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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15. 2024

Feb 04. 2022 의 지난 일기

오염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철렁. 요즘 주위 분들의 우환을 자주 듣는다. 개중에서도 암에 걸렸단 소식이 많다. 한 10년 전만 해도 암은 멀리, 우리와는 상관없는 얘기 중 하나같았는데 이제는 슬프게도, 꽤나 밀접한 관계가 된 것 같다. 오늘도 지인의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제자리암인 줄 알았던 게 얼마 전인데, 개복을 해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단다. 단숨에 2기를 지나 3기 판정을 받았다. 암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내가 잘 알지.


술도 담배도 안 하시는, 매주 2번씩 족구동호회에 나가 공을 뻥뻥 차던 우리 아버지는 어느 날 갑자기 암 판정을 받으셨다. 수술과 항암을 반복하며 고된 시간을 보내셨고 지금도 재활에 힘쓰고 계신다.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계시지만 엄마는 여전히 가슴을 졸이고 계신다. (암은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 최소 5년이 걸린다. 재발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내 친구의 아버지와 또 다른 친구의 어머니, 지인의 언니가, 멀게는 sns를 통해 알게 된 나의 동료들이, 암과 사투 중에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미세플라스틱과 방사선이 가득한 물속에 사는 물고기나, 오염된 땅에서 자란 풀들을 먹는 동물이나, 미세먼지가 가득한 도시 속 다닥다닥 붙어 배달음식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의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그런 생각. 지구 배는 이미 반쯤 물에 잠겨 침몰하고 있는 중 아닐까-하는, 섬뜩하고도 시린 생각.


공기청정기를 쉼 없이 돌리고 정수기 물을 마시고,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암만 먹어도, 우리는 이미 커다란- 오염된 큰 어항 안에 잠겨있는 것 아닐까. 더러운 물속에 이미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전부 잠겨 있으면서, 입과 코를 막았으니 나만큼은 깨끗하고 안전하다고 착각해 버리는.


친구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비닐봉지를 전부 없애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환경에 관심이 전혀 없지 않은 나인데도 그 말을 듣자 반발심이 생겼다. 비닐봉지와 랩을 쓰는 건 지금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지인의 연락에 가슴이 철렁하며 손에 든 비닐봉지가 불편하게 보인다. 주위를 둘러싼 물건들 중에 자연스러운 물건이 어디 있던가.


유리그릇에 담아놓은 김치와 1회용 비닐봉지에 담아놓은 김치는 같을까. 우리는 아마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를 사지로 내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10년, 그리고 20년도 더 전부터. 쌓이고 쌓여 지금에야 발현하기 시작한 것들에 이제야 어쩔 줄 몰라하며. 10년쯤 뒤엔 암이 감기처럼 흔해질 것 같단 무서운 생각을 해본다.

감기약처럼 암 치료제도 무수해지겠지.


점점 더 짜고 자극적인 맛이 필요한 세상이다. 뭐든 더 독하고 강한 것들으로 우리 몸을 대하고 있다. 몸은 버티지 못하고 찌그러진 세포를 만든다. 가장 끝에 살아남는 건 무엇일까? 피할 수 없는 충돌 앞에 맨 몸으로 서있는 기분이라 스스로가 한없이 작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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