 박사 학위를 영광스럽게 받았다는 인사라도 건네는 기본적인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학생은 박사학위 취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순간 그 과정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해서 심사하고 피드백을 준 외부 심사 교수들의 얼굴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박사가 되었지만 지각 능력을 다시 개발해야 되는 몰지각한 학생이라고 생각한다. 그 학생은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 연락이 와도 받지 않을 생각이다.
3. 몰염치(沒廉恥) - “염치가 없어!”
몰염치(沒廉恥)는 염치(廉恥)가 없다는 말이다. 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청렴할 염(廉)’과 ‘부끄러울 치(恥)’가 결합된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자세나 태도’다. 무의식 중에 행한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거나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능력이 바로 염치다. 특히 부끄러워하는 능력을 가늠하는 ‘부끄러울 치(恥)’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마음 심(心) 앞에 귀[耳]가 붙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즉 부끄러움은 타인의 눈이나 외부의 소리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를 귀담아들을 때 비로소 자각하는 감정이다. 이런 점에서 몰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도 모르고 부끄러워야 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사람은 부끄러워할 줄 알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특히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고 나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 염치다. 염치불고(廉恥不顧)라는 말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상황에서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후안무치(厚顔無恥)도 얼굴(顔)이 두꺼워서(厚) 부끄러움(恥)을 느끼는 능력이 없다(無)는 뜻이다. 염치불고하고 후안무치한 사람의 정도가 심해지면 몰염치를 넘어 파렴치(破廉恥)한 사람이 된다. 사람이 살면서 마땅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나 양심을 저버리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막무가내의 행동이 나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이 바로 염치없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다 알고 있으면서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몰염치한 사람이다.
박완서 작가의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 보면 “나는 학원 간판 숲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휘날리고 싶다”는 문장이 나온다. 지금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부족한 지식이 아니라 부끄러워할 줄 아는 인간적 미덕이다. 뻔뻔하게 나쁜 짓을 밥먹듯이 저지르면서도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부끄러움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힘들어진다. 식당에서 아이가 음식물로 창문을 더럽혀도 내버려 두거나, 기차에서 여러 자리를 차지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녀도 무시하는 행동은 어른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무능력이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오히려 남 탓을 하며 뻔뻔하게 상황을 회피하는 사람도 대표적으로 몰염치한 사람이다.
대학교수는 잘 가르치기만 해서는 버틸 수 없다. 후학을 양성하는 교육보다 더 중요한 대학교수 평가기준이 논문이다. 논문을 일정한 편수로 학술지에 게재하지 못하면 직간접적인 압력이 수시로 날아들고 승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심사위원에게 논문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심사의 핵심은 논문의 문제의식을 점검하고 치명적인 약점이나 한계를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지적하는 데 있다. 그래야 투고자가 그 부분을 집중 수정하고 보완해서 더 훌륭한 논문으로 학술지에 게재할 수 있다. 하지만 가끔 심사평을 받으면 내용에 관계없이 마음에 상처를 주는 피드백을 만난다. 논문 자체에 대한 건설적인 피드백이 아니라 차라리 인신공격이고 비난이자 감정적 공격이다. 최고의 지성인이 구사하는 언어가 학문적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것은 물론이고 그걸 투고자에게 제공하는 피드백 방식 자체가 얼마나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렇게 막말을 구사한다. 이런 지식인이 바로 맹자가 말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는 사람이다. 수오(羞惡)라는 말의 뜻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또 타인의 잘못을 미워한다는 뜻이다. 학문적 비판이 아니라 감정적 비난을 퍼붓고 있는 자신의 심사평을 부끄러하기는커녕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라고 믿는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다. 이런 심사평을 받으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최고의 지성인이 구사하는 언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얼마나 부끄러울까. 자신이 던지는 한 마디가 얼마나 무례한지도 모르고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했다고 생각하는 몰염치한 지식인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심사를 받는 사람이 받는 심리적 손상은 안중에도 없으며, 누구에게도 아픈 상처를 주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몰상식한 ‘쥐식인’이기도 하다.
