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중 이 생활에 가장 빨리 적응한 사람은 모두 예상대로 ‘딸’이다. 아이는 같은 반 단짝 친구와 주말 Playdate를 원하고, 방과 후 우리 집 초인종이 울리면 옆 동 사는 쌍둥이 언니들과 놀러 나간다. 아이는 원래도 흰 피부는 아니었지만 더 새까맣게 탔고, 이두근과 삼두근을 자랑하며, 매달리기와 철봉에 여념 없다.
틈만 나면 하는 매달리기 연습
누군가 만 5세~6세 아이의 해외이주 준비에 대해 묻는다면, 난 코치의 관점을 잠시 내려놓고 ‘완벽하진 않아도 영어 혹은 그 나라 언어로 소통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좋겠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이 시기 아이들은 소통할 수 있는 또래와 친구가 된다. 한 반 안에서도 독일어 쓰는 그룹과 영어 쓰는 그룹이 나눠지는데,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둘 중 하나는 할 줄 알아야 그룹으로 놀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학교 안에서 딸아이 단 한 명뿐이니, 독일어 혹은 영어를 해야 아이들과 힘겨루기를 하던 싸우던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다.
매일 힘자랑하는 아이들
물론 아이들은 적응이 빠르기에 한국어만 해도 그 환경에 들어가면 다 배우게 되어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 상호작용이 될 때까지 아이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부정적 감정을 혼자 온몸으로 겪을 가능성이 높다. 그 나라언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와중에 영어라도 완벽하진 않지만 할 줄 안다면 집단 안에 높은 확률로 영어를 쓰는 친구들은 있기에 쿠션 역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막상 본인 적응은 보잘것없는이의 의견이니참고만 하면 좋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적응은 어떠한가?
민망하지만 직접 하는(in-person) 상호작용 측면에서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느 정도 융화되었는지 생각해 본다면...) 아직도 갈길이 멀다. 가족 외 타인과 소통이라고는 옆 집에 세 살, 한 살 배기를 둔 엄마와의 안부인사, 학교 선생님들과의 근황 묻기, 몇몇 학부형들과의 아이들 이야기, 마트 계산원분들과의 사무적 대화가 전부다.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남편 회사 상사, 동료들과의 만남인데 회사직원들이 곧 같은 학교 학부형인 경우가 있어 학교 행사마다 만나게 된다.스페인, 이태리, 헝가리, 튀르키예, 영국 등 온갖 악센트가 뒤섞긴 스몰토크를 듣고 있자면 얼굴은 여유롭게 웃고 있지만 이야기 흐름을 놓치거나 질문을 못 알아들을까 봐 초집중하느라 등에서 식은땀 줄기가 흐른다.
부모 초청 전시회에서 작품 설명하는 아이
사람들과 만나 친목도모를 즐겨하는 성격도 아니어서 굳이 문화센터를 다니거나,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주어진 시간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성찰하는 것에 충만까지는 아니더라도 감사함을 느낀다.
비 온 뒤 수줍게 고개를 내민 무지개
그 와중에 우리 집 '주부 역할(Job role)'은 굉장히 경쟁이 치열한데 공석이 되는 순간 남편은 회사근무를 50%로 변경하고 바로 자리를 꿰차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그래서 소소하게나마 책을 읽고, 미드 보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이 시간이 매우 소중하다.(언제역할을 뺏길지 모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