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이빨즈2

타고난 사람이 노력까지 하면 따라잡을 수가 없..

by 릴리슈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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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버지처럼 입천장에서 뭔가 발사되듯 튀어나오는 일은 다행히도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에 나오지 않는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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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가의 수혜를 받은 아랫니들과는 달리 아버지의 핏줄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윗니들 때문에,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교정 상담을 받으러 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 될 것이 없었지만, 여느 상담처럼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는 얘기가 달라졌다. 내 윗니의 뿌리들 그 위로, 무언가 하얗고 거대한 것이 하나 있었다.

송곳니였다.


내 윗니들의 왼쪽 공간은 다소 널널했는데, 우리는 단지 치열이 고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송곳니 하나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아 이빨의 개수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 나오지 않았을까? 알 수 없었다. 그저 거기에 있는 것만을 이제야 알았다.

컴컴한 잇몸 속에서 저렇게 커질 때까지 외로이 홀로 자랐을 나의 송곳니야. 너를 어쩌지?

"어쩌긴요. 빼내야죠."


잇몸을 활짝 열어 송곳니에게 빛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자랄 대로 자라, 안에서 부수어버리지 않으면 도저히 꺼낼 수가 없는 크기였다. 온갖 종류의 도구들로 산산조각이 나서야 송곳니는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거의 능지처참 및 오살과 육시 수준이었고, 그 이빨의 본체인 나도 거의 그렇게 된 기분이 될 때쯤에야 치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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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왔을 송곳니의 빈자리는 나사못이라고 쓰고 임플란트라고 읽는 가짜 이빨로 채워졌다.

그러나 의사의 솜씨가 내 치아의 괴랄함보다 더욱 괴랄했음을 그때 알았었더라면..

이후 20여 년 간 어느 치과를 가나 그 임플란트가 오르내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박았어요?" 라고 나에게 묻는 수많은 치과의사들이여, 이제 저에게 그만 물어주세요. 제가 가서 그 의사를 묻어버리고 싶으니까..


* 의사의 무덤, 비석은 삐뚜름한 임플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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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당시에는 그 일을 몰랐으니 임플란트를 입에 박아 넣고 본격 교정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프기만 하고 진척이 없어 어린 나는 GG를 외쳤다. 바쁜 어머니는 딸을 달랠 기력이 없어 우리는 교정을 그만 두기로 했다.


당시엔 나의 부족한 인내를 탓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워낙 잘 참는 아이였던 내가 참지 못할 정도였다면 진작에 끝냈어야 했을 일이며, 그따위로 임플란트를 박아 넣은 그 양반에게 더 이상의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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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의 윗니즈는 그렇게 삐뚜름한 새 식구까지 얻어 더욱 기묘한 모양새로 20여 년을 지냈다.

그럼 어머니께 받은 나의 고른 아랫니즈는? 아랫니들은 불행히도 윗니즈와 세뜨가 되어갔다. 이것은 조상님네들을 탓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고, 나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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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안 하면서 시험 걱정하는 스타일이었던 나는 언젠가부터 불안한 마음이 들면 손톱을 물어뜯곤 했는데, 그것을 멈출 수가 없는 데다 점점 더 뜯는 정도가 거세어져서 결국은 치열을 뒤흔들 정도가 되었다.

윗니들은 원래 그래서 티가 안 난 건지 어쩐 건지 별로 뒤흔들리지 않은 것 같은데, 연예인 이빨 같았던 아랫니들은 약 10여 년이 지난 뒤 이쪽저쪽으로 어깨를 돌려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다.


게다가 그 습관은 부끄럽게도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때문에 아랫니의 다정한 모양새와 함께 양손톱의 치명적인 귀여움까지 얻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손이 작아 손톱이 작은데, 물어뜯는 습관 때문에 손톱들이 거의 8세 아동 수준으로 멈춘 것이다. 덕분에 네일숍에 돈 쓸 수 없어 감사하다고 해야 하나.


* 이빨 씹는 그림 + 미니미한 손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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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습관을 고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썼었다.

손톱에 진한 색 매니큐어를 잔뜩 바르거나, 쓴 맛이 나는 연고 같은 것을 바르거나, 반창고를 붙이거나, 뭐 그런 것들이었는데 모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마음에 평안이 조금씩 찾아와 어느 정도 차곡차곡 쌓이고 나서야 그 습관은 조용히 나를 떠났다. 유난스러운 습관이었던 만큼 유난을 떨며 사라질 줄 알았는데 어느 틈엔가 그 습관은 나를 떠나 있었다.


'간다고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가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컸다.

"잘 가, 다른 사람한테 가지 말고 꼭 혼자 잘 살아."

지긋지긋한 옛 연인에게 할 법한 말 같은 것을 혼잣말로 건네며 그렇게 그를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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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습관이 있는 한 교정이란 의미가 없어 오랫동안 다시 교정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그가 떠났다는 것을 알고 나서 나는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3월의 어느 날 밤이었다.

문득 교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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