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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즈 Nov 06. 2020

더블 캐빈 픽업트럭

원조 효과성과 국익

늘 충돌하는 가치에 대해서 고민할 때마다 더블 캐빈 픽업트럭이 생각난다. 

원조사업을 하면서 차를 제공하는 일이 잦았다. 개도국 현실에서는 사업할 때 차가 없이는 활동이 정말 어렵다. 

우리 전문가를 장기 파견할 때도 그렇고, 현지에서도 지방으로 갈수록 차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차를 많이 사는데, 현지에서는 더블 캐빈 픽업트럭을 사자는 의견을 낼 때가 많았다. 

운전석 1열과 뒤에 2열도 있어서 다섯 명 정도까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있으면서, 뒤에는 짐칸이 널찍하여 많은 짐을 실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 차량 제조업체에 정식으로 해당 국가에 수출하는 적정 차량이 없는 것이었다. 

공식 딜러를 통해서 현지에서 각광받는 차량은 포드나 도요타의 차량이었고, 적정 모델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업 담당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하나는 현지에서 가장 선호하는 가성비 좋은 차량을 사는 것이다. 가성비를 기준으로 차량 선택 시 대부분 일본 차량이 해당된다. 

대안은 제공하는 차량을 투 캐빈 픽업트럭이 아닌 SUV로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현대 기아차를 보낼 수 있다. 


우리가 보통 수원국의 의견을 존중하고 현지에 적합한 사업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주 사소한 차량 구입에서부터 고민스러운 상황이 생긴다. 

국익을 생각하면 국내 차량 판매를 위해 차량 스펙을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현지에서 필요한 건, 거창하게 원조 효과성을 위해서는 일본 픽업트럭이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나는 한 번은 일제 픽업트럭을 샀고, 다른 한 번은 현지 진출한 우리 기업의 SUV로 바꿨다. 

일제 픽업트럭을 샀을 때는 좀 더 젊었고, 원조 효과성이 더 중요하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고, 회사 내부의 반대가 있었다. 

우리 기업의 SUV를 샀을 때는 사전에 무조건 우리나라 회사의 차량을 제공하라는 압력이 있었다. 

그리고 해당 결정을 수원국 담당자와 회의하면서 이야기할 때 나를 바라보던 그분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너희들도 이걸로 장사하는구나'라는 느낌의 눈빛.


상생을 이야기하기는 쉽다. 우리나라의 국익과 수원국의 국익을 동시에 만족시키자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러기가 정말 쉽지 않다. 대부분,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현장에 필요한, 현지에 더 적합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돈이 있기 때문에 협력 사업에서 더 큰 의사결정권을 갖게 된다. 


뭔가 가치가 충돌하는 고민스러운 순간마다 픽업트럭 스토리가 다시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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