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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폴스 Jan 27. 2021

중등임용 감독을 했습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을 생각합니다.


  오늘 중등 임용 2차 감독관을 했습니다. 평가 감독은 아니었고 복도 감독관이었는데, 수험 표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나눠주며 간단한 안내를 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추운 복도에서 핫팩을 터트려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예상처럼 시간은 참 더디게 가더군요. 그러자 임용 시험을 보는 대기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복도에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깊은숨을 들이마시고는 평가실로 당당하게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시험 번호 8번입니다."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질문에 답하는 목소리가 드문드문 들려왔습니다. 그리곤 시험 종료 시간에 맞춰 마무리를 하고 씩씩하게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문밖으로 나와서까지 상기된 얼굴이었습니다. 핸드폰을 건넬 때까지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니 문득 7년 전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살다 보면 너무나 간절하게 이 시기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현재이기도, 누군가에겐 미래이기도, 누군가에겐 과거이기도 합니다.


하루하루가 지독하게 힘들 때,

끝이 너무도 아득해서 보이지 않을 때,


  누구나 이런 시기를 겪는데, 제 삶에서 가장 최근에 겪은 시기는 임용 시험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물론, 인생 최대의 고난이었던 군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말이죠. 초등 임용시험 경쟁률을 보며 뭐가 힘드냐 할 수도 있지만 이건 예비 초등 교사의 생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교육대학은 졸업자들 안에서 선발하기 때문에 그 나물에 그 나물인지라 작은 차이로 합격과 불합격이 갈립니다. 다른 직업을 알아볼라 쳐도 중 고등학원처럼 수요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일반 회사에선 교대를 대학 취급해 주지 않습니다. 교대생이 초등 교사 임용에 목매는 이유입니다.


  교육대학교는 4년 제이지만, 매해 지역 교육청의 모집 기준이 바뀌기 때문에 4학년 때 1년 동안 본격적으로 공부를 합니다. 저는 4학년이 되기 바로 전까지 총학생회를 하고 있었고, 그 외에는 음주 가무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4학년이 되자마자 하루아침에 180도 달라져 공부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많이 비운만큼 많이 채우는 수밖에 없고, 많이 논만큼 많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일 7시에 일어나 대학 도서관으로 갔고, 수업을 들을 때를 제외하곤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밤 10시나 11시가 되면 집으로 왔고, 또 내일도 같은 하루였습니다. 주말도, 방학도 없었습니다. 재수생, 취업 준비생, 고시생 모두 비슷한 일상을 살았겠지요. 힘들수록 제 마음의 간절함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제발 합격하게 해 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만 되면 궂은일 다 하겠습니다. 제발요."


  군대에서 전역할 때 많은 남자들이 전역 이후의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군대에서 간절히 꿈꿨던 미래와 군대에서 배운 부지런함이면 뭐든지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개 이런 마음은 6개월을 넘기기 힘듭니다. 천천히 그리고 서서히 군대 시절의 삶이 지워집니다.


  교사 7년 차,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임용시험만 되면 북한도 마다하지 않겠다던 나였는데, 맨땅에 학교라도 세우라고 하면 손수 돌을 골라 학교라도 만들 기세였는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 한다'라는 말처럼 임용 준비생의 간절함은 너무도 희미해진 지 오래였습니다. 형편이 전보다 나아졌다고 지난날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는 저는 영락없는 개구리였습니다. 개구리가 정신을 차리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올챙이'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임용 복도 감독관을 하면서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올챙이 시절의 간절함과 뜨거움을 다시 상기시켜준 시간이었습니다. 오늘부터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부끄럽지 않게 살아보리라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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