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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슈슈 Oct 18. 2022

정면승부하겠다

시집을 빌려와 놓고



시집을 빌려와 책상 앞에 와 앉았다.

국문과 친구들이 동서고금의 시를 B급으로 패러디하며 끝없는 개그 격돌을 벌일 때마다 속절없이 웃고만 있었던 지난날의 내가 떠올랐다.


“국문과 녀석들이니 당해낼 수가 있나!”

이른 열패감과 무력함에 사무쳐 있을 시간에 시집을 한 자라도 더 봤으면 하잘 것 없는 반격이나마 시도해볼 수 있었을까? 아니오. 지난하고 하찮은 시도에 10년은 비웃음을 당했을 것.


어디엔가 잘 살고 있을 친구들에게 뒤늦은 결투장을 보내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몇 달 전부터 시집이 읽고 싶었다. 이상하게 손이 가다가도 금방 떨어지던 시집들. 시집은 다 그런가 봐 싶었는데 누군가들이 읊어주는 시들에는 또 그렇게 가슴이 눅눅해졌다.



플래너를 꾸준히 쓴다는  자기에게 맞는 플래너를 만날 때까지 억겁의 플래너를 떠나보냈다는 의미라던데 그렇다면 나는 억겁까지는 아니더라도  권의 시집 정도는 정면으로 승부를 펼쳐봤던가?  까지 생각이 미치며 약간 반성하는 마음으로 오늘 도서관에  시집을 하나 골랐다. 우연찮게도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라는 제목의 시선집이다.


시와는 ‘다시’ 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옛 친구들, 시답기 짝이 없는 헛소리들과 많은 은유들로 숨기고 또 내보였던 애정의 마음들이 떠올라 그 시간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이렇게 뻔한 얘기나 쓴다고, 니가 아직도 이모양이다고 저 녀석들이 낄낄거리는 것 같아서,  “아잇참!!” 하고 이 뻔한 얘기를 다 지워버리고 싶다.







#단정한100일의반복

#시

#낄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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