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포를 위해, 자유를 위해, 훗날 사마가 살아갈 터전을 위해
전쟁터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늘 궁금증의 60프로 정도에 머물러있었다. 잠시 잊혀졌다가도, SNS나 뉴스 기사에 실린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되면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가끔 가다가 눈에 밟히는 정도랄까. 감정의 변화만 있을 뿐, 내가 이 사람들을 위해 뭘 해야겠다, 더 알아보고 관심을 가져야겠다- 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영화 <사마에게>를 본 이유도 그러했던 것 같다. 단지, 눈에 밟혀서였다. 그 사람들의 고통만큼은 알고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같은 인간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배려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화관을 찾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는 시리아 알레포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기록물이다. 그곳에서는 자유를 외치는 움직임, 그에 반대하는 반군과 정부군의 폭격, 공포에 떠는 사람들의 모습이 존재한다. 카메라를 든 사람은 알레포 대학에 다니는 여학생 '와드'였다.
영화 <사마에게>는 제목대로 '사마'라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사마는 영화의 전체적인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인물이다. '사마'는 감독 '와드'의 딸이며, 영화에서는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의 모습으로 나온다. 전쟁 속에서 와드는 알레포의 상황을 알릴 의무와, 어머니로서 사마를 지킬 의무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폭탄이 터진 곳을 카메라로 담고 있다가도 사마가 안전한지 부리나케 달려가 확인하곤 했다. 조용히 자고 있는 사마의 얼굴을 보면서 드는 착잡한 와드의 마음이 영상과 내레이션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 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스스로가 편견을 갖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안에서의 사람들은 비참하고 우울한 모습들만 보이지 않을까 상상했었는데, 실제 영화 속에서의 사람들은 잘 웃고 있다. 폭탄이 터져서 지하실로 피신했을 때, 여럿이서 모여서 "정말 죽을뻔했네!"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미소가 지어졌다. 와드가 두려움에 떨면서 울고 있을 때, 친구인 함자가 프러포즈를 하는 걸 보고 조금 뜬금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에게 선물로 감을 받고 기뻐서 방방뛰는 이웃의 모습도 정말 귀여웠다. 그곳에서도 일상은 있었다. 친구,연인,가족의 사랑이 존재하고 작은 행복 또한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좋아할 때면 머지않아 수차례의 폭탄 소리가 들려왔다. 관객들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그 소리는 예고 없이 찾아왔다. 병원 복도는 피바닥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울부짖음이 계속 몇 번이고 들려왔다.
약 1시간 반 동안 되는 영화 러닝타임이 나에겐 길게 느껴졌다. 수백 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보면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관객의 입장으로서 눈살이 찌푸려지고 "헉"소리가 나오는 장면도 있었다. 나에게는 2시간 안되는 시간 동안 보기 힘든 영화일 뿐이었지만, 더 끔찍한 건 이것이 시리아 알레포 사람들에겐 일상이라는 것이었다.
사진은 작년도에 개봉했던 영화 <가버나움>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12살 된 소년이 자신의 부모를 법정에서 고소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이를 키울 환경과 여건이 안 되면서도, 계속해서 아이를 낳는 부모가 원망스러운 한 소년의 이야기였다. 소년을 포함한 동생들은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제대로 된 복지나 교육의 기회 또한 없었다.
아이들은 매일 같이 길거리에서 주스를 팔고, 밤에는 부모를 도와 마약을 팔기도 한다. 그리고 소년의 여동생이 결혼이라는 명분으로 팔려가는 데, 그 또한 부모가 선택한 일이었다. 결국 여동생은 죽게 되고, 어머니가 소년을 찾아와서 하는 말이라고는 "신은 하나를 앗아가면 또 하나를 선물로 주신단다." 라면서, 새로운 아이가 생겼다고 말을 한다.
"어머니의 말이 칼처럼 제 심장을 찌르네요. 저들이 다시는 아이를 못 낳게 해주세요." 라고 고소하는 소년에게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소년의 부모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나 같은 상황에서 살아봤냐. 가난과 고통 속에서 일상적인 행복조차 누릴 수 없었던 내 마음을 당신들이 아느냐, 하고 말이다.
와드는 결혼을 하고 사마를 낳는다. 그와 동시에 책임져야 할 사람도 생겼다. 자신의 딸과 남편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지속성은 언제 끊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자의가 아닌 타의일 것이다. 와드는 자신과 남편이 죽으면 사마가 고아가 되진 않을까,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까 걱정 한다.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이지만, 와드가 처한 환경은 그 행복을 언제든지 앗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렇듯 힘든 상황에서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는 건 어깨를 무겁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있다. 와드 또한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녀가 카메라를 든 중요한 이유는 사마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이곳에서 알레포를 위해, 자유를 위해, 훗날 사마가 살아갈 터전을 위해 싸워야 했던 이유가 이 영화 속에 모두 담겨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