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로즈데이 했는데에
“여러분 제가요.”
“네 슨배님.”
“말씀하시옵소서.”
“목요일에 약속을 파토내야겠네요?”
“하와와 무슨 일이심까 슨배님...”
“목요일이 글쎄 부부의 날이라네?!”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속을 다음주로 미뤘다. 고등학생 때부터 거둬먹인 녀석들인데 지금 회사에서 가장 바쁘고 정신없을 나이인 30살부터 28살. 꾸준히 연락을 주고 받는 녀석 한둘에, 이때 아니면 얼굴을 언제 보겠느냐 싶은 아이들까지 해서 인원이 제법 늘었다. 다행히 나까지 여섯명인데, 저마다 취업을 한 아이들이 하나같이 저녁에 시간이 펑펑 남아도는듯하다. 별로 어렵지 않게 약속 날짜를 옮겼다.
자 그래서 바깥양반의 령에 따라 약속을 미루고 오늘은 부부의 날. 그런 것 따위 관심두지 않는 나에게 바깥양반은 말했다.
“아니 부부의 날이 뭔데? 진짜로 있는 날이야?”
“매년 외식은 했어 5월 21일에.”
“어? 진짜? 왜 기억에 없지?”
“오빠가 관심이 없나보지 작년에도 얘기했었는데.”
“헐 진짜 있네. 봐 구글에서 검색해보니까 나온다.”
“그렇다니까.”
미안해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조금 헷갈린다. 각자가 의미를 두는 날은 조금씩 다를 수 밖에 없긴 하지만 벌써 결혼하고 세번이나 부부의 날을 지나치고 그걸 인식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건 나도 참 어지간히 무신경한 일이지만 신혼 때는 또 워낙 많이 다투고 감정이 오락가락이어서 부부의 날 같은 것은 신경도 못쓸만도 했다. 게다가, 매번 5월 14일에 바깥양반은 로즈데이라며 장미를 사오라고 하는 터라. 꽃을 산 것 때문에 그쪽이 더 기억이 뚜렷하다.
퇴근길에 바깥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래봐야 평일이니 역 근처에서 밥이나 먹는 정도다. 학교에선 일이 너무 바빠 정신이 없다. 점심시간에 의자에 앉아 한 20분 눈이나 붙였을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먼저 차를 두고 나왔다.
부부의 날이라. 바깥양반과 다투면 나는 자주 “기념일이고 선물이고 하는 것보다 부부로서의 도리가 우선 아니야?”라고 말을 한다. 바깥양반은 노는 것을 참으로 좋아하고, 스스로가 노는 것을 좋아하는 만큼 나에게 자유를 준다. 나는 그 덕분에 내가 하고픈대로 게임할 때 게임하고, 술 마실 때 마실 수 있다. 그런 만큼 집안 일은 대체로 내가 많이 한다. 창의성의 영역인 요리를 즐기는 것과 반대로 깔끔 피우는 성격이 되지 못해 설거지는 참으로 귀찮아한다. 그러나 바깥양반은 집에 오시면 누워있기 바쁘다. 내가 해야지 하면서 평소엔 별 생각 없다가도, 싸울 때면 시비거리가 된다.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 거라고 해도 넌 밥도 안하고 설거지도 안해?” 라는 말은 꽤나 잘 먹힌다. 도리.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면 도리를 다 했다고 할 수 있을까.
최근에 들은 한 강연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께서 모두에 밝히셨던, 환경 교과가 학교에서 채택되지 못하고 환경 교사를 채용하지 않는 것처럼 환경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사회적 노력보다 자본권력의 영향력은 지나치게 큰 것 같습니다. 아까 환경 교육을 더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지만 권력의 시스템은 훨씬 더 광범위하고 고도화되어 있습니다. 각 지역의 여러 단위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자본권력의 규모에 맞서는 환경운동은 항상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환경교육을 한다는 것은 그런 패배감을 항상 예비하는 것인데, 어떻게 그건 패배감을 마주하시나요?”
교수님은 웃으며 친절히 정성 들여 답변을 해주었고 그 요지는 이렇다. 거대담론에 포위된 운동이나 이론이라 해도 (1) 단기적인 변화나 결과를 두고 운동을 평가하지 말것. (2) Think globally, act locally를 넘어서서 rebuild locally의 문제를 고민할 것. (3) 행위의 문제를 넘어서 인식의 문제를 바꾸어나갈 것. 교수님 스스로가 환경교육의 전문가로서 수십년의 환경운동의 흐름과 실패의 경과를 잘 알고 내준 답변이었다.
부부의 날에 웬 환경운동 문제인가 싶지만, 부부관계라는 “답이 없는” 문제를 마주하기에는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산업사회의 이데올로기에 맞선 환경주의자들의 투쟁방향도 어느정도 쓸모는 있을법하다. 배우자와의 삶을 단기적인 시각으로 보지 말고, 비판보단 재건, 대안을 생각하고, 행위의 문제보단 인식의 문제를 본다면 어지~간한 부부라도 어느 정도는 화해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내가 생각하는 부부의 도리는 이런 것이다. 상대방과의 동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 해야 할 것을 다 했을까? 그러고 나서 상대방의 탓을 할까? 그리고 이때의 서로에 대한 도리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방식”을 넘어서고 “이쯤하면”의 기준을 넘어선 것이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문제를 초래한 그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내 판단기준에 갇혀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그러나 일반적으론 내가 훨씬 결혼에 책임감을 보이는 편이기에 이 수준의 논의가 오가기 전에 바깥양반은 손을 들고 만다.
"둘이 하나가 되는 날이라서 21일로 정한 거래."
"아하. 가정의 달이라 5월이고?
"응."
"그럴듯하구만. 나랑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평생 잘해라아아아."
저녁 메뉴는 탕수육이었다. 나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부부의날 기념 꽃다발을 샀다.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 보니...시시껄렁한 부부싸움보다 심각한 문제가 터졌는데, 욕조 배수구가 막혀서 한시간 동안이나 씨름을 했는데도 해결이 안된다. 아 참 거. 부부의 날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