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296-7일 차
오늘은 등원 직후 가정 별 사용 언어 조사를 했다. 이곳은 워낙 다문화라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이런 조사를 하는데, 조사만 하고 말았던 Pre-K 때와는 달리 Kinder 때는 필요한 아이들에게 실제로 지원이 이뤄지는 모양이었다.
담당 선생님이 직접 나왔고, 다언어 가족으로 미리 마킹이 되어있던 우리는 설문지 제출 후 짧게 불려 나갔다. 아이가 도움이 필요한지 테스트를 받고 싶냐고 물었다. 우리가 볼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담임선생님과도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2시간 만에 얘기를 해보고 전화가 왔다.
“OO 이는 바이링구얼이에요. 테스트할 필요가 없어요.”
이 선생님이 교실에 갔을 때 아이들이 물에 대해 배우고 있었는데 손들고 대답을 척척했고, 친한 친구 누구고 뭐 하고 노는 거 좋아하냐는 질문에도 대답을 잘했단다. 그리고 학교에서 간혹 지나가다 봤는데, 늘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재밌게 노는 모습을 봤단다. (아마 아시안이 워낙 적어서 눈에 띄었던 것 같다.) 잘하고 있겠거니 했지만, 확인 도장을 받은 듯해서 안도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수준이 엄청 낮은 것 같기는 하지만.
딸내미는 요새 엄청난 언어 발달을 보이고 있다. 이 나이 때에는 신체적 성장은 조금 늦춰지지만 그만큼 뇌가 성장한다더니 그런가 싶다. 요즘 딸내미가 밤에 이불에 실수를 가끔 하는데, 얼마 전에는 “뭔가 축축한데?” 하고 주섬주섬 일어나서 빵 터졌다. 이불에 쉬해놓고는 말만 어른스럽다 ㅋㅋ
영어도 마찬가지다. 지난 토요일에 가라테 승급 심사를 했던 동영상을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공유했는데, 친정 엄마가 애가 혹시 힘들어할까 봐 걱정을 했다.
영상통화를 하면서 애한테 안 힘드냐고 물어보니 ‘하나도 안 힘들고 재밌다’라는 대답이 돌아갔다. 그런데도 친정 엄마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나중에라도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돼”라고 두세 번을 연거푸 당부를 하니 아이가 “That’s not kind. (그렇게 말하는 건 친절하지 않은 거야)”라고 얘기했다. ㅋㅋ 자기는 재밌다는데, 계속 부정적인 뉘앙스로 얘기하는 건 매너가 없단 얘기였다. ㅋㅋ
이젠 한글/ 영어로 가정법도 사용한다. 딸내미의 언어가 엄청 빠르게 성장하는 걸 보자니, 외려 내가 충분히 뒷받침을 못 해주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 나이대에 뭘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한국 돌아가서도 어떻게 하면 영어를 계속 유지하게 도와줄지도 고민이고. 흠.
하지만 딸내미가 미국서 이렇게 적응하는데 딱히 내 고민이 도움이 되질 않았다는 걸 돌이켜 보면, 앞으로도 딸내미가 알아서 되는 만큼 잘 해나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런 생각에 쓸 에너지를 아껴서 딸내미랑 조금이라도 더 재밌게 노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