4. 몰인격(沒人格) - “인간성이 바닥이다”
몰인격은 인격이 없다는 말이다. 인격은 한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품위 있는 격조다.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성격과 가치관은 물론이고 그에 따른 생각과 판단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자아나 행동, 감정이나 인지, 도덕적 판단이나 윤리적 고려 능력이 종합돼서 발현되는 한 사람의 품격이다. 인격은 주로 언격으로 드러난다. 그 사람의 면모나 진면목은 그 사람의 사유나 감정이 자연스럽게 언어라는 옷을 입고 표출되기 때문이다. 물론 언어 이외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태나 상황을 고려하고 공감하면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작은 행동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대방의 감정은 무시하고 자신의 욕구만 채우려 하거나, 상대 아픔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칼을 휘두른 사람이 몰인격적인 사람이 되는 까닭이다. 몰인격적인 사람은 주로 분명히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거나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약점이나 꼬투리를 잡고 역으로 궁지에 몰아넣는 사람이다. 특히 상대의 약점을 이용해 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막말이나 비하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망신당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몰인격적인 사람이다. 인간은 어떤 수단적 가치로도 증명할 수 없는 존재 자체로 존엄한 품격과 존재 이유를 지닌 사람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비하 발언을 일삼는 사람은 몰인격적인 사람이다.
한 후배가 여러 가지로 곤궁에 처해서 측은지심이 발동, 어떻게 하면 그 후배의 어려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를 노심초사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도와주려고 했다. 자신이 처한 딱한 사정을 상세하게 말하면서 억울한 자기 심정을 알아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존경하는 분을 찾아가 이 친구가 처한 현재 상황을 소상하게 말씀드리고 좋은 대안이나 선처를 구할 수 있는 방안도 함께 모색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하루는 후배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상황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자신을 처벌하려는 분을 찾아가 무조건 사과하라는 조언도 주고, 향후 어떤 법적 조치가 내려질지도 모른다고 구체적으로 예견되는 사항도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다. 문제는 이런 대화를 그대로 녹음해서 모기자에게 전해주고 그것이 어느 날 SNS에 전격 공개되면서 본의 아니게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인간적으로 도와주고 싶어서 했던 모든 발언과 조치를 그대로 녹음해서 고발뉴스에 고발하는 이런 친구들은 정말 몽상식하고 몰지각하며 몰염치할 뿐만 아니라 몰인격적인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사적으로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한 내용을 다른 사람 앞에서 고자질하며 공격대상으로 몰리게 만드는 일은 몰인격적이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런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 대체 사람 맞아? 어떻게 이런 짓을 하니?”
해외 칸퍼런스에 참석해서 이런저런 책을 둘러보다 우연히 마주친 한 권의 책이 당시 우리나라 상황에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우여곡절 끝에 번역권을 따낸 적이 있다. 그 책을 한 출판사에서 번역,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그 책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그 후에도 또 다른 책을 번역, 교육프로그램까지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기대만큼 수익을 창출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출판과 교육의 수익구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교육프로그램에 투자한 원금이 회수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용증명도 받고 통장 가압류까지 당하는 난생처음 황당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특히 내가 교수로 처한 위치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공인의 허점과 약점을 최대한 이용, 나를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그 사람의 치밀한 계획과 치졸한 행동은 치가 떨릴 정도로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꼈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무조건 원금을 회수하겠다는 발상으로 약자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거나 인간적인 모욕을 주면서 자기 목적만 달성하려는 한 인간의 모습에서 절망감을 느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몰상식하고 몰지각하며 몰염치하고 몰인격적인 사람의 종합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번역을 통해 기울어져가는 출판사도 살려줬을 뿐만 아니라 정식으로 프로젝트로 계약한 교육프로그램 개발비 포함 수억 원의 돈을 환급하라는 지루한 싸움 속에서 보여준 한 사람의 행동은 몰씨 집안 4형제를 모두 갖춘 전형적인 만나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인간이다. 그동안 베풀어준 은혜를 법적 투쟁으로 몰아세우며 나중에는 조폭까지 동원해서 한 사람의 인격을 짓밝는 행동을 서슴없이 감행한 그 사람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다.
몰씨 집안 4형제 식당에 가다
지금까지 설명한 몰씨 집안 4형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몰상식한 사람은 기본 규칙이나 매너를 모르고 상식 이하의 행동을 일삼는 사람이다. 몰상식한 사람에 비해 몰지각한 사람은 상황 파악 못하고 생각도 하지 않고 눈치 없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몰염치한 사람은 잘못인 거 알지만 얌심도 없이 뻔뻔하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총체적으로 인격이 미달되는 몰인격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인간이하로 취급하고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몰상식과 몰지각은 종종 혼동되지만, 지각이 조금 더 넓은 의미에서 인지하고 판단하는 능력에 가깝고 상식은 마땅히 알고 지켜야 할 보편적인 지식이나 규칙에 가깝다. 그리고 몰염치는 양심과 부끄러움의 문제이고, '몰인격은 사람으로서의 도리, 인간적 존엄성과 존중의 문제를 부정하는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몰씨 집안의 4형제가 어느 날 식당에 가서 음식을 주문하는 가상의 상황극을 만들어 보았다. 네 명의 차이점을 비교해서 관찰하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다.
