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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스 Jan 26. 2021

3. 철새 교사

계절마다 이동하는 철새처럼 교사는 교실 대이동을 시작한다.


 초등교사는 철새다. 계절마다 움직이는 철새처럼 교사도 새 학기가 시작하는 봄이 오면 교실 이동을 시작한다. 어떤 교사는 교실 이동의 번거로움이 싫어 작년과 같은 학년, 같은 반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교사는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새로운 교실로 짐을 옮기고 정리까지 해야 한다. 2월의 학교는 철새 대이동철에 버금갈 만큼 어수선하다. 교사는 1년 살이 철새다.


 2020년 2월 나는 안양에서 수원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다. 내가 사용했던 교실을 빨리 비워야 후임 선생님이 교실에 정리를 할 수 있기에 서둘러 짐을 옮겨야 했다. 깨끗하게 청소도 해야 했지만, 일단 물건부터 옮기기로 했다.     


 TV에서 보면 회사원들은 부서 이동할 때 작은 박스면 충분하던데 나는 박스로는 턱도 없었다. 교실 책상 위에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고 책상 뒤편에 있던 자료집들, 어디서 받았던 책자를 정리했다. 서랍장 아래 깊숙한 곳에서 먼지가 쌓인 '유리 절단기'를 발견했다. 유리 절단기는 유리 병을 깨끗하게 자르는 도구였는데, 병을 잘라 꽃병이나 연필꽂이를 하려고 산 물건이었다. 미술 시간, 새활용(리사이클링)을 연계한 수업을 하려고 산 물품이었다. 실제 활용 사례를 보고 해볼만 할 것 같아서 구매했는데, 막상 해보니 자르는 과정이 너무 오래 걸렸고 아이들이 직접 자르기에는 위험했다. 우리반 25명 개인별로 고른 유리병을 방과후에 내가 잘라서 할까도 생각했지만, 모두 자르는 데에만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잘라서 아이들에게 주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넣어뒀던 유리절단기가 이제 발견된 것이다. 고민이 시작됐다.    

 

'버려야 할까?' '혹시 놔두면 동학년 선생님이 사용하지 않을까?' '내년에 해볼까? 그냥 가져갈까?'     


 사실 이 고민의 결과는 항상 정해져 있었다. 마지막은 '언제간 쓸 일이 있을 거야. 혹시 모르니까 일단 챙기자' 였다. 결국 나는 유리 절단기를 버리지 못하고 상자에 넣었다. 잊었던 물건들이 고대 유물처럼 계속 나왔다. 이번에는 이미지 카드였다.     


"상담으로 유명한 000 선생님 알지? 이거 그 선생님이 추천한 건데. 엄청 좋대"     

"부모님이랑 대화할 때 어색하잖아? 그때 이미지 카드를 쓰는거야! 부모님이 보는 자녀의 모습과 비슷한 사진을 고르고 설명하는 거지. 어때? 괜찮을 것 같지 않아?"     


 학부모 상담용으로 옆 반 선생님이 추천해 학년 선생님이 다 함께 구매한 이미지 카드였다. 사실 그해 나는 학부모 상담 때 이미지 카드를 쓰지 않았다. 이제껏 내가 해왔던 대로 학부모 상담을 했고, 이미지 카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 수납함에서 잠을 잤다. 잊고 있던 물건을 찾으면 으레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좋기는커녕 찝찝했다. 우연히 오래전 읽었던 책을 살피다가 책에 껴놓았던 돈을 찾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결국, 그날 나는 내 차 앞 뒷좌석과 트렁크까지 꽉 채워 전출 학교까지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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