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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화문덕 Aug 20. 2023

문득 코딩이 하고 싶어졌다

CHAPTER 1 파이썬 모험의 서막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는 을지로의 한 골목, 오늘도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현대적인 건물들에 가려지지 않고 남아있는 오래된 외관의 건물들. 마치 시간의 터널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이 골목은 내게 특별한 분들과 함께 거니는 소중한 공간이다. 걷는 발걸음마다 골목이 내게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오늘은 오랜 인연을 함께 이어온 형님과 걷고 있다. 우리만의 이야기가 골목골목마다 새록새록 스며든다.


형님과 참 오랜만에 조우다. 최근 형님께도 어려움이 있었는지, 살이 많이 빠지셨다. 나는 형님을 작고 허름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내장탕의 진가를 보여주는, 나의 최애 식당으로 인도했다. 이 작은 식당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을지로의 골목  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다.


식당 내부로 들어가니 이모님들이 점심 식사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계셨다. 매일매일 새로운 내장탕 국물을 끓이고, 김치와 겉절이를 아침이면 새롭게 담그시고, 밑반찬도 그날그날마다 다르게 준비해 주신다.


여기서 맛봤던 아삭아삭한 오이소박 맛을 잊을 수 없다. 정성으로 준비된 밑반찬들이 테이블을 가득 채우면, 없던 입맛도 되살아날 정도다. 게다가 을지로의 특성상 산업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이 이 식당을 자주 찾다 보니 가격도 광화문과 여의도, 강남에 비하면 꽤 저렴한 편이다. 그 덕택에 내장탕이 그리울 때면 부담 없이 이곳을 떠올리곤 한다.


작지만 아늑하게 꾸려진 10평 남짓한 공간. 비치된 테이블은 3개가 전부다. 우리는 이모님들이 조리하는 공간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다. 머리 위에는 사장님이 유명인들과 찍어놓은 인증사진과 서울시로부터 받은 공로상 등이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꾸준한 인기와 지역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모습들이 이 식당의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모님 저희 내장탕 두 그릇이요~"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가 나왔다. 좁은 테이블에 놓인 내장탕 두 그릇. 우리는 뜨겁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내장탕 국물을 한 수저 뜨고는 '후후' 불어 입안으로 흘려 넣었다. 내장탕 냄새가 코끝을 감싸며 과거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듯했다. 따끈한 국물이 입 안 가득 감칠맛을 남기며 식도를 타고 흘러 넘어가듯,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신 기자 잘 지내지?"


형님에게 나는 여전히 기자로 불린다. 호칭이라기보다는 서로의 친근함과 익숙함에서 오는 애칭이랄까. 형님은 아직도 내게 말을 놓으시는 것이 불편하다고 하셨다. '신 기자'라는 호칭이 형님 입에 붙어서 편하게 말을 놓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다고 하신다. 그런 이유로 내가 기자를 그만 둔지 언 9년이 다 되어감에도 형님은 오늘도 나를 ‘신 기자’라 부르신다.


형님과 난 서로 그동안의 소식을 나누기 시작했다. 작은 식당 안은 적당히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주방에서 나오는 조리음과 서빙하는 직원분들의 목소리가 조용한 소음을 이루어내고 있다.


"형님! 저야 열심히 살려고 애쓰고 있죠. 형님은 잘 지내시죠? “     


나는 형님의 최근 근황이 궁금해졌다. 형님은 1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여전히 바쁜 일상을 사실 것이다. 나도 나름 열심히 산다고 살고 있지만, 형님을 따라가기엔 아직 멀었다.  


"아~~~ 바빠 죽겠어. 최근에 우리 회사에 이슈가 좀 생겼어. 그래서 홍보대행사에 기사 모니터를 실시간으로 해줄 수 있는지를 문의했는데, 월 비용이 우리 회사 중간관리자 두 명의 급여 수준이더라고. 차라리 유능한 중간관리자를 한 명 뽑는 게 더 나은가 싶기도 했다니까. 그런데 어떡하겠어. 급하니 계약하긴 했지..."


형님은 특유의 말투로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내셨다. 말씀 중간중간에 간간이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바쁜 일상에 지친 듯한 모습이 보여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랄까.


"형님네 회사 이슈는 저도 기사를 통해 보긴 했어요. 안 그래도 바쁘셨을 거라 생각하고 있긴 했어요"


나도 기사를 통해 봤다. 형님네 회사가 대형 이슈가 터져서 요새 정신없이 대응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홍보대행사가 제시한 큰 금액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실시간 기사 모니터 제공 비용으로 중간관리자 두 명의 인건비 수준이라니.. 과도한 비용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형님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생각에 잠겼다.      


근데 생각해 보면, 직원을 새로 뽑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급히 뽑으려 하다 보면, 레퍼런스 체크를 제대로 못해서 허위경력으로 자신의 몸값을 부풀리며 살아가는 이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노무 이슈가 추가되면, 오히려 혹 떼러 갔다가 혹을 붙여오는 꼴이 될 수 있어 채용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홍보실의 현실은 어떨까. 내 주변으로부터 들었던 대기업 홍보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직원이 한 땀 한 땀 기사스크랩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기사 스크랩프로그램에 로그인해서 장인(?) 정신으로 기사 하나하나 직접 복사해서 문서파일에 붙이고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뭔가 최첨단의 기사 모니터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현실은 수작업이라니... 너무도 실망스러운 소식(?)이어서 듣는 동안 너무도 안타까웠다. 


