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66일 차
매주 한 번씩 박물관에 가겠다고 매번 결심하는데 평균 3주에 한 번 정도 가게 되는 것 같다. 이번주는 비 예보가 많지만 이제는 뉴욕 체류가 진짜 얼마 남지 않아 아침부터 MET으로 달렸다.
말 그대로 달려갔다. 센트럴 파크만 건너면 바로 MET이고, 매일 조깅하면서 지나가던 곳이다. 매번 수유 시간에 걸리거나, 너무 오래 집을 비우는 것 같아서 가고 싶다, 가고 싶다 하면서 지나 만 갔는데, 드디어 들어갔더니 작게나마 소원성취하는 기분이었다.
MET은 도슨트 투어가 하루에도 열 번씩은 있다. 하이라이트 투어, 유럽 회화 투어, 이슬람 예술 투어 등등. 나는 처음이니까 하이라이트 투어를 선택했다. ‘컬러’를 모티브로 고대 그리스, 이슬람, 유럽을 종횡무진하며 1시간 동안 6개의 작품을 봤다.
혼자 볼 때에 비해 절대적으로 적은 수이지만 도슨트를 들으면 작품을 깊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예를 들어 반고흐의 그림에서 노랗게 물든 들판에 대비되는 붉은 꽃을 그려 일부러 시선을 머무르게 했다던지,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과학자 겸 징세인 라부아지에의 초상은 원래는 일반적인 포멀 한 초상화였지만 처형 후 일부러 과학자의 면모를 강조하는 그림으로 덮어씌웠다든지. 도슨트를 통해 알게 되는 것도 많고, 그 그림을 오래 보면서 느끼는 것도 더 많다.
도슨트는 뉴욕에서 나고 자랐다는 할머니였다. 뉴욕은 도슨트가 동네 노인 분들인 경우가 참 많다. 동네 노인 분들이 나오시면 그분들이 살면서 겪은 그 건물의 변화와 동네의 역사까지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참 좋다. 우리나라도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자리가 더더욱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
비가 쏟아지기 전에 딱 도슨트만 듣고 왔다. 왕복 시간까지 2시간이 채 안 걸렸다. 2시간 정도 짬이 날 때 걸어서 MET에 가 몇 작품만 깊게 보고 오다니. 호사도 이런 호사가 없다. 아이 겨울방학을 제외하면 뉴욕 체류는 딱 다음 주까지다. 한 번 더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