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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May 02. 2024

컬럼비아대 NYPD 진입, 2차_240430-0501

미국생활 257-8일 차



학교는 사실상 어제부로 폐쇄됐다. 학교 내 기숙사에 살지 않는 이상 학생은 출입이 불가했다. 학교 바로 아래 건물에 살지만, 공지메일이 당일 아침에 와서 학교 문 앞에 가서야 출입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캠퍼스 내 시위 중인 학생들을 고립시키고 결국 체포하려고 하나 보다 싶었다. 하루 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어제는 수업이나 조모임을 캠퍼스 밖 학과 사무실 건물에서 했는데, 오늘은 이 건물도 학생들 출입이 금지됐다. 학생들의 안전을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싸우는 느낌..


저녁에는 결국 난리가 났다. 학교 주변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던 경찰들이 학교로 밀고 들어갔다. 학교 메인캠퍼스 바로 아래 기숙사에 살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도 사이렌 소리, 헬기 소리, 경찰들과 시위대가 소리 지르는 게 훤히 들렸다. 학교 교문 앞에 가서 지원 시위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임산부의 몸으로 혹시라도 휩쓸려 다칠까 봐 불편한 마음으로 내내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군대인줄 …


처음에는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갈등 관련 시위가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는데, 지금은 안타깝고 마음이 불편하다. 점차 내 마음이 동조가 되었나 보다. 아무리 먼 지역의 얘기라고 해도 내가 너무 무심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옳고 그른 걸 떠나서 그냥 두기엔 그곳 사람들의 삶이 너무 참혹하다. 가자지구의 기아 현황은, 국제기구에 기아 현황을 집계하는 IPC가 집계를 한 이례로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었을 때,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바라봤을 사람들의 심정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생계를 생각하며 부끄러워하며 있었을 것 같다. 남편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죄책감이랄까 부끄러움이랄까 그런 비슷한 마음이 내내 든다. 나는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더 떨어져 있었던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학생들이 나서는데 어른인 내가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게 맞나 싶다. 그리고 가자지구의 참혹한 상황을 떠나서라도, 당장 내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 - 어른들이 학생들의 자유로운 (그리고 평화로운!) 의견 개진을 이렇게 억압하는데 그게 진짜 맞나 싶다.

이러고 아이들끼리 음식 나눠먹고 얘기하고 있던데


학생들을 보면서도 여러 마음이 든다. 아직 부당함이 익숙지 않은 그들이 순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린 학생이라는 신분이 부럽기도 하다. 나 같은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어른들 덕에 그들의 목소리가 더 의미 있는 울림이 되기도 할까 싶었는데, 그렇게 치면 나의 이런 부끄러움이 의미 없는 건 아니다하는 자기 위안이 조금은 들기도 했다. 내 아이가 커서 저런 시위에 나선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도 생각해 보고.


정리가 안 되는 여러 생각들을 안고서도 결국에는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니 동기 채팅창에 채팅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었다. 동기들 내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그래도 법은 지켜야 한다 (점거나 창문 깨기는 안된다), 시위대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고 컬럼비아 시위 역사에서 나름 의미가 있는 건물을 상징적으로 점거한 거다, 불법적인 방법 말고 더 창의적으로 생각을 했어야 했다, 그럴 시간이 없다, 이런 얘기할 거면 딴 데서 해라 나는 여기 공부하러 왔다. 등등.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위대에 동조하는 (두 시위대 중 특정 시위대만 탄압하는데 부당함을 느끼는) 동기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꾸준히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총장 메일이 왔는데, 시위대가 학교의 안전을 위협했고 정치적인 발언을 했으며, (이 시위대를 정리해 준) NYPD의 놀라운 프로페셔널리즘과 지원이 고맙다는 메일이었다. 마음이 갑갑했다. 어른들과 아이들의 온도가 너무 달랐다.


어려운 시기의 학생들을 지원해줬다는데 누가 어려운 시기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조금 있다가 온 학장의 메일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어제 일은 실망스러웠다고 했다. 학장이 대놓고 이렇게 메일을 보내준 데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어른도 있어야지. 동기창은 ‘이런 얘기할 거면 딴 데서 해라’라는 코멘트 후 조용해졌는데, “이 말은 해야겠다. 방금 온 학장의 메일이 참 반갑다”라고 한마디를 했다. 평소 전체 동기방에서 조용한 나 같은 사람도 사실은 지지하고 있다는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 바로 여러 좋아요가 달렸다. 이런 거밖에 해줄 게 없다니.


어른들이 아이들의 의견 개진을 장려하고 지원해 줘야지 자리보전이나 정치 놀음에만 급급하니 안타깝다. (같은 맥락에서 유대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마음이 갑갑할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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