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각의 연관성
환경에 맞추어 나도 같이 변화되었다고 느끼는 점을 몇 가지 꼽아본다.
첫째, 음식 남기지 않으려는 습관이다. 한국에서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대개 저녁 7시 이후였기에 주중에는 남편, 아이와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주말은 그간의 시간을 소비로 보상하려는 듯 아이와 함께 외식과 배달음식이 잦았고, 음식을 많이 주문해 놓고 모두 먹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억지로 먹지 말고, 먹는데 까지만 먹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지금은 외식이 많지 않지만 음식을 절대 남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아이도 학교에서 음식 남기지 않는 식습관을 실천하고, 남편과 나 역시도 뷔페든 단품이든 주문한 음식은 남기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 소비를 아끼는 측면, 유한한 자원을 선순환하고자 하는 측면, 전반적인 도덕적 측면 (삶에 필요한 음식을 버린다는 죄책감)이 작용한다. 그리고 주변을 보아도 누구 하나 음식을 많이 준비해 놓고 쉽게 버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둘째, 완벽하게 공정하지 않는 순간을 눈감아준다. 사람이 많은 가운데는 애매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레스토랑에서 내가 먼저 왔다고 먼저 메뉴판을 주거나 먼저 주문을 받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트 계산대에서 사람이 붐비면 Kasse(카운터)를 더 여는데 줄을 서있던 내 뒷사람이 더 빠르게 계산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놀이기구를 기다릴 때 뒷사람이 먼저 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순간을 맞닥뜨린다 하더라도 이제는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게 된다.
‘모두가 기다리는 것보다 누군가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전체적인 관점에서 모두가 좋은 상황을 맞이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스위스에 오기 전 친정어머니, 딸과 함께 베트남 여행을 갔었다. 베트남 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 줄을 서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먼저 줄을 서게 되셨고, 바로 이어 한국에서 온 여성 두 분, 그리고 나와 딸아이가 그 뒤를 이어 서게 되었다. 친정어머니가 본인 쪽으로 오라고 나에게 말을 거는 순간 내 앞의 여성분이 매우 날 선 목소리로 “우리가 먼저 왔는데 왜 새치기하고 XX이야, 짜증 나.”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처럼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진 않지만 나 역시도 내가 좀 더 손해 보는 불공정한 순간들에 감정을 소비했던 경험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만일 내가 그 여성분의 상황을 지금 경험한다면 웃으며 먼저 서라고 양보해 줄 여유는 충분히 생긴 듯하다.
셋째, 옷을 사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옷을 사지 않았던 달을 손에 꼽는 것이 더 쉬웠는데 스위스에 온 뒤로 옷을 거의 아니 전혀 사지 않는다. 이유는 첫째, 예쁜 옷이 없다. 무언가를 산다는 것은 우선 내 마음이 이끌려야 하는 것인데 수많은 옷을 봐도 한국만큼 예쁘고 매력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옷이 없다. 둘째, 그러한 옷들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무지 반팔 티 하나에 30 CHF(한화 약 4만 5천 원) 가량하는 옷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셋째, 결정적으로 파는 곳이 없다. 내가 옷을 사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사는 곳이 다소 외각지역이라 백화점, 플래그십 스토어, 팝업 스토어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여기 사람들이 팝업 스토어의 화려함을 알까 싶다.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겠지만...) 만일 우리에게 익숙한 브랜드 간판이라도 보고 싶다면 50km는 넘게 가야 찾아볼 수 있다. 옷을 사지 않으니 옷을 사는 것도 습관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환경은 내가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준다. 사람이 그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스스로 체감하고 있다. 지금의 이 기록이 앞으로의 변화들과 어떤 연결고리로 이어나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