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목이 아프다는 아이에게 "이따가 낮에 아빠랑 병원에 가서 약 지어와"라고 하고 출근하던 길... 뒷덜미를 잡는 찝찝함에 친정집에 전화를 걸자 고통스러워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는 직감했다. 이것은 감기가 아니구나... 엄마, 아빠의 컨디션이 내 아이와 같다는 사실을 알고 곧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조카가 목감기에 걸린 것 같다는 말에 "병원 가지 말고 선별 진료소 가서 코로나 검사부터 받아"라고 말했다. 다급했다. 엄마, 아빠와 내 아들 그리고 조카까지...
회사에 도착했지만 차를 돌렸다. 급히 재택근무로 돌리고 집으로 가면서 남편에게 전화해 아이를 데리고 나오도록 했다. 우리 세 식구는 선별진료서에서 약 1시간 30분 가량 대기 후 코로나 검사를 받고 돌아왔다. 그날 저녁...나와 남편을 제외한 친정부모님과 내 아이, 큰조카가 양성 판정을 받았다. 전전날 나와 남편을 제외한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한 참이었다.
가슴이 철렁 했다거나 큰 일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저 '올것이 왔구나' 정도의 느낌이었을 뿐.
가족 단톡방에서 모두 다 같이 고생하지 말고 아이들을 한 명이 케어하자고 제안 했다. 동생에게는 둘째가 있었기에 어차피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내가 우리집에서 조카와 아들의 재택치료를 맡기로 했다. 남편과 강아지는 시댁으로 보냈다.
그렇게 열흘간의 재택 치료가 시작됐다.
증상이 경미했던 아이들과 달리 부모님의 상태는 시시각각 악화됐다. 병상 확보에 이틀이나 걸리는 바람에 이틀 동안 아무 조치도 받지 못한 채 집에 방치되어 있던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이틀이 지나고서 엄마는 경기도 오산으로 아빠는 서울 동대문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됐다.
문제는 큰 조카였다. 재택치료라는 말은 누가 붙였는지... 보건당국과 지정 병원의 안내는 느렸다. 목이 아프다는 아이들에게 약은 5일 후에나 도착할거라고 한다. 이건 그냥 방치일 뿐이었다. 우리집으로 와서 격리를 하던 큰 조카가 컨디션 좋게 하루를 넘기는가 싶더니 다음날이 되자 급격하게 상태가 악화됐다. 저녁식사를 잘 하고난 후 "고모~ 토 할 것 같아요"라고 하던 조카는 오버이트도 못하고 계속 쳐져갔다. 속이 울렁 거린다고, 배가 아프다고 호소하는 조카를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급하게 지정 병원으로 전화를 했더니 "보건소에 전화해서 상태를 얘기하고 이동 허락을 받은 후 119로 전화해 병원을 알아보라"는 답을 한다. 다시 보건소를 전화를 하니 "병원에서는 뭐라고 해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병원의 입장을 전했더니 "우리는 의사가 아니잖아요. 환자 상태를 우리가 어떻게 알아요?"라며 짜증섞인 답이 돌아온다.
화가 났다.
"그럼 누구에게 말을 해야 하나요? 지금부터 녹음을 시작하니 책임 질 수 있는 말씀만 하세요. 어떻게 조치할까요? 이동해도 됩니까?"라는 단호한 말에 "그럼 119를 불러보세요"라며 대답을 한다.
그리고 119에 전화를 하니 "보건소에서 뭐라고 합니까?"
같은 말을 여러번 반복하는 사이 조카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어느새 축 쳐진 조카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어서 "환자가 상태가 급히 악화되는데 뭐하는 거에요? 당장 와서 환자 상태라도 봐주세요"라고 하니 그제서야 "일단 출동하겠습니다"란다.
한참 후 도착한 구급대원은 아이의 체온과 산소포화도를 잰 후 "병상 확보에 3~4일이 걸릴 수도 있어요"라고 말한다. "더 이상의 조치는 없나요?"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것 뿐"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체온과 산소포화도는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전 나 역시 10분에 한 번씩 재고 있었던 차였다.
그러는 사이 발을 동동 구르던 올케가 못 참고 집으로 왔다. 방역법 위반이건 뭐건 내 새끼가 아파서 다 죽어간다는 데 손 놓고 있을 부모가 어디있으랴. 일단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겠다는 올케를 말리지 못했다. 조카를 보낸 후에도 올케와 전화통화를 하며 아이의 상태를 살피느라 밤을 꼬박 샜다.
아침이면 엄마와 아빠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상태를 물었다. 병원으로 가서도 너무 아프다는 엄마, 아빠 역시 특별한 치료를 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 감염내과 의사로 있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렉키로나를 맞기로 했다. 셀트리온에서 내놓은 임시 치료제로 임상 3상을 못해 위증증환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쓴다는 약이다. 엄마, 아빠에게 병원에 렉키로나 맞겠다고 얘기하라고 한 후 하루만에 병원 측에서 투약 동의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그나마 보건당국에 비하면 병원의 일처리는 신속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 둘째 조카가 열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PCR 검사를 받은 둘째 조카도 확진, 동생도 확진... 이제 남은 건 나와 올케 뿐이다. 어린 둘째 조카는 몸이 아프니 엄마에게 매달린다. 그리고 다음날 올케도 확진...
온 가족이 코로나19에 걸려버렸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위중증 환자가 있었지만 보건당국의 행정 처리는 안일했다. 자가격리 중인 남편과 나에 대한 조치는 그 무엇도 없었다. 심지어 집 밖을 나가는지 확인조차 안되니 지금처럼 감염병이 급속도로 확산되는게 이상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달까.
코로나19에 걸린 아이를 케어하면서, 자가격리 중에 하필 읽은 책이 정유정 작가의 '28'이다. 책은 치사율이 100%에 달하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인해 봉쇄된 도시 사람들의 사투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이율배반적이다.
삶이 그런 것인가, 죽음이 그런 것인가...그도 아니면 이 세계가 이토록 아이러니 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복잡하게 밀려오는 책이다.
책은 감염병 확산 속에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저마다 벌이는 사투를 이야기 한다. 이야기는 정유정 작가의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다. 그것이 상황이든, 상상이든, 메시지이든...
이러한 폭력 속에서 삶과 죽음은 너무나 아이러니하게 버무려져 있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개, 개와 개의 관계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그리고 처참하도록 끔찍하다.
한쪽에서는 죽어가는 개를 살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개를 사살한다. 살기 위해 자신의 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는 개를 살리기 위해 삶을 통째로 던지고, 그런 그를 나락으로 빠트린 기자는 다시 그의 삶에 개입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모두가 가해자이고 모두가 피해자인 이 소설에서 오롯이 피해만을 감수해야 하는 건 역시 최약체인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