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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ap Apr 02. 2018

당신은 대통령을 당신이 선출한다고 생각하는가?

"넌 이게 너랑 상관 없다고 생각하는구나? 넌 그냥 아울렛 착고 대방출세일에서 얼씨구나하고 그 파란 스웨터를 골랐겠지. 하지만 제가 모르는 사실은 그 파란색이 그냥 파란색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파란색 중 에서도 터키즈, 정확히는 세룰리안 색이지. 2002년 오스카 드 렌타가 세룰리안색 가운을 발표했었지.

 그 후로 이브 생 로랑이 군용 세룰리안색 자켓을 선보였고, 그러다 세룰리안 색은 급속하게 퍼져나가 8명의 다른 디자이너 컬렉션에도 등장하기 시작했지. 그 후엔 백화점으로 내려갔고 이후에는 네가 가는 아울렛의 캐주얼 코너로 넘어간거야. 그렇지만 그 파란색은 셀 수 없이 많은 부와 일자리를 창출했어. 웃기지 않니?

 패션계와 상관없다는 사람이 사실은 패션계의 사람들이 고른 색깔의 스웨터를 입고 있다는게?"


 위의 글은 머스트 잇 브런치에 있는 명품에 대한 글에서 인용한 영화'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미란다의 대사를 재인용한 것이다.


 20대에 나는 명품을 막연히 동경했다. 그냥 돈이 많이 생기면 명품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때문에 돈을 많이 벌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명품과 패션에 대해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은 나는 나를 압도하는 물품을 가지고 싶지 않다. 명품을 몸에 지니면 사람들은 나를 보지 않고 명품을 보게 된다. 그리고 나도 나 자신을 잃고 명품이 가진 아우라에 몸을 맡기게 된다. 


 물론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기성품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한다. 명품은 우리에게 손 쉽게 고급패션의 취향과 아우라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자신감을 제공한다.  명품이 가진 고급취향은 개인이 창출하기는 굉장히 어렵다.이브 생 로랑마저도 그에게 영감을 준 디자이너를 통해 소위 '명품'을  만들어내고 기성품들은 그 명품을 카피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만들지도 못한다. 명품을 소비한다는 것은 이 과정을 떠받치는 의미를 소비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제대로 소화한다면.


 그러나 지금 나는 나 자신을 찾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압도하는 물품들은 좀 부담이 된다. 물론 재정적인 측면의 문제도 있지만 재정이 풍족하다해도 부담스러울 것 같다. 정말로. (물론 현대사회는 이런 현상마저도 무인양품으로 소화해내기는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문제제기는 이것이다. '당신이 입는 옷이 당신이 고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의문이다. 


 물론 당신이 선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 만큼은 아니다. 미란다의 말처럼 당신은 패션계의 사람들이 고른 색깔과 디자인을 입고 있는 것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옷이 가진 아우라가 당신의 일상을 물들인다.


 위와 비슷한 경우가 또 하나 있다. 바로 선거이다. 당신은 당신이 대통령을 선출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당신이 국회의원을 선출했다고 생각하는가? 선거를 하지 않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를 한 사람조차도 당신이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건 마치 위에서 본 스웨터의 선택과정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당신의 의지와 취향으로 스웨터를 선택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기에 다른 스웨터를 선택할 수 있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의 선택의 폭이 얼마나 되는지. 당신은 당신의 취향을 형성할 경험과 시간이 부족하다. 미디어는 당신을 대신해  어느 정도 완성도 있는 상품에 대한 취향을 가리킨다. 그것이 트렌드다.  그리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편리한 일이기는 하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대통령선거에서 선택할 선택권은 1아니면 2이다. 더불어 민주당이 아니면 자유한국당이다. 당신이 정말로 대통령을 선택하려면  선거에만 참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이가 대통령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교감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에 있어 정당을 강조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당신은 미디어와 인터넷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정치인과 교감하지 못하고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한,  정치인의 개인적 소신과는 상관없이 그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그 이미지에 머무를 수 밖에 없고 현실에 닿을 수 없다.


 개헌 논의가 있다. 국회는 내각제에 가까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길은 당신의 정치참여의 선택권을 더욱 줄여 놓는 일이다. 왜 대통령이 갈리기만 하면 그 부정이 파헤쳐지는 걸까? 미디어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가 문제라고 떠든다. 그럼 그 다음은 내각제인가? 그게 지금 정치구조의 문제점을 타파하는 길인가?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민주적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내각제도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내각제 개헌은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기 위한 혼란과 함께 국민은 현실정치와 더욱 유리시키는 결과를 가져 올 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자. 대통령은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대통령의 위치와 왕의 위치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왕처럼 생각한다. 이런 권력의 자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아주 든든한 뒷배경이 있거나 돈줄이 있어야 한다. 그건 누구든지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퇴임 이후의 정치적인 공세를 피하기 위해서 보신책도 있어야 한다. 누가 그걸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족족 감옥으로 들어간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일반 국민들의 시선을 거기에만 머무르고 있다.


 내각제는 지금도 그들만의 세계로 돌아가는 정치세계를 더욱 그들만의 리그로 몰아갈 것이다. 이건 정치인 개인의 선의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이 왜 계파정치를 하는가? 솔직히 일본사회를 민주주의적인 사회로 볼 수 있을까? 그들의 의식은 깊숙한 곳에서는 계급의식에 찌들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두려운 것이다. 이걸 파헤치면 사회가 혼란스러울 것이기 때문에.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의 개헌안에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가 제안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 위험성을 지적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직접적인 국민의사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적인 국민의사로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라는 근대의 논리를 내세운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직접적인 국민의사로 국가를 경영하는 건 아주 모순된 여러의견으로 논리적인 이유도 없이 뜬금없이 이야기하는 아무 경험도 없는 아이가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도 하다. 지금 수준에서는. 학습하고 게임의 법칙을 익히고 통합을 이루어야 제대로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바로 그 과정이다. 정치적으로 고안된 개념인 가정적인 국민의사가 국민의 대표와 공감하는 훈련되고 통합된 국민의사로 대체될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를 완성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당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정당에서의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미 정해진 것을 정하는데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면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 학교에서 그런 경험을 많이 해 봤을 것이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하라고 얘기해놓고 질문이 없으면 수준이 낮다고 얘기하고 질문을 하면 질문의 수준을 탓하고....도대체 질문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정당이 이런 식이라면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몇몇이 정답을 이미 정해놓고 그 길로 유도하는 식이라면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화는 누가 대신 바꿔주지 않는다. 바로 당신이 바꿔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당신은 답정너와 비슷한 결과를 도출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 당신이 참여하지 않은 것과 참여한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당신은 왜 그런 과정이 도출되었는지를 알고 납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안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청원은 당신에게 뭔가 시원한 경험을 제공할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저 당신의 바람을 타인이 해결해주길 바라는 수동적인 태도일 뿐일 수도 있다. 그것은 코드가 맞을 때는 교감을 주고 뭔가 변화하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지만 근본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변화는 바로 당신이 그걸 바꿀 수 있을 때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정당에 가입하려고 한다. 그것은 1개월이 걸릴 수도 있고 1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나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시도하려고 한다. 그리고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다. 모두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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