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의 지겨움 _김훈
어젯밤에 본 영화 속에서 이병헌은 고독했다.
지독하게 고독했던 중년의 가장은 아내와 아들을 호주로 떠나보낸 2년 동안 "궁금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 '싱글라이더'를 혼자 본 후 고독이 전이된 건지, 애초에 내가 고독했던 건지 모를 상실감에 휘말렸다.
나이를 먹을 수록 인간은 고독한 모양이다.
증권사 지점장이었던 재훈(이병헌)은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한 순간에 돈도, 직업도, 사람들도 잃었다. 모든 것을 잃은 그 순간, 그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호주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다.
영화는 내내 호주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보기만 하는 재훈을 따라간다. 그토록 고독하게.
하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 호주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는 당연한(적어도 그때까지는) 스토리는 반전을 꾀한다.
그는 죽었다. 그는 비행기 티켓을 예약한 그날, 그 자리에 죽어 있었다.
얼마나 치열했을까. 러닝타임 안에 강재훈의 치열한 밥벌이는 그려지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탓이다.
하지만 영화는 내내 치열했을 강재훈의 일상을 상상하게 한다.
그 안에서 인정 받았을 것이며, 웃었을 것이며, 승리했을 그의 밥벌이를...
죽은 채 아내 곁을 찾아간 강재훈은 고독했다. 그리고 다른 남자 품에 안긴 그의 아내라고 한들 고독하지 않았을까. 그녀 역시 고독 속에서 분투했을 것이다. 한 여성으로서의 고독감을 이기지 못해 다른 남자 품을 찾았지만 그것이 그저 몸뚱이의 습관같은 욕구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민 신청서 속 강재훈 이라는 이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남편의 회사가 잘못된 것을 알고 그녀는 준비를 했다. 켜켜이 쌓인 먼지를 닦아낸 바이올린이 이제 그녀의 밥벌이 수단이 될 것이며, 한국을 떠나 세 가족의 연약한 버팀목이 돼 줄것이라 믿었다.
울리는 각자 얼마나 지독한 밥 벌이에 내몰려 있는가.
어느새 사회생활 18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밥 벌이는 늘 무겁다.
그래서 늘 서럽다.
작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신성한 척 가면을 쓰고 있는 밥벌이의 가치를 철저하게 내던졌다. 그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대리만족이나마 통쾌하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근로를 신성하다고 우겨대면서 자꾸만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라고 몰아대는 이 근로감독관들의 세계를 증오란다. 나는 이른바 3D 업종으로부터 스스로 도망쳐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인간들의 저 현명한 자기방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하고 조져대지 말아 달리. 제발 이제는 좀 쉬라고 말해 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법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