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초 반달살이(1)
동백이는 70일이 지났을 무렵부터 밤에 엄마 아빠를 고생시키지 않았다. 그 무렵에 160ml를 마시던 아이는 이따금 180ml까지도 먹어가며 밤이 되면 5,6시간씩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내가 팔베개만 해 주면 그 안에 콕 박혀서, 열 많은 체질인 둘이서 붙어서 땀까지 흘려가면서도 고롱고롱 얌전히 잘만 잤다. 물론 아이가 자기까지 나는 밤이 되면 다른 거의 모든 일들을 포기하고 아이와 붙어 있었다.
100일이 되니 이제 통잠은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 되었다. 8시간의 통잠, 10시간의 공복도 아이는 버텨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하루 먹는 분유 양도 퍽 줄었다. 확고하게 통잠이 굳어지기 전까진 하루에 1050ml 이상 먹던 아이가 10시간의 공복을 가지면서 700ml에서 800ml 사이를 오간다. 어차피 때가 되면 수유량은 줄어들고 살도 빠지게 되어 있는 것을 공연히 바깥양반이 수유량 너무 빨리 늘리지 말자고 성화를 부리는 통에 제 때 수유량과 텀을 늘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일의 동백이는 200ml를 씩씩하게 비우고 천장이 떨어져라 코를 고는 아빠엄마 사이에서 잘도 잔다.
물론 잠에 대해 어려운 일이 없었을리가 없는 것이, 한 2주 전쯤부터 없던 잠투정이 생겼다. 졸려워하면 내가 팔베개를 해주면 이내 눈부터 감고 잠에 빠지던 아이가, 팔베개를 하자마자 빼애액 고래고래 울어재끼는 것이다. 왜 그러지?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 하며 한 일주일 멘붕을 겪다가, 100일 즈음 시작되는 잠투정에 대하여 잘 정리된 블로그 글을 읽고는 대응법을 알게 되어, 그대로 따르니 아아도 편하고 나도 편하다. 아빠 품에 안겨 깊은 잠에 빠질 때까지 편하게 해준 뒤 침대로 옮긴다. 미리감치 통잠을 자던 아이라, 그렇게 우리에게 동백이는 육퇴를 허한다.
복받았다고 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육아에 있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냥 더 많이 안아나 줄걸 그랬어."라는 직장 선배님의 한마디였다. 출산휴가로 수업교체가 많아서 선생님들 한분 한분께 찾아가 교체 동의를 얻고 다니는데, 친한 직장 동료가 먼저 원더윅스라는 것에 있으니 꼭 들어가서 읽어보라는 말을 했다. 알겠다고 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옆에서 40대 중반의 선생님께서 "우리 애도 정말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더 많이 안아나 줄걸 그랬어."라고 말을 거든 것이다.
정말로 나는 아이를 조리원에서 집에 들이고 나서, 그리고 6주차부터 시작된 원더위크에 정말 호되게 고생을 했는데 그때마다, 아이를 그저 꼭 안으며 버텼다. 새벽 내내 우는 아이를 달래려 거실에 나가 함께 밤을 지새면서도 그냥 다른 할 일이라곤 없었다. 안고, 아이를 마주보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냥 마땅히 이때 경험할 아빠의 성장통일뿐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그렇게 버텨낸 시간들에 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한 점은 나의 태평한 성격으로 나도 바깥양반도 스트레스는 크게 받지 않아왔으며, 어딘지 모르게 동백이에게서도 내 태평한 성격이 드러나보인다는 것이다. 단유 이후 분유를 두번 갈았으니 총 세번 분유갈이를 한 셈인데 아이는 수유를 거부한 적이 없다. 어디든 눕혀놓으면 잘만 잔다. 안아달라는 욕구를 누구에게든 낯 가리지 않고 잘 채운다. 한결같이 아이를 보살핀 부모의 노력 그 이상으로 아이의 유순한 천성이 있었다. 아이가 민감하고 몸이 병약했다면 지금까지 이렇게 태평하게 지낼 수도 없었을 뿐더러,
- 이렇게 속초바다가 내려보이는, 숙소에 도달할 순 없었을 테지. 100일을 갓 지난 아이를 데리고 말이다.
속초 여행은 11월에 결정되었다. 즉 나와 바깥양반은 한창 아이가 아이가 첫 원더위크를 넘기고 있을 때 호방하게도 겨울 여행 계획을 짰던 것이다. 그 즈음 바깥양반은 독박육아로 하루 하루 나의 퇴근만을 기다리며 힘든 육아와의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출산휴가로 생긴 수업폭풍에 다른 일을 돌볼 여력이 없던 시기다. 아이와 맞는 첫 방학이고, 임신과 육아의 스트레스에서 해방하고 싶은 나와 바깥양반의 소망은 높고도 깊었으니 두려울 것은 무엇이랴. 밤에 아이를 끼고 양쪽에 누워서 한 2,3일간 숙소를 심사숙고한 끝에 방학과 명절 일정을 고려해 날을 잡았다. 질러버렸다. 저질렀다. 해버렸다.
