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33일 차
둘째의 생애 첫 플레이데이트가 있었다. 물론 생후 두 달 밖에 안 된 둘째가 친구랑 놀 일은 없고, 엄밀히 말하면 엄마들의 데이트였지만. ㅎㅎ 첫째 Pre-K 친구 엄마 중에 나랑 일주일 차이로 아기를 낳은 엄마가 있다. 안 그래도 애들끼리 Pre-K 막판에 친해져서 일주일에 한 번씩 플레이데이트를 하면서 엄마들끼리도 좀 친해졌는데, 출산하고도 종종 연락이 왔다. 몇 번 연락을 나누다 아예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아기들은 사진 한 장 찍을 때만 붙여놓고, 각자 애를 안고 엄마들끼리 폭풍 수다를 떨었다. 아기들 성장 속도가 거의 같아 그것만 해도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첫째 때 조리원 동기를 안 만들었는데, 조리원 동기가 있다면 이럴까 싶었다.
그 외에도 이 엄마랑은 공통점이 참 많아서 (첫째 나이와 성향, 커리어 상황, 육아 스타일 등등) 계속 여기 살았으면 절친 각이었다. 이러기 쉽지 않았는데 벌써 떠나기가 아쉬웠다. 그 집 엄마도 만나서 좋았는지, 10일 후 그 집으로 초대를 해줬다. 가기 전에 자주 만나서 공동 육아 해야지.
저녁에는 첫째를 데리고 핼러윈 파티에 갔다. 첫째의 파티 시즌이 시작됐다. 딸내미 친구 집에서 소규모로 여는거라 딱 세 집만 초대됐는데, 영광스럽게도 초대 됐다. ㅎㅎ 아들 다섯 (+ 막내는 생후 3주) 엄마가 하는 거라 파티를 연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파티도 엄청 잘 준비했다.
음식도 나름 신경을 썼고 애들 액티비티를 대여섯 개나 준비했다. 그것도 일회용 접시로 핼러윈 호박 만들기, 스파게티에 숨겨진 거미 반지 찾기, 야광봉 달고 춤추기, 까만 종이에 흰 면봉 붙여서 뼈다귀 만들기, 롤리팝 휴지로 싸서 유령 만들기, 못 쓰게 된 플레이도우에 눈알이랑 막대기 붙여서 거미 만들기 등 다 직접 준비한 액티비티였다.
그 와중에 자기 아들한테 피드백 다 해주고 (‘너 그 엉덩이 씰룩쌜룩하는 움직임 너무 귀여워’), 교육도 하고. (‘Funny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이 있어. 그럴 때는 이런 단어를 쓰는 거야.’) 보면 볼수록 경이롭다. 내일모레 딸내미 생일잔치가 새삼 걱정됐다. 어딜 봐도 그 엄마가 나보다 힘든 상황인데 준비는 내가 훨씬 덜 됐다. ㅋㅋ
아 딱 한 가지 그 집이 우리 집보다 나은 건, 막내의 성향이었다. 나는 빽빽 소리 지르는 둘째를 뒤로 하고 나왔는데, 그 집 애는 파티하는 옆에 혼자 누워, 애들이 소리를 지르든 형광등이 환하게 켜져 있든 잠만 잤다. 다른 애들도 다 이렇게 순했냐고 했더니 얘만 그렇단다. 다섯 낳았더니 드디어 순한 애가 나와서 여섯째도 낳아봐야겠다고. ㅋㅋㅋㅋ 애들이 워낙 잘 놀아서 엄마들끼리도 재밌게 수다 떨고 놀았다.
바쁜 하루였다. 아침에는 (남편이 갔지만) 심지어 딸내미 학교의 참관 수업도 있었다. 학교 행사에 때마다 파티에, 다른 집과 소셜까지 하려면 아무리 전업 엄마라도 하루가 부족할 것 같다. 이건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전업 엄마를 처음 해보는 나로서는 경험할 때마다 걱정이 쌓인다. 복직하면 애 깨있는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인가도 장담이 안되는데. 뒤늦게 대학원을 하러 와서 커리어 욕심이 있다고들 생각하지만, 나는 오히려 여기서 전업 엄마를 경험해 보면서 워라밸에 대한 갈망이 커지는 것 같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