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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dison Jun 23. 2021

<피아니스트> - 영웅의 부재

슈필만은 피아니스트이며, 그의 삶과 시선은 예술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하다. 

호감이 가는 이성과 데이트 기회도 잡은 그는 온화하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것이란 걸 잊지 말라는 듯, 어김없이 폭격과 함께 먹구름이 몰려온다. 폴란드로 나치가 침투하고 스멀스멀 스며든 불안한 소문들은 이내 그의 현실과 미래까지 뿌옇게 감춰버린다. 



크게 동요하지 않았던 슈필만이 가족들과 아주 우연히 생사의 갈림길에서 갈라진 후, 그는 한없이 무력해진다. 슈필만은 여전히 훌륭한 피아니스트이지만 그에게는 더 이상 가족도, 연주할 피아노도 없다. 살아온 이유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잃은 채 폐허에서 울먹였던 그의 표정이 더 처연해 보였던 이유는 아마 누구도 이 고통의 끝을 단정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인들은 필요성에 의해, 혹은 아무 이유도 없이 나치 군에 의해 너무 쉽게 삶의 지속성 유무를 재단받는다. 살아온 세월만큼 제 각각의 서사를 쌓아왔을 이들은 무력하게 총알 한 방에 숨통이 끊어지고, 휠체어에 앉은 채 창문 밖으로 떠밀리는 그들의 죽음엔 그 어떤 비장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얇은 벽 하나를 두고 인간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애처롭게 죽음을 피해 가려는 사람 간의 구분이 상식적으로는 전혀 말이 안 되지만, 이에 항의할 수 있는 이는 본 영화에선 등장하지 않는다. 큰 변칙 없이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영화의 플롯은 영화 속 인물들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정면으로 닥쳐오는 고통스러운 상황들을 어찌해보지도, 피하지도 못하며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 한 슈필만의 유약함을 바라보고 있자면, 애드리언 브로디의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쉰들러 리스트>를 보게 되어 자연스럽게 두 영화를 연관 지어 곱씹어 보았는데, 본 영화에선 영웅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슈필만은 개구멍 속에서 고통에 발버둥 치는 어린아이에게 손을 뻗어 보지만 아이는 숨졌고, 그의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은 그들에게 당장 닥친 허기짐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는 은신처에서 발견한 낡은 피아노 앞에서도 조심스럽게 손만 올려볼 뿐 벅차오르는 마음을 감춰야 하고, 그에게 뻗치는 동정과 도움의 손길을 소극적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에게도 선한 마음과 의지가 있지만, 상황 앞에선 지독하게 무력한 인간일 뿐이다.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피아니스트는, 사랑했던 여인의 앞에서 가장 먼저 먹을 것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고, 가족과 친지를 학살하고 자신을 이 지경으로 만든 증오하는 나치이지만 덮을 것 하나 없던 뼈를 갉아먹는 추위 속 그들의 상징이 박힌 코트를 벗을 수 없었다. 


또한 대다수의 관객들이 슈필만의 목숨을 구해 준 나치 장교, 호젠펠트를 영웅이자 생명의 은인이라고 칭하지만, 그를 선한 영웅이라고 하기엔 나치 장교라는 그의 위치와 완벽하게 모순되며, 또한 <쉰들러 리스트>의 쉰들러처럼 부조리를 깨닫고 부조리를 청산하는 데 일조하며 갱생했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다.

장교는 소위 말하는 사이코패스인 악마 나치가 아니었을 뿐 평범하기 그지없는 악인일 뿐이고, 슈필만은 그냥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역설적으로 그가 피아니스트가 아니었고 그 자리에 피아노가 마침 없었다면, 또 만일 손을 다쳐 연주를 제대로 끝내지 못했더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슈필만을 구한 것은 장교의 온정도, 그의 피아노 실력도 아닌 상황에 맞아떨어진 운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엔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보통사람들보다 더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했던 사람들과, 피해자 그리고 나치만이 존재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처연한 이야기에 더 공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운에 기댈 수밖에 없던 슈필만을 보며 그에게 조금만 더 운이 따라주길, 부디 무사하여 다시 연주할 수 있길 함께 바랄 뿐인 관객도 무력 하긴 슈필만과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데 사치라고 천대받는 예술이, 폐허 속 연주처럼 언젠가 다시 반짝반짝 우리의 삶 속에서 빛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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