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생활 476일 차
아침에는 첫째의 윈터쇼에 갔다. 연말마다 학급 별로 연말 테마 노래를 연습해서 발표하는 건데, 올해 노래는 유대교의 연말 노래인 ’Hannukah’였다.
사실 딸내미가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불러대서 노래는 거의 외울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걸 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딸내미와 딸내미 절친인 파이퍼가 유독 박자에 딱딱 맞춰 칼각으로 춤을 춰서 눈에 띄었다. 둘이 괜히 친한 게 아닌 것 같다. ㅋㅋ
같이 간 둘째도 노래를 좋아해서 언니가 공연하는 걸 눈이 휘둥그레해서 봤다. 박수가 나올 때는 깜짝 놀라 울먹였지만 ㅎㅎ
작년에 처음 윈터쇼를 할 때도 잘하긴 했지만, 집에서 목청 터져라 부르는 일도 없었고 쇼에서 유달리 눈에 띈다는 인식도 없었다.
음악선생님과 면담할 때 선생님이 ‘첫째를 작년 윈터쇼 준비 때문에 처음 봤을 때는 소극적인 것 같았는데, 올해 음악 수업하면서 보니 엄청 적극적이다’라고 했었다. (작년에는 아마 언어 문제였을 거다.) 윈터쇼 준비하고 하는 걸 보니 바로 음악선생님의 피드백이 이해가 간다 ㅎㅎ
공연을 마치고는 파이퍼 엄마 해들리랑 구겐하임에 갔다. 애들 때문에 자주 봤고 이젠 내 친구가 되었지만 한 번도 단 둘이 뭘 한 적은 없었다. 어차피 애들 때문에 자주 보고, 해들리는 일하고 나는 공부하거나 출산/ 둘째 육아로 바쁘니까. 그런데 파이퍼 아빠가 가기 전에 꼭 그런 시간을 가져보라고 강권해서 ㅎㅎ 엊그제 보드게임하며 급 약속을 잡았는데 진짜 너무 재밌었다. 이걸 왜 이제 했을까 싶을 정도로.
우선 윈터쇼 끝나고 해들리의 전기 자전거로 이동했다. 내가 해들리 뒤에 타니, 집에 가던 다른 학부모들이 환호성을 보냈다. ㅋㅋ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가는데, 매일 조깅하는 곳인데도 바이크로 지나가니 느낌이 달랐다. 프라이빗 바이크 투어를 하는 기분도 들고 ㅎㅎ
구겐하임 전에는 멋진 카페에서 브런치도 먹었다. 원래는 구겐하임 오픈 전까지 센트럴 파크를 걸을 예정이었지만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랜덤 하게 구겐하임 옆 카페에 들어갔는데, 고딕 양식의 교회에 세 든 곳이라 그런지 카페가 엄청 고풍스럽고 예뻤다. 음식도 나눠먹고 커피도 마시는데, 진짜 그냥 친구랑 브런치 하는 느낌이라 좋았다. 또래 친구랑 브런치는 진짜 한 2년 만이다.
구겐하임 구경도 정말 즐거웠다. 나는 현대미술과 거리가 멀어 현대 미술관인 구겐하임 전시를 크게 즐긴 적은 없지만, 미술전공자인 해들리랑 가면 재밌을 것 같았는데 정말 그랬다.
특히 지금 전시는 해들리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들이 다수 있었다. 해들리의 폭풍 설명과 작품 해설을 들어가며 보니 재미가 없을 수 없었다. (주제가 너무 현대미술은 아닌 것도 한 몫했겠지만.)
전시를 같이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즐거웠다. 뉴욕에 와서 부쩍 미술 전시를 많이 봤는데, 그때마다 혼자 거나 별로 관심 없어하는 남편과 봤었다. 그렇게 보는 것과 다른 사람과 감상을 나누며 보는 건 정말 다르다. 헤어지며 둘 다 우리가 왜 미술관 데이트를 이제 같이 했을까 아쉬워했다.
엄청난 작품들을 무료로 여유롭게 볼 수 있다는 건 뉴욕 생활의 최대 장점이었다. 이제야 그 작품들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있는 것 같은데. 같이 누릴 친구도 생겼는데. 미술 좋아하는 딸내미가 좀 더 크면 이 환경을 더 잘 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ㅎㅎ 그래, 그래도 이런 환경을 누려본 것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