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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윤경 Sep 26. 2023

악귀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나를 위해 살자

드라마 <악귀>를 보았다

배우 김태리가 연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귀신이 등장하는 영상물도 좋아하는데, 서양 귀신이나 동양의 다른 나라 귀신보다 한국 귀신을 좋아한다. 현실감이 있어서일까. 김태리라는 배우를 믿고 사전 검색이나 준비 없이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 악귀. 오랜만에 본방송을 사수했던 드라마였다. 귀신의 등장, 핏물의 붉은 기운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정말 재밌다면서 같이 봤다. 드디어 마지막 회. 악귀에게 잡혀 거울에 갇힌 주인공. 악귀와 주인공의 입장이 바꿨고, 악귀가 완성되었다. 이제 그림자로 악귀임을 알아채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허무하게 주인공이 거울 속에 그림자로 갇힐 리 없을 텐데. 주인공이 어떻게 다시 돌아올지 궁금했다. 


숨죽여 기다렸던 주인공 산영이 귀신을 물리치고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힘은 더 이상 남을 위해서만 살지 않겠다는 결심에서 나왔다. 산영은 귀신과 몸싸움하며 자신의 과거를 회상했다. 모든 순간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를 걱정했고 엄마가 친 사고를 수습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귀신과 사투를 벌이던 중 온 힘을 다해 귀신의 머리카락을 젖히고 마주한 귀신의 얼굴은 자신의 얼굴이었다. “어둠 속으로 날 몰아세운 얼굴은 나의 얼굴이었어, 내가 날 죽이고 있었어”라고 깨달음의 탄식이 나왔다.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 없던 그녀는 왜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했을까를 생각했다. 이제 오직 나를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고, 그 결심에서 귀신과 맞서 자신을 구할 힘을 찾았다. 


나는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고, 남편은 소파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있었다. 남편이 뒤돌아보면 내 얼굴이 보이는 위치였다. 산영이 귀신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순간 남편이 힐끗 나를 돌아보며 이야기했다. “거봐,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해, 나를 위해서 살란 말이야.”. 얼씨구나 싶어 “그렇지? 그림을 좀 더 적극적으로 그려봐야겠어!”라고 맞장구를 쳤다. 


장면이 바뀌었다. 산영보다 산영의 엄마가 더 많이 달라졌다. 엄마를 위하는 마음으로 엄마를 걱정하고, 엄마가 친 사고를 수습하고, 늘 엄마의 그림자처럼 살았던 산영의 보호는 엄마를 어른으로 살지 못하게 했다. 산영의 나를 위해 살겠다는 결심은 산영 자신은 물론 산영의 엄마도 자신으로 살게 했다. 자식과 부모도 자식이 성인이 되면 자신을 위해 각자 살면서 응원과 위로를 나누는 것이 바람직한 관계다. 산영과 산영의 엄마 모두 행복해졌다. 사람과 귀신 모두 행복해지길 바라는 쥐불놀이 장면의 엔딩. 권선징악, 고진감래 등 꽉 막힌 해피엔딩 결말을 좋아하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결말이었다. 


길어야 오육 년 후에 실명의 운명을 진 산영이 마지막 장면에서 말했다, “그래 살아보자.” 나도 살아봐야겠다. 무거웠던 번아웃의 거죽에서 거의 벗어났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훌훌 털어내고 살아봐야겠다.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함께 신나게 살아보자고 해야겠다. 이왕이면 악귀에게 붙잡혀 가지 않도록 우리 모두 자신을 위해 살아보자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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