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오늘은 춘천에 갔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탔고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시내를 걸었다. 생각은 잠시 멈추었던 것 같다. 혹은, 파란 하늘과 봄 꽃 핀 시냇가에 눈이 팔렸을 것이다. 무색무취의 표정에 밝은 햇살이 더해진 풍경. 갑자기 왜 호떡이 먹고 싶었을까. 꾹 눌린 빵떡에 비치는 검은 꿀설탕의 유혹. 탄수화물과 기름의 만남. 상상으로 그친 후각의 욕망. 하지만 아침은 동네 분식집의 오천 원짜리 라면이었다. 나름, 콩나물까지 올라간 라면. 아침부터 빈속으로 왔다고 말하기 싫었나보다. 저 아침 먹고 왔어요. 점심은 천천히 먹으시죠.라고 부모님께 당당히 말하려고. 점심은 홍게찜이었다. 아파트에 가끔씩 오는 영덕 발 트럭에서 갓 쪄낸 홍게를 팔았던 모양이다. 12마리에 5만 원이면 싸게 산 거라고 자랑하는 엄니. 거 뭐 먹잤것 있냐며 정색하는 목소리는 아부지. 암튼 두 분과 점심을 먹었다. 냠냠. 짜디짠 바닷내. 오늘 춘천을 온 이유는 더 이상 운전을 못하시겠다는 분께서 차를 팔아달라고 해서다. 이석증 때문에 입원했다가 퇴원한 이래로 몇 달째 두통에 시달리시다 보니 기력도 쇠하고 삶의 의지도 약해진 모양이다. 어머니 말로는 매일 아프다고만 하고, 이것저것 짐 버리는 것에 열중이시라고. 뭐 덕분에 집은 계속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아버지는 오히려 어머니가 기억력도 쇠하고 말하는 게 논리도 없고 좀 걱정이라고 하신다. 두 분 다 고혈 앞에 고지혈증에... 다행히 당뇨나 단백뇨는 없지만. 이빨도 튼튼하고 시력도 좋으시지만. 아 어머니는 백내장수술해야 하는구나. 암튼, 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이 아프다고 걱정하면 나는 둘 다 걱정해야 하는디. 흠. 오후에 두통이 덜하다고 하시길래 차를 정리하기 전 마지막으로 화천 쪽에 사는 이모네 농장? 에 방문하기로 한다. 가는 길에 고기랑 닭갈비 포장해서 물 건너 산 넘어 이모네 도착했다. 강원도 숲은 이미 봄이다. 진달래는 한바탕 진했었나 보다. 천도복숭아를 예고하는 몽우리가 삐쭉. 두릅과 엄순은 좀 더 자라야 한다. 마늘은 잘 크고 있는데, 양파는 다 얼어 죽었다고 한다. 할미꽃은 왜 저렇게 우리 딸의 할미처럼 축 쳐졌는고. 사과 꽃이 머리를 삐죽 내밀었고. 매실나무 환하게 꽃 피웠고, 비 맞은 표고버섯은 색이 진해졌다. 미나리가 물에 잠겨 크는 줄 첨 알았고, 돌미나리와 닭갈비의 만남도 아주 향기로웠다. 벌들은 물가에 윙윙. 작은 계곡엔 개구리가 개구리 위에, 그래서 올챙이가 가득. 가재는 쎄부렀다던데, 어디 젖은 낙엽 아래 숨었을까. 멍뭉이는 멍멍. 닭장은 웬 오리소리 꽥꽥. 멀리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송은 스슬스슬. 화목 난로에서 뿜는 메케한 연기. 쇠사슬 묶어 만든 그네의 삐걱거리는 소리며, 비닐하우스 비닐 떨리는 소리들. 그 아래 아직 덜 자란 상추들은 오늘 못 먹었다. 봄나물로 가득한 식탁에 둘러앉은 오후. 이모는 내 어릴 적 옆 집 살 때부터 나를 뭉치라고 불렀었다. 뭉뚱 했었나 나. 뭉뚱 한 배를 내밀며 가득 쳐묵하고 물적게 탄 달달이 봉지커피까지 들이부었다. 끄윽. 이제 차를 내다 팔면, 부모님도 이모네 자주 오기 쉽지 않을 텐데. 4년간 춘천시내와 산속마을 오가던 부모님의 3도 4촌의 삶이 변화하는 순간이다. 이제는 누군가가 운전을 해 드려야 하니. 휴우. 작년에 큰 아버지 두 분, 외삼촌 한 분. 그렇게 보내 드리고 나니, 이제 다음번 일가친척모임에선 내가 호스트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선지 꿈속에선 내 손님들이 많이 찾아온다. 장소는 어릴 적 뛰놀던 산천동 공덕동 산동네이고. 어떤 시간은 좀 더 천천히 지나가길 바라며, 나도 천천히 기차에서 기대어, 졸다가 깨다가, 집에 도착했다. 오늘은 날씨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