미친짓이라고 할만한 것이 무엇보다도 100일 난 아이에게는 챙겨가야 할 짐이 너무나 많다. 가습기가 가장 크고 중요한 물건인데 후배에게 선물받은 15만원이 넘는 물건인지라 쓸데없이 크고 둥근 모양새로, 수납이 퍽 까다롭다. 보름이면 기저귀만도 세 봉투는 필요한데, 그거면 큰 캐리어 절반이 찬다. 모빌도 챙겨야 하지, 범퍼의자도 챙겨야 하지. 육아는 원래부터 템빨에 템전인지라 아이를 여행기간 동안 편안히 보살피려면 뭐든 다다익선이다. 결정적으로 차에는 크드란 유모차가, 실린단 말이다. 보름 가량의 일정이니 엄마 아빠의 짐을 줄이고 줄인다 한들. 그렇게 억지로 차에 짐을 때려박았을 때의 상황은 사이드 미러를 볼 수 있는 각도를 위해 범퍼의자를 의자에 묶어서 고정시키고 그 아래 있는 백은 앞쪽으로 밀쳐야 했다. 조금 적응이 되고 나니 운전엔 하등의 지장이 없었지만, 이 지경으로 짐을 그득그득 채운 우리의 작은 차는, 그 자체로 유머의 소재였다.
문제는 여기서 아이는 세시간 가까이를 실려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그 작은 몸으로 고속도로 주행을 견뎌야 하니 얼마나 힘들까. 카시트가 아무리 튼튼하다 한들 달리는 차의 소음, 진동, 건조한 공기 등 모든 환경이 아이에겐 불편함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에 대해선 감내할 수 밖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병원이라곤, 엄마에게 옮은 감기로 한번 다녀온 것 외엔 딱히 없는 건강한 아이 덕을 다시 우리가 본다. 다시, 아침에 분유를 200ml. 그리고 두시간 가량 지나 출발했으니 소화불량 등의 트러블 걱정도 크지 않고, 자세만 편하게 잡아준다면야.
그리고 동백이는 그렇게 했다. 집에서 속초까지 세시간 가량을 한번도 깨지 않고, 조금도 울지 않고 조용히 와 주었다. 아마도 멀미로 인해 가수면 상태가 이어진 것이었을지. 카페에 잠깐 들렀을 때에도 눈을 휙 뜨더니 조용히 상황파악을 했을 뿐, 불편해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섯시간만의 수유와 기저귀갈이 뒤엔 또 잠시 컨디션이 좋아져서 배실배실 웃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물론 숙소에 다다랐을 무렵엔 또 잠투정을 잠깐 하긴 했지만, 차에서 내렸을 때 꼭 안고 마사지를 해주니 곧 곯아떨어진다. 오늘만 참아달라고. 숙소에 도착해서부턴 편히 쉬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할 뿐이다. 그래도, 힘들더라도 매일같이 똑같은 천장에 모빌만 바라보는 것은 낫잖니 딸.
숙소는 솔직히 너무나 좋다. 입실하는 그 순간부터 바깥양반은 입꼬리가 귀에 걸려 극도의 흥분상태였다. 하긴 또 그동안 너무 고생을 하기도 했지. 침실과 거실이 구분되어 있어 작은 평수에도 아이와 생활공간이 분리될 수 있는, 우리에게 최상의 조건에 두개의 창을 통해 상시 속초해변을 볼 수 있다. 비록 몇개의 건물이 앞에 있어 완전히 시야가 트인 것은 아니지만 그정도는 익스큐즈 되는 문제. 이 바다에 아이를 엎어서 한참이나 구경을 시키니, 아이가 식식대면서 나름 재미있게 관찰을 한다. 바다에게서 소녀에게로. 푸른 하늘 해의 목소리와 푸른 바다 해의 목소리가 아이에게 새 세상의 찬미가 되어주겠지.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나였다. 가뜩이나 짐이 많아 줄여야 할 판이었지만서도 드립세트를 챙겨와, 볶은지 이틀 밖에 되지 않은 원두를 갈아 내렸다. 나는 여행을 떠나오는 어젯밤에도 그 하루전에도 새벽 네시쯤에 잠에 들었다. 이제는 이런 생활을 받아들여야 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아이를 돌보는 것 자체가 너무 힘겨워서 다른 일에 눈을 돌릴 틈이 없었는데, 이젠 일을 미룰만큼도 미룬 판에, 체력적으로 조금 수월해진 구석이 있다. 조금 시간을 쪼개 쪽잠만 좀 자두면 1월 1일자로 마흔이 된 몸으로도, 밤샘은 제법 할만한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 나 역시 진작부터 내 고유한 힐링의 시간이 필요했고, 바다를 내려보며 내리는, 손수 볶은 원두의 향이라면, 이쯤 되면 괜찮은 보답이지. 아직도 숙소에 도착해서 신이 나 있던, 그 흥분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바깥양반을 보고 웃으며 커피를 내린다. 짐도 모두 풀었고, 필수품들이 모두 제 자리에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커피의 향이 함께하는 온전한 휴식의 시간이다. 이 한잔을 위해 100일을, 그리고 지난 20여일을 버텨온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치 100일을 버텨내, 아이의 통잠을 함께 일구었던 것처럼, 버티고 버틴 하루하루가 쌓여 작은 결실들은 모아진다. 휴가지만 바삐 지낼 일들이 남았다. 그런 이야기를 바깥양반과 나누며, 동쪽 바다에 깔리는 붉은 노을과 함께 저녁을 맞는다.
첫날, 우리의 보름간의 보금자리에 도착.
남경막국수
각 9,000원. 강원도 막국수답게 들기름막국수가 고기리와 달리 터프하고 투박함을 그대로 품고 있다. 메밀면은 찰기가 살짝 남아있으면서 두꺼워 씹는 맛이 좋다. 나는 물막국수를 먹었는데 동치미에 메밀, 황태육수가 조화를 이룬듯한 그 맛이 또 다른 막국수집들과는 차별화 되어 있다. 막국수가 9천원이라는 점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