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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dison May 20. 2019

누구를 위하여 북을 울리는가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Little drummer girl)>

이스라엘 외교관의 아들이 폭발 테러로 사망하며 시작하는 이 비극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수장인 마틴 쿠르츠(마이클 섀넌)에 의해 새로운 복수극 아닌 복수극을 쓰게 된다.
주연으로 캐스팅된 배우는 찰리(플로렌스 퓨)는 가디(알렉산더 스카스카드)에게 사랑에 빠지며 위험천만한 극에 참여하게 되고,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의 내핵까지 폭파시키려는 시나리오는 긴장 속에 막을 올린다.


현실과 픽션을 오가는 위험한 외줄 타기를 하는 찰리는 역할에 충실한 배우인 동시에, 생각한다. 자신의 배역에 대해 끝까지 의문을 놓지 않는다.
파드메(뤼브나 아자발) 등 과 레바논에서 시간을 보내며 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이스타인 양 진영 모두 절대 선과 절대 악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찰리는 의무감과 사랑하는 이를 두고 배역을 놓을 수 없다.
결국 타의에 의해 피로 물든 연극이 막을 내릴 때, 칼릴(샤리프 가타스)는 묻는다. 당신은 누구냐고. 시오니스트냐며. 이에 찰리는 자신은 배우라고 답한다. 칼릴의 죽음에, 연루된 팔레스타인 조직의 죽음에 찰리는 다시 생각한다. 총자루를 쥔 건 타인일지라도 방아쇠를 당긴 건 자신이 아닌가.
결국 찰리가 울린 북은 누구를 위함이었을까. 이스라엘 진영, 가디, 혹은 그녀 자신을 위해.



<리틀 드러머 걸>은 기존의 건조하고 스릴 있는 첩보물과는 다르다.
이전까지의 어느 첩보물보다 강한 색채에, 개개인의 캐릭터의 특징 또한 색채만큼 강렬하고 촉촉하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를 찍을 때 아쉬운 점 중 하나가 조연들이 돋보일 기회가 없다는 것이라 밝힌 적이 있는데 <리틀 드러머 걸>은 그 특징을 최대한 살려내어 조연들의 서사 하나하나에도 숨을 불어넣었다.
개인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진영을 연기한 배우들의 깊은 눈에 가장 마음이 동했다. 그들의 눈을 보며 거짓말을 해야 했던 찰리가 흔들린 이유도 충분히 납득이 갈 만큼 깊은 눈이었다.
찰리는 급진적 운동권서 펼치는 스피치에도 참석한 적이 있지만 그녀의 정치에 대한 정체성은 모호하다. 마틴은 그 점을 파고들었다. 너는 누구냐고. 배우면 배우답게 큰 물에서 그런 것 신경 쓰지 말고 놀아보라며.
결국 이 드라마는 정치색 짙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기 이전에, 찰리, 더 나아가 개개인에 대한 정체성을 논한 드라마다. 당신이 옳다고 믿는 것은 과연 진정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해 끈질기게 묻는다.
찰리의 픽션은 결국 가디에 의한 칼릴의 죽음에 끝나지만 그녀는 아직도 픽션과 현실 사이를 헤맨다. 당신은 살림인가요? 아니면 가디인가요? 내가 있는 이 곳은 픽션인가요, 현실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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