몰상식한 S: 식당에 들어가 앉자마자 메뉴판을 본다. 바로 이어서 종업원을 부르더니 “여기 주문이요, 뭐 하는 데 불러도 오지 않아요?” 막말을 하면서 메뉴판을 집어던진다. 소리를 버럭 지르며 왜 빨리 주문을 받지 않냐고 야단을 친다. 식당에서 지켜야 할 기본 매너를 지키지 않는 몰상식한 고객이다. 공공장소에서는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규칙이나 매너, 메뉴판을 아무리 급해도 집어던지는 아니라는 에티켓도 모르는 몰상식한 행동의 전형이다.
몰지각한 G: 메뉴가 나오자마자 소리를 버럭 지른다. 내가 시킨 메뉴가 아니잖아. 내가 간짜장을 시켰는데 왜 삼선 짜장을 갖고 오냐고. 너는 귀가 있는 아이니? 뇌도 없어? 왜 말귀를 못 알아듣고 시킨 메뉴대로 안 갖고 오는 거야? 매니저 나오라고 해. 너 해고시킬 수 있어. 메뉴를 고르고 말할 때 내가 발음을 정확하게 못할 수도 있어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많은 손님들이 쳐다보는 상황에서 종업원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고객은 몰지각한 사람이다. 설혹 종업원이 잘 못했어도 조용히 불러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 게 지각 있는 사람을 올바른 처사다. 자기 행동이 종업원에게 심각한 상처가 될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 기분만 일방적으로 발설하는 경우다.
몰염치한 Y: 밥을 여러 번 같이 먹었지만 언제나 계산할 때는 화장실에 가거나 심지어 전화를 오래 붙잡고 계사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리를 비우고 계산이 끝나면 나타나는 사람이 있다. 사실 그 친구는 돈이 없는 사람도 아니다. 무수하게 다른 사람에게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한 번도 계산하지 않는다. 그걸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 그리고 더욱 염치불고한 사실은 늘 그렇게 받을 얻어먹으면서도 밥을 사는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늘 밥은 친구가 사는 게 맞다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자기 행동이 부끄러운 짓임을 알면서도 너무 뻔뻔하고 얼굴이 두꺼워서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전형적인 사례다.
몰인격적인 I: 식당 종업원이 잘 못 알아듣고 메뉴를 다른 것으로 가져올 수도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얼마든지 실수를 하게 되는 상황에 내가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실수를 해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모욕감을 주는 행위는 몰인격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실수한 종업원에게 손님들이 바라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 입에 차마 담지 못할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인간적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그 장면을 촬영해서 SNS에 올리면서 조롱하는 행태를 서슴없이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타인의 인격과 존엄성을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자기 기분대로 상대방을 짓밟는 대표적인 몰인격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몰씨 집안 4형제 통한과 회한의 시간을 갖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어느 카페 구석 테이블, 축 처진 어깨의 몰씨 4형제가 우울하게 앉아 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에서 피어나는 김처럼, 그들의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몰락의 쓴맛을 본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처절하게 되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앞으로 몰락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비결을 하나의 바람직한 대안으로 생각해 보기로 했다.
몰상식(沒常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컵만 하염없이 휘젓는 숟가락 소리만 울렸다. “내가 말이야... 그동안 얼마나 남의 말을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만 하려 했는지 몰라.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그냥 ‘별 거 아닌 거’라고 치부하고... ‘이게 맞아!’ 하고 혼자 우겨댔지, 뭐. 특히 사회생활에서는 진짜 힘들었어. 회의 시간에 혼자 동떨어진 얘기하고, 분위기 파악 못해서 썰렁하게 만들고... 결국 다들 날 피하더라고. 이젠 진짜 알겠어. 앞으로는 남의 말을 끝까지 듣고, 공감하는 연습부터 할 거야! 내 생각과 달라도 일단 귀 기울이고, ‘그럴 수 있겠다’고 인정하는 태도를 기를래. 책도 많이 읽고, 뉴스도 보고... 남들이 다 아는 ‘상식’을 나도 장착해서, 소통할 수 있는 '상식맨‘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어.
