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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cial scope Feb 21. 2021

[기획자의 책 읽기]8. 기획회의529호 #코로나1주년

또 다른 처음을 직면하기 위한 지난 시간들

2020년을 마무리하면서 으레 그렇듯, 다음 해를 예견하는 트렌드 책들과 용어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들어온 단어가 하나 있었다. AC 1년. AD도 아니고 BC도 아닌 AC. 'AFTER CORONA'의 약자였다. AC 1년을 전망하는, 공통으로 관통하는 문장은 이 하나였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코로나를 겪은 이상,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일상을 구축할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이번 기획회의 529호에서는 이를 얘기하고자 한다. 팬데믹이 종식된 후인, '또 다른 처음'을 직면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코로나로 우리가 겪은 것과 견뎌낸 것은 무엇일까. 최은영의 단편 [비밀]의 문장처럼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하는 게 우리 모두의 바람이겠지만, 그런 최악의 상황이 왔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외의 사건이 안겨준 이외의 성찰>

2차 유행이 가속화될 무렵이었나. 작년 하반기에 이르면서부터 회사는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미적거리면서 8시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밥을 먹고 대충 상의만 갈아입고 누워있다가 9시 30분쯤 그룹웨어로 출첵을 하고 10시에 줌 회의와 함께 업무를 시작했다. 전철 마지막 칸, 끝자리에 앉아서 졸고 있을 시간에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있으니, 새삼 '9시 30분에 일어나서 출근한다'던 자취하는 동료의 말이 생각났다. 이래서 자취를 하는 건가. 


재택근무를 하는 날은 게임에서, 떨어져 가던 생명치가 야생 열매를 하나 먹고 올라가는 것 같았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날엔 어쩐지 체력이 더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출퇴근에 드는 4시간을 편하게 보내는 경험을 하자, '시간은 살 수 없는 최고의 가치'라는 명제가 진리처럼 느껴졌다. 시간은 언제나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인간들의 외부 출입이 통제되자 대기가 깨끗해지고, 터를 잃었던 야생동물들이 모습을 비췄다는 기사를 여럿 봤었다. '함부로'는 언제나 문제였다. 나는 이 정도의 변화를 체감하지는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지나가던 것들의 소중함을 깨우치는 계기로는 충분했다.

처음엔 '잃어버린 일상'에 대한 안타까운 탄식만 쏟아내던 저자는 시간이 흘러 비非일상으로 여기던
일상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전염이 우리 자신을 폭로하는 것'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45p-  '코로나19 1주년, 책과 함께. 의외의 사건이 안겨준 이외의 성과' 中


재택근무로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 눈에 띈 건 거실 바닥의 먼지들이었다. 그 다음 주방에는 설거지 거리가 보였고, 음식물 쓰레기가, 화장실에서는 머리카락이, 베란다에서는 떨어진 식물의 잎사귀들이 눈에 보였다. 매주 있는 분리수거일은 왜 이렇게 빨리 오는지, 집에서 일주일 새 쌓이는 플라스틱의 양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가사일은 '노동' 임이 명백했다. 


그렇게 나의 공간이라 여겨지지 않은 곳에 더 오래 머물면서 직장인이자 엄마인, 엄마의 시간을 이해해보게 되었다. 이해할 수 없던 엄마와의 말싸움의 근원이 여기에 있었으리라.  




<서퍼들은 7번째 파도를 기다린다>

라디오 작가로 20년을 일하다가 연남동에서 독립서점 '서점 리스본'과 '서점 리스본 포르투'를 운영하는

정현주 대표는, 작년 한 해를 버텨내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선택을 지속했다.

라디오 작가 시절 인터뷰를 하면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든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는다. 나에게 내가 세상에 쓸모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하게 해 준다. 라디오가 가진 힘을 스스로에게 보여준다. 20년 일하면서 얻은 결론이다.
-80p-  '서점 리스본 포르투의 시작, 책 선물 가게' 中


서점 2호점을 연 후, 코로나로 문 닫는 날이 많아졌지만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대신,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했다. 온라인 활동을 강화하고, 끊임없이 택배를 쌌다. 닫혀버린 대구의 시민들에게 책을 신청받아 중고책을 무료로 보내기도 했다. 단골들은 무상으로 책을 기부했고, 대구에 책을 보냈고, 대구에서는 메시지들이 날아왔다. 단절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너그러운 건물주는 몇 달간 건물 임대료를 인하해줬고, 그렇게 정현주 대표는 지난 한 해를 무사히도 버텨냈다. 

‘2호점을 포기할까? 꿈을 접어야 할까?’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아니! 다른 꿈을 꾸는 거야. 전국구 서점이 되자!’
-83p-  '서점 리스본 포르투의 시작, 책 선물 가게' 中


월세가 '비싼 수업료'가 되었다는 글쓴이의 말처럼, 종종 우리는 큰 대가를 치르고 무언가를 깨닫기도 한다.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재앙이 1년째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마냥 주저앉고 있지만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처음 겪는 혼란 속에서도 우리는 늘 답을 찾으려 노력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급작스럽게 생긴 내 시간에, 운동을 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키보드가 아닌 색연필과 식물을 만지기도 했다. 면역력을 기르기 위해 더 잘 챙겨 먹고, 숙면을 취하기 위해 노력했다. 주말에도 힘든, 아빠와 저녁식사를 하기도 하고 만나기 어려운 지인을 신년회라는 명목 하에 온라인에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쩌다가 성사된 친구과의 만남에서는 서로의 이야기에 더 집중했다. 


그렇게 이 지긋지긋한 1년을 무사히도 잘 버텨내었다. 팬데믹이 종식된 후의 나의 모습을 온전히 직면하기

위해, 통째로 날려버리고 싶은 이 시간들을 잘 건너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의 상황 악화는 없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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