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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홀러 류 씨 Sep 27. 2017

[프로워홀러의 네 번째 워킹홀리데이-대만편]

1.워킹홀리데이를 네 번이나 하게 된 이야기

외교부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의 2017년 하반기 통신원으로 선발..이라고 하기엔 신청자 전원이 통신원인 것 같지만 아무튼. 안 그래도 덥고 시간 없는데 또 일을 벌렸다.

이 글은 무려... 워홀 인포센터의 페이스북에서 소개되어 90개가 넘는 따봉을 받고 약 70건의 페북 공유가 이루어진 글인데 이걸 쓴 내 입장에선 도대체 왜 공유한 지 알 수가 없다.... 다시 읽어봐도 내용이 없는데...

일단 저장 목적으로 브런치에.


원글

http://cafe.naver.com/woholfriends/1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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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워홀러의 네 번째 워킹홀리데이-대만편] 1.워킹홀리데이를 네 번이나 하게 된 이야기


2017년 하반기 첫 미션인 '왜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두 번째 워킹홀리데이였던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 이 카페에 호주 워홀통신원으로서 올렸던 글로 대신하겠습니다. http://cafe.naver.com/woholfriends/3495

2년 만에 다시 읽어보니- 2년 전의 나는 이런 글을 썼다니, 어디 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을 정도네요. 누가 사라진 제 손발 좀 찾아주세요.
이번 글에서는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것보다 왜 네 번이나 워킹홀리데이를 선택하였는지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1. 네 번이나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선택한 이유

단순하다. 해외에서 살고 싶은데 모아놓은 돈이 없으니 어학연수나 유학은 힘들고. 취업을 하자니 경력은 없고. 초기 자금 250만원 정도만 증명하면 비자를 내준다. 끝.

하면 안되겠지.

하지만 위에 쓴 이유가 90%인 것 같다. 역시 가장 큰 장점은 '발급이 쉽다'는 점이다. 어학연수나 유학의 경우에는 목적이 '학업'에 있기 때문에 '기간 동안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습니다'라는 증명을 해야하며, 그 금액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대략 1,000만원~4,000만원대에 이른다. 또한 어느 나라든 외국인 학생에 대해서는 노동 시간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의 취지가 '보다 쉽게 젊은이들에게 해외에서의 생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에 있는 만큼 워킹 홀리데이 비자는 진입 장벽이 낮다. 나라에 따라 선착순, 무작위 선발 등 다양한 기준으로 워홀 비자를 발급하고 있지만 적어도 그 기준이 '현금 소지액'은 아니니까. '노동 시간에 법적 제한 없음' 역시 돈을 벌고 싶어하는 가난한 워홀러들에겐 너무나도 매력적인 부분이다. 특히 나 같은 돈도 아무 것도 없는 국제 백수 떠돌이에겐.



2. 워홀을 네 번이나 하면 뭔가 다른가

'프로 워홀러'라는 별명은 내가 자신에게 붙인 '자칭'이 아닌, 호주에서 만난 일본인이 붙이기도 했고, 한국의 다수의 지인들이 붙여준, 여기 저기서 얻은 '타칭'의 별명이다. 점점 발전해가는 정착 과정과 생존(?) 과정에서 붙여준 것 같다.

-첫 워홀국이었던 일본에서는 워홀이 끝남과 동시에 유학 생활을 시작해 총 만 4년을 거주했다. 때문에 두 번째 워홀을 시작할 때엔 해외 생활이라는 것 자체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있었고,이미 4년이란 시간으로 이문화의 차이는 당연했고 자극에 무뎌졌다. 김치와 한국 음식은 먹지 않아도 사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었고, 해외 생활이라는 것, 한국 밖에 나가서 산다는 것에 대한 겁도 두려움도 사라졌다.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백 번은 받은 것 같은데 해외 생활을 시작하고, 해외에서 사는 것이 무서웠던 적은 없었다.

-여행으로도 아시아를 벗어난 적 없었던 나는 호주 워킹홀리데이로 처음으로 서양 문화권으로 입성했다. 언어 실력이 낮다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은 없었고 인종 차별 등에 대한 걱정도 딱히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생활 처음해보는 것도 아니고 연차가 얼만데'란 건방진 생각이 나를 대담하게 만든 것 같다.

두 번째부터는 처음이 아니다보니 돌파구를 찾는 요령은 생긴 것 같다. 정착하여 본격적으로 생활이 시작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다. 비행기로 비유하자면 바퀴가 지면에 닿아(입국) 완전히 멈추기(생활 시작)까지의 시간이 짧은 것이다. 종종 운 나쁘면 비행기가 착륙은 했음에도 게이트가 없어 비행장을 몇 십 분이고 빙빙 도는 일이 있지 않은가. 숙련된 조종사가 기가 막히게 랜딩하고 바로 게이트에 주차한 그런 기분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쉽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기 보다 내 상황에서 구하기 쉬운 일을 구하게 된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엔 입국하자마자 일을 구해 생활비를 벌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여윳돈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나는 서비스일은 절대 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던 건 첫 워홀이었던 일본 워홀의 손가락만 빨고 있던 첫 달이 전부였다. 

