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방문자의 건조한 일기장 01
"인도에 가야겠어"
일본, 중국, 동남아까지 가까운 여행지는 모두 가 본 참이었다.
출근-야근-퇴근에 반복된 일상은 지루하기가 짝이 없었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뻔한 여행지말고 그럴듯한 진짜 여행지를 가고싶었다. 그러던 와중 여행자들의 성지인 인도가 눈에 띄었고 직항 비행기를 보자마자 홀린듯이 표를 끊었다. 출발도 전에 꽤 그럴듯한 여행자가 된 기분이여서 들떠있던것 같다.
회사에선 바쁜 일이 끝나가던 참이었고, 설이 껴있었고, 어쩌다 보니 생일까지 껴있었다.
거창하게 'Refresh'라는 단어를 갖다 붙인 인도 여행기는 습하고 뿌연 델리 공항에서의 춥고 배고픈 노숙으로 막을 올렸다.
겨우 2주도 안 되는 여행에 인생의 큰 의미를 찾을 거란 기대는 않았다. 그저, 그토록 회피하고 싶었던 지긋지긋하고 추웠던 서울의 겨울로부터 도피하기엔 그럭저럭 괜찮은 핑곗거리였다.
짜이나 마시면서 유유자적하고자 했던 바라나시는 비유하자면 홍대 주차장거리를 압축시켜놓은 듯한 바글바글한 도시였다. 홍대 주차장거리와의 차이점은 그 바글바글한 행인들 사이로 오토바이가 지나다닌다는 정도?
무표정으로 오토바이의 경적을 울리던 사내가 힘든길을 용캐도 뚫는 모습은 새삼 대단했다. 그걸 또 무표정으로 비켜주지 않는 행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바라나시를 향한 여행자들의 환상가득한 오리엔탈리즘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바라나시의 시내는 사기꾼들과 경적소리만이 반겨주었다.
소음과 인파, 매연에 이골이 나서 첫날은 그냥 퀭한 눈으로 드러눕는 수밖에 없었다.
원목으로 된 베드에 혹여나 나타날까 싶은 베드버그가 무서워서 불을 켜고 잠들었고, 와중에 젊어고생은 사서 고생을 되뇌었던 것 같다.
정말 들은 것처럼 가장자리엔 화장터가 있었고 조금 비껴 나자 빨래를 하는 사람들, 목욕을 하는 사람들, 보트삐끼들과 사방에 드러누운 사람과 개들까지 장관이 펼쳐졌다.
사실 척 봐도 비위생적인 저 강을 사랑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진 않았다.
이틀째에, 철수네 보트를 타며 철수씨의 이야기를 듣자 그제야 갠지스강이 왜 인도인들의 성지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갠지스에 화장을 하는것은 인도인들에게 숙명같은 일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시체와 함께 태울나무에 따라 값이 천차만별 이란것은, 아직까지도 카스트제도가 묻어있는것 같아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내가 그들을 비판할 수 없는것은, 그것이 아직까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갠지스엔 인도인들의 삶과 죽음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그 옛날 기승전결빵! 을 단숨에 내뱉던 B급 홍콩영화가 떠올랐다.
한강이 한 씬을 지루하게, 혹은 안전하게 늘어뜨린 필름이라면 갠지스강은 '니가뭘좋아할지 몰라서 다붙여봤어.' 하는 느낌으로 오만 장르를 잘라 붙인 발리우드의 필름이었다.
매체에서 흔히 말하던 바라나시의 낭만은 없었다.
그저 수많은 짜이팔이의 전부 달랐던 짜이 맛처럼, 수많은 이들의 이어져왔고 앞으로도 이어질 삶만 남았다.
굳이 주연이 필요 없는 영화였다. 나 역시 엑스트라로서 지나가는 행인의 롤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