물론, 매일 아침 홍보대행사로부터 조간 기사 모니터 리포트는 그것대로 제공받고 있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진 않았지만, 어찌 됐건, 어떤 이유에서건, 홍보대행사에서 해주는 기사 모니터는 그것대로, 직원들은 직원들대로 자체적으로 스크랩을 한다.


"아무튼 비용이 많이 들긴 했지만 어떡하겠어, 잘 마무리됐으면 된거지모"


형님은 큰 한숨을 내쉬면서도 실시간 기사 모니터 비용의 대가로 급행료를 치렀다는 것에 찜찜하다는 내색을 감추지 않으셨다.


“형님 포털에서 뉴스를 최신순으로 실시간으로 끌어올 수 있어요. 그걸 바로 크롤링이라고 불러요. 크롤링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실시간 모니터도 논리적으로는 안될 게 없을 것 같아요. 형님 필요하시면 제가 만들어드릴게요.”


형님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형님께는 죄송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동태눈깔과도 같았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형님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 나의 코딩 본능(?)이 되살아 났다. 내가 코드를 읽을 줄 아는 컴공출신임이 자랑스러워졌다. 물론 코딩을 안 한지는 20여 년이 흘렀지만.....;;;;;


‘까짓것 다시 해보지모’


오랜만에 다시 코딩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듯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에너지가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뭔가 내가 이 세상에 유의미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랄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 좋은 설렘이다.


형님 이야기를 들으며, 내장탕 국물을 한 수저 더 떠서 입 안으로 넣었다. 입안 가득 느껴지는 따뜻함 속에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내장들의 쫄깃쫄깃한 식감이 더해져 한 껏 기분이 더 좋아졌다. 


"형님, 드셔보세요. 정말 맛있어요. 제가 태어나서 내장탕이란 걸 여기서 처음으로 먹었는데 이젠 마니아가 됐어요. 답답하고 힘들 때면 여기 내장탕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더라니까요”


나는 형님께 이곳 식당 내장탕의 진한 국물맛과 비리지 않은 내장들의 조화로움을 연신 칭찬하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형님도 내 말에 화답하듯 거들었다. “그래. 이 식당은 정말 특별해. 오랜만에 찾아와서 먹는데도 언제 먹어도 맛있네”     


그 말을 듣자, 나는 내 안에서 뭔가 큰 결심을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장탕이 먹는 이의 입맛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는 것처럼, 코딩 또한 각자의 개성과 열정이 더해지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수 있다. 내장탕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것처럼 파이썬 역시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언어다. 나는 할 수 있다.'


좁은 테이블에 놓인 뚝배기 속 내장탕은 어느새 사라지고 메마른 사막처럼 밑바닥을 드러냈다. 이모님들께 오늘도 맛있는 요리를 내어주심에 감사하다는 인사로 작별을 고하고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오늘 형님과 함께 한 내장탕이 우리의 대화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뜨거운 국물과 감칠맛 나는 곱창과 마늘 그리고 쫄깃한 내장들이 입안에서 조화를 이루며, 형님과 나는 오래된 우정과 추억을 얽어가듯 시간을 보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추억이 되어 언젠가 이곳 을지로, 이 골목을 지나게 되면 오늘을 기억하게 되리라. 내장탕의 특별한 맛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이 내겐 추억으로 남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형님과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코딩에 다시 빠져들 수 있게 된 것이 정말 오랜만이구나’


목적이 분명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은 분명 설레고 의미 있는 일이다. 코딩을 하고 디버깅을 하고 하는 과정에서 고단함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컴파일러를 돌렸을 때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수많은 빨간색 줄의 오류가 사라지면서 프로그램이 실행될 때의 희열은 경험해 본 자만이 아는 짜릿함이다. 나는 할 수 있다. 멋지게 해낼 것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나는 누구인가?
‘신 기자’ vs ‘광화문덕’



내 주변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애칭은 두 가지가 있다. 현실의 나와 온라인 속의 나.


(1) 현실 속에서는 주로 ‘신 기자’라 불린다. 30대 기자 시절 만났던 소중한 인연을 10년 이상 이어가다 보니 형님들은 ‘전 기자’ 임에도 애칭으로 ‘신 기자’라 부른다.


(2) 온라인에서는 ‘광화문덕’이란 이름으로 살아간다. 당시 내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광화문'에서 살다 보니 '광화문'이란 단어에 애정이 갔다. 여기에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를 담아 ‘덕 덕(德)’를 붙였다. 


난 어떻게 불리든 다 좋다. 현실 속의 나도 나고, 온라인 속에서 살아가는 페르소나 ‘광화문덕’도 나이니 말이다.




읽은 분들이
당신이 왜 광화문덕인지 궁금할까?



내 첫 화를 본 아내가 내게 아주 객관적인(?) 소감을 말해줬다. 내가 아내에게 나의 이번 연재 원고를 보내며, 어떤 지 이야기를 좀 해달라고 했고, 아내가 그에 대한 응답을 해 준 것이다.


민망하고 부끄러웠지만, 그 역시도 아주아주 객관적인 소감이었기에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 애써 변명을 해보고자 한다.


"이번 연재에서 '신 기자'와 '광화문덕'이라는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인지하시면 더 이해하기 쉬우실 거라 판단해서 1화 말미에 설명을 추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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