-사실 그래서 일 구하기 에 대해선 나는 조언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문과여서 죄송한 나는 기술도 장기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었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시작한 서비스업 경력 1n 년, 음식점 주방과 홀 경력이 호주 가기 전에 이미 만 4~5년이었으니 내세울 수 있는 건 이것 뿐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단순하게 '돈을 번다', 업종 자체는 네 나라가 크게 다른 점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호주에서 일을 구한 것은 2주, 대만에서는 24시간 걸렸다. 독일은 3일인가 4일만에 일을 구했지만 바로 지역 이동을 하기로 해서 다소 시간은 걸렸지만 독일과 대만에서는 이력서 통과율은 100%, 면접과 트라이얼(독일은 프로베) 합격률도 100%였다.

20대 초중반이었다면 목적도 목표도 달랐을테니 좀 더 다른,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다. 지금은 나의 가치를 올리겠다는 바람은 없고 주어진 시간 동안 다치지 않고 잘 지내다 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다. 

-집 구하기도 마찬가지다. 일단 임시 거처를 구해 잠시 지내면서 집을 보러 다닌 건 일본과 독일이었고, 호주와 대만은 한국에서 출국하기 전에 미리 집을 구했다. 일본과 대만은 한국인 사이트에서 양도 받았고, 독일과 호주는 일본인들의 현지 정보 사이트를 이용했다. 일본은 처음 임시거처라 한국인 사이트에서 양도 받고 총 두 번 직접 집을 구해 계약해 생활했다. 호주, 독일, 대만은 각각 5명, 3명, 3명의 쉐어하우스였다. 현지에서 직접 실소유주와 집을 계약하는 방법도 있지만 어느 나라든 계약 기간이나 보증인 등의 계약 조건이 최대 거주 기간이 1년(2년인 곳도 있지만)이고 현지에 신원 보증이 없는 워홀러에게 넘기 쉽지 않은 벽인 것이 현실이다. 이점이 현지 유학생들과의 차이이기도 하다.


-짐 싸기 역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 없는지 고르게 된다. 나는 한국에서 쟁여가지 않고 대부분 현지에서 구입해 쓰는 스타일이라 이민 가방은 이용해 본 적 없다. 나라마다 스타일이 다르다보니 외모로는 알아보기 힘들어도 이 사람이 이곳 사람이 아니라 관광객이다-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포인트가 바로 옷과 화장이다. 특히 옷은 확연히 외지인이라는 것이 티가 나기 때문에 나는 현지에서 1년 입고 버릴 옷들을 구입해 입고 돌아올 때 버릴 옷은 버리고 가지고 돌아올 옷들은 가지고 돌아온다. 그래서 갈 때와 올 때의 무게 차이가 크지 않다. 화장품 역시 피부가 민감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현지의 화장품을 구입해 사용했다. 굳이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한국의 가족에게 부탁해서 받는 것도 방법이다. 호주와 대만에서는 작은 박스를 하나씩 받았다. 주로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서 놓고 왔는데 의외로 필요한 어학책이나 물건 등을 받았다. 보내는 데 돈이 들기는 하지만 급한 것 아니라면 배로 받으면 지구 반대 쪽도 대략 한 달이면 도착하니 공항에서 1kg당 3~4만원 씩 추가되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호주 갈 때 3.x kg 초과해서 12만원인가 추가 요금을 냈다ㅠ_ㅜ) 



독일 워홀 시작의 짐은 저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경유지였던 일본에 도착한 날 비를 만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일본에서 26인치 정도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캐리어를 구입했다.




일본에서 구입한 캐리어와 함께 독일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 이동하면서 여행. 
일주일 동안 가져온 짐들을 계속 들고 다녔다.
독일에선 노트북 없이 생활했는데 노트북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있었으면 힘들었을 거다.ㅠ_ㅠ



대만 워홀 출국 시 공항에서. 역시 짐은 이것이 전부.
오히려 저 작은 가방에 22.5킬로까지 들어간다는 것이 주변인들에겐 의문이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귀국할 때 저 가방은 25킬로였는데 힘 꽤나 쓴다는 사람들조차 저 가방을 들고 혀를 찰 정도였다.


3. 여전히, 아직은 현재 진행형인 마지막 워킹 홀리데이

현재 만 32세라 더 이상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발급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내겐 지금의 워홀이 마지막 워홀이다. 호주의 워홀 비자 발급 기준이 만 35세까지로 늘어난다곤 해도 나는 이미 워홀 비자를 사용했고, 당시에 세컨 비자 준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겐 해당이 되지 않는다. 어떻게 좀 안 될까요...

한 지인은 나를 '워킹 홀리데이가 60살까지 가능하다면 60살까지 채워서 워홀을 다닐 사람'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부정은 하지 못할 것 같다. 나이가 있으니 결혼이니 그런 이야기들도 종종 묻곤 하지만 나 자신이 그것에 의지가 없고,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나라에서 생활해보고 싶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번 생에선 네 번이 최대한이었으니. 이만큼이나 했는데도 나는 20대 분들이 부럽다. 지금은 나의 20대와는 다르게 워홀 협정국도 많이 늘어났고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하다. 그 나이 안 쓸 거면 나랑 바꾸자고 하고 싶을 정도다. 


시작하는 글이니 이정도까지만. 
현재 대만 워킹홀리데이의 경우 워홀 통신원 활동이 시작됨과 동시에 하반기에 접어들었고, 워홀 통신원 활동이 끝남과 동시에 나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워킹 홀리데이 생활도 끝날 예정이다.
다음 글에서는 '괜히 불안한 만 30세에 비자 받기, 비자 연장하기'에 대해서 써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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