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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게트 Mar 28. 2018

긴꼬

긴꼬는 3년 전에 죽었다. 꼬리가 구부러진데 없이 매끈하고 길게 뻗은 고양이에게 엄마는 '긴꼬'라는 별난 이름을 붙여줬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이 15년이라고 하는데, 긴꼬는 그 중 3년 반을 살다 갔으니 사람 나이로 치면 20-30대의 나이에 죽은 셈이다.

긴꼬는 아주 영리한 고양이었다. 닫힌 문 손잡이에 앞발을 뻗어 직접 문을 열기도 했고, 살짝 열린 베란다 미닫이 문에 주둥이를 들이밀어 열고 몰래 마당으로 나가 놀다 오기도 했다. 밖에 나간 긴꼬는 동네 고양이들에게 텃세를 부리거나 마당 흙바닥에 오도카니 앉아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다. 하얗던 발이 회색으로 변할 때까지 놀다 들어와선 가족들의 무릎에 앉아 잠들었다.

여느 때처럼 나가 놀던 긴꼬가 꼬박 하룻밤을 밖에서 지새우고 온 날이었다. 긴꼬가 조금 달라졌다. 밤새 가을비가 내려 기온이 뚝 떨어진 탓에 감기라도 들었는지, 그렇게 좋아하던 참치캔도 입에 대지 않고 가족들의 무릎에 올라 앉지도 않았다.이틀동안 침대밑에서 나오지 않는 긴꼬를 보며 "어디 아프니?" 해도 꿈쩍 않고 몸을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별수 없이 학교에 갔다.

"긴꼬 죽을 거래." 밥을 먹고 친구네 집에서 노닥거리던 차에 엄마가 보낸 카톡을 확인했다.

"병원 가면 되잖아. 약 먹으면 되지. 그것도 안들면 수술까지 해보면 되잖아."

"병원 이미 갔어. 급성신부전이래. 이미 상태 너무 안좋아서 약도 수술도 소용 없대."

죽을 거라니. 고작 3년 반밖에 살지 못한 고양이인데, 하루 전까지만 해도 너무 멀쩡했는데,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죽을 거라니. 긴꼬는 아직 죽으면 안 되는 고양이었다. 의사를 쏘아붙이면 무슨 해결책이든 낼 것 같았다. 심란한 맘으로 집에 왔을 때 걸려온 수의사의 전화는 나의 모든 전의를 상실시켰다.

"긴꼬 곧 갈 것 같네요. 마지막은 보셔야죠."

엄마와 함께 급하게 찾아간 병원 구석, 은색 철창 안에 긴꼬가 있었다. 울음소리를 듣고 긴꼬를 발견했다. 긴꼬의 울음이 쇠철창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긴꼬는 그렇게 쇳소리 섞인 울음을 낸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피섞인 오줌이 긴꼬의 아랫배부터 뒷다리를 적시고 있었고, 케이지 바닥에 깔린 신문지를 엉망으로 만들어 언제자 신문인지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집에 데려가도 죽을 겁니다. 안락사 시키세요. 그게 긴꼬 위하는 겁니다."

엄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그래요 주사 놔주세요."라고 말하자마자 의사는 안쪽 방으로 긴꼬를 데리고 들어갔다. "못보겠어 난 안 볼거야" 라며 병원 문밖으로 도망간 내 손목을 엄마가 낚아챘다.

"봐야해. 긴꼬의 마지막을 봐야해."

차가운 스테인리스 수술대에 누워 울어대는 긴꼬의 몸에 주사바늘이 꽂혔다. 주사기 속의 액체가 긴꼬의 몸으로 들어가자 긴꼬는 크게 헐떡였고, 몸이 허공으로 붕 떴다 '퉁'하고 수술대로 떨어졌다. 반쯤 눈을 뜬 상태로, 긴꼬는 들이마신 숨을 내쉬지 않았다. 죽음은 영원한 안식이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안락사'라는 말이 무색하게 긴꼬는 죽음으로 향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스러웠다.

들고 온 케이지 그대로 긴꼬를 데리고 집에 왔다.  그렇게 보드랍고 따뜻하던 배는 큰 바윗덩이가 들어찬 것처럼 차갑고 딱딱하게 변했다. 다 병원때문인 것 같았다. 긴꼬가 있던 차가운 철창과 아무렇게나 깔린 신문지, 죽는 순간 긴꼬의 몸이 부딪힌 스테인리스 수술대. 병원에 있던 그 어느 것 하나도 긴꼬의 죽음을 따뜻하게 보듬어주지 않았다.

엄마는 긴꼬가 가장 좋아하던 담요로 긴꼬의 몸을 감쌌다. 뜨고 있는 눈에 손을 올려 눈을 감겨주고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그날 밤, 엄마는 담요에 싸인 긴꼬를 품에 안고 잠을 청했다. 병원에서 서린 냉기를 다 녹여내겠다는 것처럼. 다음날 아침 일찍 엄마와 마당에 긴꼬를 묻어줬다. 담요에 싸인 긴꼬 위로 흙을 덮었고, 그 위에 한참 서서 흙을 다져줬다.

긴꼬가 죽은지 3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긴꼬가 생각난다. 긴꼬가 보고싶어 어떻게 끝맺어야 할지도 모르겠는 글만 주저리 주저리 쓴다. 보고싶은 우리 긴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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