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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프로디테 Jan 19. 2022

손만두를 빚어 줄 할머니가 없다...

최은영 장편소설 _ 밝은 밤


마지막 책장을 넘기면서 동시에 자동반사처럼 굵은 눈물이 흘렀다. 유독 할머니가 그립던 요즘이었다. 살짝 고이는 눈물이라야 감춰보기라도 하겠건만 늘상 할머니를 생각하면 순식간에 왈칵 눈물이 솟구친다. 솟구치는 눈물은 감출 수가 없다는 불편함이 있다. 멀쩡히 쇼파에 앉아 책을 읽던, 마흔 넘은 여자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한낮의 모습이라니..


누구에게나 할머니에 대한 단상은 남아 있으리라. 그것이 나만의 특별한 신화가 아닐진대 어쩐히 할머니만 사무치도록 보고 싶은 날이 부쩍 잦아짐을 느낀다. 외할머니의 자랑스러운 8남매는 매년 1월 1일 온가족의 점심식사를 한다. 부부가 동반한 8남매에 손자, 손녀 그리고 그들의 딸과 아들까지 모두 참석하는 가족의 연중행사다. 그렇게 점심식사를 하는 날은 커다란 식당을 통째로 예약해야 한다. 식사를 하면서는 어김없이 막내이모부 사회로 일년 동안 있었던 가족의 행사와 앞으로 일년 동안 계획된 가족 행사를 공유한다. 나는 그 따뜻한 가족 식사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8남매를 낳고 기르느라 축 쳐진 외할머니의 배를 만지는 것도 좋아하고, 그 배를 위아래로 흔들며 "힙합할매. 스웨그가 엄청나요"라며 놀리는 것도 좋아한다.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릴 때부터다. 가족부양에 성실하지 않았던 내 아버지 탓이었으리라. 국민학교에 입학도 하지 않은 나와 동생을, 당시에는 온통 논 뿐이었던 시골 안성에 데려다 놓은 것은 먹고 살기 위한 엄마의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어린 두 아이를 떼어 놓고 엄마는 한 달에 한 번쯤 우리를 보러왔다. 엄마가 엄마의 엄마에게 의지하는 동안 나는 내내 나의 엄마를 그리워했던 어린시절 이었다.


외할머니 집은 동네의 두부집으로 통했다. 전날 저녁부터 불려 놓은 노란색 콩을 이른 새벽부터 삶아 천에 거르고 눌러서 두부를 만들어 놓으면 이른 아침부터 두부 한 모를 사러 오는 동네 사람들이 있었다. 연두부와 두부를 팔고 남은 비지는 키우던 토끼의 먹이로 주던 기억이 나서 나에게 비지는 토끼밥일 뿐이었다. 훗날 식당에서 비지찌게를 팔 때, 왜 토끼밥을 식당에서 파는지 의아했던 기억은 외할머니집에서 경험 때문이었다.


두부집 주인이었던 할머니는 묵도 가끔 만들어서 팔았다. 그러다가 시간이 나면 손만두와 칼국수를 만들어주던 할머니.. 그 옆에서 앉아 할머니 손에서 마술처럼 빚어지던 만두와 칼국수를 기억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종종 할머니에게 만두를 해달라며 굳이 안성까지 차를 몰고 가서 밥 한끼를 얻어 먹고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그 따뜻한, 나에게 고향같은 그 외할머니는 이제 안계시다. 결혼 2년 쯤 전... 그러니까 12년 쯤 전 외할머니는 8남매와 손녀, 손자, 며느리와 사위에게 충분히 작별 인사의 시간을 주고 세상을 떠나셨다. 마지막으로 외할머니를 불러보던 날..."응~ 진희여??"라고 평소 같은 목소리를 들려주고는 이내 힘이 없어 눈을 감던 모습이 내내 맴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본 .. 흡사 밀랍인형 같던 모습도..


가끔 할머니 손만두를 먹고 싶을 때 만두를 잘 한다는 식당을 찾아 굳이 한 그릇 시켜 먹어보지만 한두개를 채 못 넘기고 다 남기고 나오곤 한다. 나는 그 할머니의 맛이 그리웠던 것이지 만두가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 가보다... 이제는 영영 맛볼 수 없는 할머니의 만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먹고 싶어서 혼쭐이 났다... '밝은 밤'은 내게 그토록 가혹한 책이었다.



백 년의 시간을 감싸안으며 이어지는 사랑과 숨의 기록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엄마를 거쳐 내게 도착한 이야기

그렇게 나에게로 삶이 전해지듯 지금의 나도 그들에게 닿을 수 있을까

과거의 무수한 내가 모여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듯

지금의 나 또한 수많은 나를 마나러 갈 수 있을까



책은 이렇게 소개를 하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이 그리움과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 같다.  

엄마에게 채 받지 못한 사랑을 외할머니와 그녀의 엄마 그리고 가족과 같았던 증조모의 친구와 가족들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주인공은 끝내 그 안에서 상처를 치유해내고 있다.

그저 순응하고 사는 것만이 미덕이라는, 대물림 되는 여성의 덕목에 충실했던 4대...

지연에 이르러서 꼭 순응하고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기까지 이 가족은 남편의 성향까지 대물림하며 자기 자신에게 재갈을 물린다.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자아와 위로를 갈구하면서도 결국 엄마와 엄마의 엄마 또 그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 밟을 수 밖에 없었던 100년 동안의 여성들은 미쳐 서로를 끌어 안지 못하고 밀어내면서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힌다.


결국 그다지 원치 않았던 할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과 꼭 닮은 증조모를 만남으로써 엄마를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모듬은 지연의 대전에서의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지연 엄마 미선은 그녀의 엄마와 화해를 이뤄냈을까...?

그나저나 내 할머니가 너무나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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