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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존 Mar 21. 2024

학교생활기록부라는, 나만의 성장 기록

고등학교에서는 3년간,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2년 반 다섯 학기 동안의 성장 경과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한다. 


학교생활기록부의 세부 특기 사항은 성적 수치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학생들의 주요한 특성과 발달 양상을 교사가 직접 목격하고 지도한 내용만을 토대로 하여 서술하는 영역으로, 특히 학생부 외에는 학생들의 스펙을 알기 어려운 현재의 입시제도에서는 매우 중요한 입시 평가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중요한 입시 평가의 요소이면서도, 학생부는 교사 각자의 매우 중요한 역할이자 양심의 영역, 혹은 엄정한 중립성의 요소로 남아있어서, 일처리를 하는 교사 이상으로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당장, 년간 열심히 활동하고 선생님들에게 제출한 내용들이, 내 생기부에 온전히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그 해에는 알 수가 없다. 교육부의 지침 상, 생기부 마감이 끝나고 이듬해, 학년이 바뀐 뒤에 열람해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생기부에 불만이 있어도 고치기 어렵고, 오류가 있을 시에는 정정을 요청해도 학교에서 별도의 증거들을 찾아서 정정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선 상당히 불안한 과정을 거친다. 


반면 교사의 입장에서는 이 생기부 내용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열람을 시켜봐야 교사 자신에게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생기부를 보여주지 않고, 다른 교사들과 공유하지도 않고, 마치 한석봉과 어머니처럼 불을 끈 방에서 각자 떡을 쓸고 붓을 긋듯, 생기부를 작성한다. 


어떤 생기부가 만들어져 한 아이를 평가하는지는 교사도 모르고, 아이들도 모른다. 이듬해가 되어서 열람해보고서야 아 이런 결과물이 나왔구나. 알 수 있는 게 현행 생기부 제도다. 일부 게으른 교사, 학생에게 비협조적인 교사가 날림으로 생기부를 써도,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어렵고 내 생기부가 잘 된 것인지 잘 못 된 것인지 자체를 알기 어렵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구해볼 수 있는 우수 생기부 샘플들은, 실제로 그런 활동을 해 온 아이들의 이야기이고 내가 그 수준으로 했는지 자신있게 말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비교 대상이 우수 생기부 샘플이 아니라 같은 학급의 다른 아이들이라면, 같은 교사들의 손에 의해 비슷비슷한 생기부가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 자신이 자신의 생기부를 디자인하고 관리할 체계적인 능력이 있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사교육비를 받고 아무리 좋은 학군에 있어도 내가 바라는 그 생기부를 받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강남이라는, 정말 경쟁이 극심한 그런 지역에서 힘 있고 돈 있는 학부모들에 의해 민원의 위협을 받아가며 교사들이 맘 졸여 쓴 생기부? 그게 만약에 어디서 베껴온 것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그리고, 그런 생기부로 인해 대학에서 떨어지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표는 생기부 연수 때 받아본, 교과별 핵심역량 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 역량 여섯개에 더해 각 교과별 핵심 역량들이 다양하게 분류되어 있다. 


만약 학생들이 자기 자신의 생기부에 이런 개념들이 다양하게 담길 수 있도록 나의 생기부를 디자인할 수 있다면? 그래서, 수업과 동아리 시간, 진로활동 시간에 이런 역량들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자료들을 제작하고, 교사에게 제출하고, 발표를 하고 동료평가할 수 있다면? 


또 이런 노력이 교사들에게도 전달되어, 그 아이에 대한 복합적인 평가가 교사들 사이에서 공유가 되고, 그래서 한 아이의 생기부에 자연스럽게 이런 다채로운 역량들이 학년별로 두루 담길 수 있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의 입장에선 굉장히 반가운 생기부 자료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의 생기부에는, 한 아이를 온전히 평가하여 객관적인 평가자료로서 기능하기에는 제도적인 한계가 좀 있다. 물론 그건 우리 나라의 과열된 입시 환경에서 교사들의 양심을 옥죄는 상황에서 발생하기는 한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은 컨설팅 등에 의지하기보다는, 그래서 교사들에게 어떤 생기부 기록을 강제하기보다는, 우리 선생님이, 내가 너무 이쁘고 잘 써주고 싶도록 하는 것, 그런 선생님들의 마음이 몽도록 하는 것, 그리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도록, 위의 각 역량을 수업에 따라 두루두루 보여주는 것이다. 


교사에게 진심이 닿지 않으면, 그래서 교사들이 "이 아이만은 진심으로 생기부를 써줘야지!" 라는 마음이 들도록 하지 않으면, 사실 생기부는 그냥 잘 된 샘플 하나, 작년에 내가 썼던 샘플 하나, 가져와서 조금씩 바꿔서 티 안나게 복제하는 위험성이 항상 생길 수 있다. 생기부 제도는 이런 위험을 원천적으로 막지 못한다. 막아서도 안될 문제기도 하고. 


그래서, 학생들의 입장에서, 내 생기부를 디자인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잘 생각하고, 그에 따라 고등학교 활동을 계획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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