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극장에 가서 봐야하진 않았다.
개봉한지 열흘이나 지나서 뒤늦게 데드풀과 울버린을 보았다. 그리고 좀 후회했다. 하루 종일 육아를 하고 밤 11시에 있는 체력 없는 체력을 짜 모아서 극장에 왔고, 오는 동안에도 나는 "굳이 극장에서 봐야하나? 그냥 OTT 풀리는 거 기다릴까?" 등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열흘 사이에 흘러나온 소식들로 영화의 만듦새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인상을 받았고, 내가 딱히 마블의 엄청난 팬도 아니어서 이 영화에 대한 큰 기대까진 없었기 때문이다. 집에 오면 새벽 두시인데, 그런 부담을 감수하며 봐야했던 영화였을까- 하면,
영화를 보고 난 생각은, 아쉽게도 그렇게까지 해서 볼 영화는 아니었다. 호불호가 갈리는 이 영화에 대하여 나는 상당히 불만족한 층에 속했다.
<데드풀과 울버린>의 모든 문제는 하나로 집약된다. 중구난방인데, 그 중구난방으로 얼기설기 모아놓은 재료들이 도구적이고 소모적이다. 그로 인해 이어지는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장면들이 뚝뚝 끊기고, 맥이 끊겨버리니 데드풀의 수다가 상황 속에서 재치와 순발력 있게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소음 그 자체처럼 그 안에 존재한다. 그러니 영화가 가진 최대의 매력인 데드풀의 수다가 장점이 아니라 약점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영화 속에서 긴장이란 제대로 유지되지 않고,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가 적잖이 피로감이 느껴졌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데드풀 1, 2편에선
챙챙챙
-수다
빵빵빵
-수다
푸슉 빡 으아악
-수다 수다
(무한 반복)
그런데 3편에선
수다수다수다수다
챙챙챙챙채챙
-장면전환
수다수다수다수다
-장면전환
수다수다수다수다
-장면전환
챙챙챙챙채챙
수다수다수다수다
이런 식으로, 수다가 너무 길고, 액션 사이에 녹아들지도 못하고, 수다와 수다 사이에 장면 전환이 이루어지면서 맥이 끊긴다. 이렇게 된 근본적 이유는 스토리 자체가 울버린과, 멀티버스와, 폭스의 합병과, 데드풀의 서사 이렇게 핵심적인 네개 + 보이드라는 차원의 이야기까지 총 4+1의 재료를 버무리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것을 매끄럽게 연결하지 못하면서 과욕을 부려, 마구 우겨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야기를 힘있게 밀고 나가지 못하고, 그러니 데드풀의 수다도 신나게 도로를 질주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DJ의 음성이 아니라, 교통체증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며 들어야 하는 교통방송으로 변모한다.
멀티버스라는 소재가 이야기의 중심 갈등을 창의적으로 해소하는 영리한 도구로 쓰인다면 OK지만, 중심소재로는 여러가지로 난감하고 김 빠지는 소재라는 것을 마블은 언제쯤 이해하게 될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 멀티버스를 신나게 까대놓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닥터둠으로 복귀시키기로 했으니...멀티버스 말고 다른 방법으로? 페이스 오프라는 설정으로 등장시키려나 모르겠다.
폭스의 지난 20년에 대한 헌사로서 캐릭터들에 대한 존중이 충분했는지도 의문이 들고, 울버린의 복귀로서 그 <로건>의 결말에 빚지지 않는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데드풀 시리즈를 감사해온 입장으로선, 액션신 중간에 툭 끊어지는 배경음처럼, 영화를 보며 툭 하고 어느새 맥이 풀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