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먹었네 우리 둘은 코로나 시국에

이 살은 다 언제 뺀다

by 공존

오늘은 뭐 하지.


코로나 덕분에 바깥양반이 외출과 외식을 자제하면서 식단 고민이 늘었다. 내가 해주는 건 어지간하면 잘 먹는 바깥양반에게 맞추기 위한 고민은 아니고, 냉장고에 남아있는 식재료를 처분할 고민과, 같은 요리를 하고 싶지 않아서 하는 고민. 그러는 사이에도 엄마의 집된장을 넣어 시금치에 붕장어포로 한 솥 가득 된장찌개를 끓이거나 얼갈이와 무를 넣고 얼큰하게 국을 끓이거나 하면서 나름은 편하게 끼니를 채우곤 있다.


반복이 싫다. 암기도 싫어하고 구구단을 거들떠도 안보느라 다 외우는데 3년이 걸렸다. 국은 어차피 한번 끓일 때 넉넉히 끓여야 하지만 밥상의 주인이라고 할만한 그날의 요리는 단 하루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바깥양반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요리에 대한 열정도 아니고 내 천성이고 기질이다. 어제 오늘 합쳐 여섯끼, 아니 점심은 각자 직장에서 먹을 테니 이틀 간 네끼 안에 같은 요리를 올리고 싶지가 않다. 살림하는 사람으로 사서 고생하는 노릇이지만 아침은 그렇다 치고 저녁 밥상 차릴 생각만 하면, 아아 스멀 스멀 샘솟는 창의력을 어찌할까.


웃기지 않게도 그 사이에 매일같이 밥을 해먹고 사는 일을 글로 쓰는 것을 조금 경계하게 되었다. 바깥양반과의 살림 이야기는 원래 밥 차리는 이야기 반, 다른 생활 속 이야기가 반 정도 비중으로 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온라인 개학과 학습자 자발성 문제에 대한 글을 쓰려다보니 먹고 사는 이야기 말고는 글감을 깊이 고민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올 들어 바깥양반과 나 둘 다 각자 쓰라린 일들을 겪은데다가 코로나 덕에 바깥양반은 외출을 못하고, 나는 나대로 책이다 공부다 마음이 바쁘다. 그러니 또 조용한 일상의 반복. 매 끼니를 알뜰살뜰하게 차려낸들 그걸 또 그릇을 닦아가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올리는 건 또 싫다. 엊그제도 밥 얘기인데, 오늘도 밥 얘기나 쓰라고? 아이쿠야.


쭈꾸미 샤브샤브를 하고 남은 아이들로 뭘 할까 고민을 하며 뒹굴거리니 바깥양반이 파스타를 해달란다.


"어? 나 엊그제 쭈꾸미 파스타로 글 썼는데?"

"어 근데 그게 맛있었어."

"나 그걸로 글 썼다니까? 또 파스타를 하라고? 쭈꾸미로 떡볶이 하면 안돼?"

"그것도 맛있었는데 그래도 파스타가 좋아."

"떡볶이 좋아하잖아."

"응."

"근데 파스타?"

"응."


세상에나. 그래서 집들이 때 뇨끼를 만들고 남은 크림소스를 박박 긁어 크림파스타를 만들었다. 다섯마리의 마지막 쭈꾸미. 놀랍게도 모두 다 알배기다. 큰 놈 작은 놈 머리에 모두 알이 꽉꽉 차 있어 입 안 가득 넣고 후후 불며 먹었다. 맛은 참 좋은데, 이걸 글 쓰기는 싫었다. 쭈꾸미로 벌써 두편이나 연달아 글을 썼단 말이지.


딱 겨울이 물러나고 화창한 봄날이 찾아온 어느 주말, 바베큐를 너무 먹고 싶어서 택배로 미니 화로를 사 집에서 고기를 구워먹었다. 그날 미친듯이 피어오르는 연기에 우왕좌왕하며 고기를 구워먹었고 맛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머릿속엔 여러 고민이 가득차, 이 소동을 겪고도 굳이 바베큐를 글로 쓰지 않았다. 패스 패스.


손질한 생물고등어, 마지막 한마리가 남았다. 아침에 바삭하게 구워서 먹었는데 다른 반찬과 먹다보니 한토막이 그대로 남았다.


"어떻게 하지?"

"내일 먹어."

"야 내일 먹으면 맛 없지."

"그럼 지금 먹어."

"아 배부르잖아."

"몰라."

"아휴...그럼 내일 이걸로 파스타 하자."

"오예."


그래서 다음날 고등어파스타를 만들었다. 맛은 참 좋은데, 또 파스타 얘기다. 악! 절대 쓰기 싫지.


그렇게 한달 두달 시간이 갔다. 육회비빔밥. 바깥양반이 사진을 곱게도 찍었다. 이건 글을 쓸만하다. 와플 굽던 이야기. 페이스북이 2년 전 글을 띄워줬다. 아하-. 이건 그래 재밌을 거야. 이렇게 그 와중에 글을 한 편 두 편 쓰다보니 벌써 2월 이래로 밥 먹고 사는 글만 10개가 되어 간다. 잘 먹고 살았네. 잘 먹고 살았어. 강원도 감자가 싹이 나기 시작해 한번에 스무개를 넘게 깎았다. 그래서 감자샐러드를 해먹고 마지막 한번은 주말 아침에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 콥샐러드를 했다. 비주얼도 괜찮고 맛도 있고...다만 소스를 실패했다. 올리브유와 설탕, 식초를 섞어서 뿌렸는데 식초가 과하게 들어가서 굉장히 신 맛이었다. 이걸 쓸까말까 일단 사진을 찍어뒀는데 웬걸. 그날 딱 브런치 메인에 콥샐러드가 떴다. 마침 잘됐다 이번에도 패스!


"카레해줘."

"웬일로?"

"나 원래 카레 좋아해."

"헐...그건 몰랐네."

"오빠가 카레 해놓고 안 차려주잖아."

"그거야 다른 재료를 처리해야...야 근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 네가 꺼내서 먹을 순 없을까?"


바깥양반이 웬일로 메뉴를 요청해서 이틀 뒤에 카레를 만들었다. 왜 이틀 뒤냐면, 미리 내가 하려던 요리가 있었기 때문이지. 양파를 캐러멜라이징되도록 후라이팬에 돌리고 돌려, 감자와 당근을 푹 끓여내니 감자의 입자가 그대로 살아서 입을 감돈다. 게다가 양파를 오래 볶아 밥을 삼키도고 한참이나 단맛이 느껴질 정도. 참 잘 된 카레다. 근데. 평범~하게 카레 해 먹은 이야길 써서 뭐해. 안써 안써.


이렇게 둘이 하루하루 잘 먹고 살았다. 내일은 뒷다리고기 넣고 팍 끓여낸 김치찌개를 할 건데, 아차 지난 주말에 고창에 여행을 다녀와서 말이지, 햇 잡곡을 3키로 만원에 사왔다. 흑미밥이 지름하다. 아침에 칙칙 쏘아지는 수증기의 내음이 흐붓하다. 밥이 이렇게 맛이 있으니 김치찌개 하나 탁 놓고 먹으면 그 맛이 얼~마나 좋냐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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