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서문
이 글을 쓰고 있는 2026년 1월 21일은 전 국무총리 한덕수에 대한 내란 주요임무 종사자 혐의에 대한 1심 판결이 내려진 날이다. 그는 서울대학교를 졸업했으며, 행정고시를 합격했고, 고위직을 두루 역임했다. 2025년 12월 3일, 한덕수를 지휘해 내란을 일으킨 장본인 윤석열 역시, 서울대를 졸업했고, 사법고시를 합격했으며, 특수부 검사로 시작해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우리 사회에서 "엘리트"의 기준으로 인정받을 법한 빼어난 학벌, 특히 의대와 법대 등의 특수한 학과, 교시의 합격, 고위직의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그 가치에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다.
이런 사람들이 국무총리와 대통령으로 나라를 다스린, 대한민국은 어떨까. 한국에서 학벌, 시험, 고위직은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것처럼, 학벌이란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을 평생 좌우하는 낙인으로 기능하며, 이를 위해 청소년들이 무한 경쟁 체제 속에 경주마처럼 살아간다. 시험이란, 이렇게 열심히 달려온 경주마들의 당락을 정하는 절차다. 그렇게 선발된 소수 중의 소수만이 고위직에서 능력을 시험받는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는 이런 방식으로 배치된 고위직들이 서로 서로 이익을 보전하며 연합을 형성한 "엘리트 카르텔"이 존재한다.
교육은 아이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그런 교육을 통해 선발된 엘리트 후보생들은 그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공적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카르텔을 형성하였으며, 그것이 급기야는 내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부른 이 상황에서, "겸손한 엘리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당신의 자녀교육은 잘못되었다"라는 주장을 펼치고자 하는 갈림길에 선 심정은, 솔직히 조금 막막하다. 엘리트는 필요할까? 엘리트 없이 모두가 협력하는 조화로운 공동체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인공지능의 발전을 엘리트들이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을 나 스스로 문제제기하며, 그에 대답해나가야 하고, 심지어는, 이것을 반박하며 "겸손한 엘리트"의 의의와 필요성을 역설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학원과 독서실에서 위액의 일렁임을 느끼며 공부에 집중하고 있을 많은 소년 소녀들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3세 고시, 5세 고시, 7세 고시로 유년을 빼앗기고 있을 아이들에게, 그들에게 합당한 "엘리트 다운" 교육을 되돌려주기 위함이기도 하다. 이 책의 주장은 간단하다. "한국 교육은 엘리트로 길러지는 아이들에게 합당한 존중을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이 교육의 실패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 차원에서는 어렵게 고르고 고른 엘리트들의 역할의 실패로, 가정에서는 막대한 사교육와 시간 투자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교육의 성과를 얻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겸손한 엘리트"라는 인간형의 필요성을 논하고, 그것이 자녀교육에 갖는 의의를 먼저 제안하여,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교육을 개선하고, 그렇게 키워진 겸손한 엘리트들이 우리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들에 대한, 헛될지 모르겠지만 행복한 상상을 펼치는 것이 책을 쓰는 목적이다.
교육은 한 사람 한 사람 아이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 살아갈 사회는, 이 행복을 지향하는 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토대로서 기능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자녀교육, 학교교육은 결국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늘 수반한다. 사회적 관점에서 "교육된 사람"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교육된 인간상"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은 또한 최종적으로, "교육의 목적"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간다.
이 책도 그러할 것이며, 나는 이 과정이 "교육을 통해 우리 사회를 개선하는"일이 됨과 동시에, 지금 침대에 잠든 우리 딸아이와, 아이와 함께 자라날 모든 세대에게 이로운 일이 될 수 있길 바란다. 내 딸, 그리고 모든 아이들을 위해.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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