그 옆에서 한숨만 쉬던 몰염치(沒廉恥)가 고개를 푹 숙였다. 얼굴이 새빨개진 것 같았다. “난... 나는 염치라는 걸 아예 모르고 살았어. ‘내 이익이 최우선!’ 이랬으니까. 친구한테 돈 빌려놓고 모른 척하고, 실수해도 절대 사과 안 하고 남 탓만 하고... 흑. 결국 주변에 아무도 안 남았지 뭐야. 내가 염치가 없으니 남의 감정도 헤아릴 줄 몰랐던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남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줬을까 생각하면... 밤마다 이불킥 한다 진짜. 이제부터는 작은 잘못이라도 바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할 거야.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늘 조심하고, 도움을 받았으면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보답할 방법을 찾을래. ‘염치’는 남과의 관계에서 나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존중이라는 걸 깨달았어... 이제 ‘염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
창밖의 빗방울을 응시하던 몰지각(沒知覺)이 중얼거렸어. 그의 눈엔 후회가 가득했어. “나란 놈은 정말 지각이 없었지... 항상 약속 시간 늦는 건 기본이고, 모임에서는 핸드폰만 보고 분위기 망치고... 남이 얘기하는데 맥락도 모르고 툭 끼어들었다가 다들 쳐다보면 어색하게 웃고... 내가 왜 그리 눈치가 없었을까. ‘상황 파악’이라는 지각 능력이 아예 없었던 것 같아. 제일 문제는... 이런 내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불편하고 불쾌했을지 전혀 ‘지각’ 하지 못했다는 거야. 이제부터는 항상 시계를 보고 약속 시간 10분 전에는 도착할 거야! 그리고 사람들이 대화할 때는 집중해서 듣고, 분위기를 파악하려고 노력할 거야. 내 행동 하나하나가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생각하는 '지각 있는 사람'이 될래. 이젠 더 이상 ‘몰지각한 놈’ 소리 듣기 싫어!”
마지막으로 턱을 괸 채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몰인격(沒人格)이 천천히 입을 열었어. 그의 목소리엔 슬픔이 묻어났어. “나는... 인간을, 사람 그 자체를 존중할 줄 몰랐어. 다들 내 밑에 있는 존재처럼 대하고, 함부로 막말하고, 남의 감정을 짓밟았지. 그러면서 ‘나를 왜 멀리하지?’ 의아해했으니... 내가 얼마나 한심했는지 모르겠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게 당연했어. ‘인격’이 없는 껍데기만 있었던 거지. 내가 한 행동들은 진짜 인격 파탄 수준이었던 것 같아. 흑흑. 이제부터는 만나는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할 거야. 어린아이 든, 어르신이든, 직급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그 사람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뜻하게 대해줄 거야. 경청하고, 공감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법을 배울 거야. ‘몰인격’이 아니라, ‘따뜻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
넷은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결심을 다졌다. 비록 지금은 몰락했지만, 다시 ‘몰’을 떼어내고 진정한 상식, 염치, 지각,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기로 다 같이 파이팅을 외치면서 대화를 마무리했다. 몰상식과 몰지각, 몰염치와 몰인격은 앞으로 3시를 조심하자고 다짐하면서 다 같이 고민해 보기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3시는 시시, 무시, 과시다. 우선 남의 시간을 시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것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순간의 연속이다. 자기 시간이 소중하듯이 남의 시간도 소중하다.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서 어딘가에 참석했으면 그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시간을 선물로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마치 자기를 위해서 자신들이 시간을 투자해서 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다짐이다. 두 번째 남을 무시, 멸시, 괄시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는 생각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자기보다 힘든 위치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 인간적 모독을 주고 자신의 우월성을 근거로 상대를 깔보는 사람에게는 비즈니스 기회를 갖지 말자는 웨이터 법칙도 있다. 힘든 곳에서 누군가 일하는 사람 덕분에 우리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편리한 삶을 즐긴다고 생각하자. 마지막으로 과시하는 사람, 과거를 기반으로 자랑질만 일삼는 사람을 조심하자는 것이다. 다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지도 않고 무조건 자기 생각에 따르라고 강요하는 소위 ‘가방형 사고’를 하는 사람은 멀리해야 된다. 가방은 밖의 물건이 아무 좋아도 가방에 들어가려면 가방에 크기를 맞춰야 하는 것처럼 모든 주장을 자기주장에 맞춰야 한다고 강요하거나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사람은 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