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유학을 한 남편에게 내가 했던 말이 있다. "캐나다에서 그 정도 살았으면 영어를 잘하는 건 당연하지."
이제는 안다. 내가 망언을 넘어서 몹쓸 막말을 했다는 것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이야기했다. 이래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나보다.
스위스에 거주하려면 취업비자가 없는 가족구성원이 독일어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주부가 어딜 가서 독일어를 배우냐는 말이다. 내 얼굴을 보고 독일어로 말 거는 사람도 없을뿐더러쓸데없이"니하오 니하오" 같은 말이나안 하고 지나가면 다행이다.
티브이와 라디오만 틀어도, 나가서 간판만 봐도 모두 독일어라고? Swiss German과 High German은 다른 것투성이고, 또 독일어면 뭐 하나... 인풋이 없으면 그냥 소음이고, 지나치는 추상화에 불과하다. 결국 새로운 언어를 깨우치기위해서는 배움과 학습이 있어야 하고, 해외 이주자가 많은 스위스에서 어학원은 국가적 사업에가깝다.
"keine Vignettenpflicht"를 몰라 한참 번역기를 돌리던 시절이 있었다. 고속도로 사용권 없이 진입가능 표시이다.
성인이 되어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잘한다는 것은 정말 피나는 노력의 연속이다. 또한 지속적인 학습을 위해서는 시간과 돈, 의지와 노력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언어를 잘하는 사람의 노력은 인정받아 마땅하다. (이래서 남편에게 했던 말은 취소라고요...)
나로 인해 애꿎은 가족들이 한국으로 귀환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거주를 위한 독일어 자격요건은 일찍이 받아두었지만 아직까지 독일어를 잘하고 싶고 또 꾸준히 공부하는 이유가 있다. 이 나라에 사는 동안 이 나라 사람처럼은 절대 못하겠지만 삶의 질을 높여 이 나라 사람의 반의 반만이라도 느끼고 즐기면서 살고 싶다는 소망이다. 언어적 한계로 삶을 즐기지 못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매우 크다.
스위스에 살면서 그 나라의 의식주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권리를 주장하고 싶을 때 주장하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따질 때 나는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다. 그 낮은 질의 삶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그리고 언어를 통해 이 나라에 대한 관점을 넓히면 안 보였던 것들이 더 많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 독일어가 매우 목마르다.
오늘도 남편은 옆에서 이야기한다. 스위스 대도시에 살면 독일어 필요 없데. 대도시로 이사 갈까?
"아니, 나는 여기서 사람들이 내 얼굴만 보고 독일어를 못할 거라는 편견을 좀 깨 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