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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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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솜대리 Oct 28. 2024

남의 교회 핼러윈 파티_241026

미국생활 434일 차



핼러윈 시즌 + 딸내미 생일 전날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냈다. 오전에는 딸내미 생일 준비 차 파티용품점에 갔다가, 점심 먹고 첫째와 남편은 학교 근처에서 하는 핼러윈 커뮤니티 행사에 갔다가, 다녀와서는 내가 첫째를 데리고 첫째 친구 파이퍼 네 교회 핼러윈 행사를 갔다. 딸내미가 이 스케줄을 다 소화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행사마다 친구들이 북적이니 에너자이저처럼 놀았다.


여긴 생일 피티에 헬륨 풍선을 많이 해서 그런지, 파티용품점도 풍선이 도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종교가 없어서 교회 행사는 가기 조심스러웠다. 우리나라에서 드문 몰몬교회이기도 하고. 하지만 파이퍼네 성격을 잘 아는 데다, 그 집에서도 워낙 조심스럽게 혹은 가볍게 제안해 줘서 다녀왔다. 가보니 정말로 밥 먹기 전 1분 정도 가볍게 기도할 때 빼고는 종교적인 분위기도 없었고, 모르는 사람이 말을 적극적으로 걸지도 않아서 편하게 다녀왔다.


각자 테이블에 앉아 노는 분위기


전에 부활절 때 시드니네 교회 행사에 가서도 시드니네랑 부담 없이 놀다 왔는데, 여기 종교 행사는 우리나라보다 조금 더 외부인이 갔을 때 부담 없는 분위기 인지도 모르겠다.우리가 그런 행사만 간 건지는 몰라도, 여기 교회 행사는 우리나라보다 더 외부인이 갔을 때 부담 없는 분위기다. 그래서 한 번 정도 가는 건 부담이 훨씬 덜하다. 물론 그렇게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오게 만드는 것도 있겠지만.


그리고 사실 핼러윈 행사 때마다 한다는 칠리 콘테스트가 엄청 궁금했다. ㅎㅎ (칠리는 고기, 콩, 토마토소스를 끓여 만드는 수프 종류다.) 몰몬교에서는 미국의 모든 교회들이 핼러윈 때만 되면 칠리 콘테스트를 한단다. 이유는 파이퍼 엄마도 모른다고. 뜨끈뜨끈하고 포만감 있는 칠리는 겨울에 많이 먹는데, 그래서 날씨가 쌀쌀해지는 이 맘 때쯤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심사를 기다리는 칠리들


파이퍼 엄마는 1등 상품인 유명화가의 칠리 그림을 받기 위해 3년째 이 콘테스트에 도전 중이다. 칠리 콘테스트라는 말만 들어도 흥미로운데, 친구네가 참가를 하는 데다, 준비하면서 만든 칠리를 미리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어서 안 올 수가 없었다.


올해는 아쉽게도 참가자가 6명에 그쳤지만, 그래도 칠리가 다양해서 즐거웠다. 들어간 고기도 소/ 닭/ 칠면조로 다양했고 베이스도 토마토가 아니라 크림인 경우도 있었다. 나도 심사위원처럼 조그만 컵에 6가지 칠리를 넣고 비교해서 먹어보는데, 호사스러웠다.


이런거 너무 좋다 ㅎㅎ 왼쪽 밑은 콘브레드. 칠리는 콘브레드와도 많이 먹는다.


1등은 결국 파이퍼 엄마가 했다. 파이퍼 엄마가 최근 알게 된 엄청난 내막이 있었는데, 작년과 재작년 콘테스트 우승자가 동일한 레시피를 썼다는 사실이다. 파이퍼 엄마는 기가 막혀하며 그 레시피를 가져다 썼는데 결국 우승했다. 먹어보니 확실히 6개 중에 제일 맛있기는 했다.


모자이크해도 가려지지 않는 신난 파이퍼 엄마 ㅋㅋ


그래도 보통은 3년 연속 같은 음식이 1등하긴 어려울 텐데, 알고 보니 이 대회는 공정성을 위해 매년 심사위원을 바꾸고 있었다. 공정성을 기하려다 오히려 전혀 공정하지 않은 게임이 되어 버렸다. ㅋㅋ 파이퍼 엄마는 상을 타고 펄쩍펄쩍 뛰었는데, 아이 같아서 귀여웠다. 나한테 자기의 ‘Lucky Charm’ (의역하면 행운의 여신 정도)라고도 하고.


핼러윈 행사니 트릭 올 트릿이 빠질 수 없었다. 교회가 작으니 아이들이 같은 층을 빙글빙글 돌아다니면서 하는데, 파이퍼 엄마와 나는 구석에 앉아 아이들이 받아온 초콜릿을 하나씩 얻어먹었다. 우연찮게 파이퍼 엄마가 좋아하는 초콜릿과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이 같았는데, 자기 애들한테 그 초콜릿을 받아오라고 하더니 3개나 생겼다며 나를 1개 나눠줬다. 바닥에 앉아 그걸 나눠먹고 있자니 오히려 파이퍼 엄마와 내가 고등학교 동창쯤 되는 기분이었다. ㅎㅎ


줄서서 트릭 올 트릿을 하러 가는 아이들 ㅎㅎ


나도 엄청 즐겼지만 딸내미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딸내미는 행사 장소에 들어가자마자 어디론가 뛰어갔다. 뭔가 싶어서 보니 어떤 할머니한테 가서 반색하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가서 보니 그 할머니는 영어도 못 하시는 분이었다.


아니 딸내미가 친화력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무슨 일인가 물어보기도 전에 딸내미는 할머니가 가리키는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할머니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데 포르투갈어라서 하나도 못 알아듣다가 한 단어가 들렸다. ‘재거’. 딸내미가 요즘 사랑에 빠진 ㅎㅎ 가라테 같이 다니는 오빠이름 이었다. 알고 보니 그 할머니는 재거 할머니였다. 딸내미는 재거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심 행복해했다.


저녁을 먹을 때는 재거네 테이블이 꽉 찼는데 거기 가서 뭉개더니 결국 한자리를 만들어냈다. 파이퍼는 다른 테이블에서 딸내미를 애타게 부르다가 울음이 터졌고, 그걸 본 파이퍼 엄마가 의자 하나를 더 재거 테이블에 끼여 넣고 파이퍼를 앉혔다. 딸내미는 우정보다는 사랑파인가… ㅎㅎ 아무튼 한쪽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 다른 한쪽에는 제일 친한 친구를 끼고 딸내미는 아주 행복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자리 배치 ㅋㅋ


조심스럽게 갔는데, 나도 딸내미도 너무나도 잘 놀다 왔다. 어제부터 핼러윈 파티들 엄청 재밌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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