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

겨울 속초 반달살이(2)

by 공존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는 말에 나는 상당히 공감한다. 미각은 학습에 의해 형성된다. 학습과 고민 없이는 천하일미여도,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대표적으로 커피가 그렇다. 로스팅을 시작한지가 2년이 되어가는 지금 내 커피 미각은 불가피하게 광범위한 재개발의 과정을 거쳤다. 맛을 알아야 콩을 고르고 볶을 온도와 시간을 정하지. 하루 하루 콩을 볶은 뒤에 맛을 보는 동안 커피의 캐릭터, 밸런스, 전미와 후미, 풍미와 아로마 등을 구분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전에는 마구잡이로 드립을 해서 내리던 것을, 이제는 적당히 끊어서 추출할 수 있게 되며 잡스러운 쓴맛도 잡아나갔다. 맛은, 알아야 볼 수도 있는 것. 그래서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콩을 평가하는 채점표를 만들어놓기도 했다.

근래의 대중화된 외식문화에 대하여 그래서 나는 꽤나 불만이다. 맛이 아니라 이미지를 소비하는 행동양태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인스타그램에 맛깔지게 찍혀진 사진을 보고 음식을 고르고, 줄을 선 모습을 보고 식당을 고른다. 그리고 가격과 대중적 인기에 의해서 맛을 평가한다. 미심쩍은 것 같아도 맛이 없는 것 같아도, 이만큼 사람들이 와서 줄을 서서 먹고 사진을 찍어올리니 맛있다고 '느낀다'.


관광지인 속초 역시 다르지 않아서 사람들이 찾는 곳은 그간 익히 알려진 맛집들, 그곳에 물론 나도 한번씩은 가 보았다. 10년 전쯤 봉포머구리집이 원래 자리에 있을 때는 지역주민이 주로 찾는 맛집이었는데 두번 이사를 거쳐 대기업이 된 지금 그때의 맛을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찾는다. 만석이나 중앙닭강정보다 북청닭강정이 맛이 좋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북청은 아직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미각이 주관적인 것이긴 하지만, 주관에 대한 판단은 세심하고 예리하면 좋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으로 나의 배와 영혼을 채울까 하는 문제에 대해선,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발굴한 맛집은 정말로 나이스한 선택이었다. 강릉 정동진의 항구마차처럼, 당연히 속초에도 홍게칼국수 하는 집 정도는 있겠지 하고 찾은 곳이 쏘 나이스. 25000원짜리 홍게살전은 홍게와 계란과 밀가루의 비율이 7:2:1정도로, 발라낸 홍게 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처음 메뉴판을 보았을 땐 허름한 가게의 내외관과는 판이하게 다른 비싼가격에 뜨악했으나 막상 실제로 먹어보니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 해산물은 자고로 잡내가 나지 않아야 하는데 이 큼지막한 홍게전에서 꼬름한 냄새란 나지 않는다. 싱싱하다는 증거.


이어진 라면과 칼국수는 각 10000원에 게살이 풍부하게 들어간다. 특이하게도 가게 사이즈가 작아 한 냄비에 하나씩만 조리를 해서 나오는 식이라, 칼국수 두개와 라면 두개가 3분에서 5분 간격으로 네번 각각 나왔다. 작은 사이즈로 오래 장사를 해온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런 부분은 서비스에서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지만 노포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리 마이너스가 되진 않을듯. 다만 추운 날씨에 문가에 앉은 우린, 한번씩 문이 여닫힐 때마다 눈쌀을 찌푸리긴 했다. 편하게 먹고 가기엔 몇가지 단점이 남아있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추천을 하라면, 아낌없이 칭찬을 퍼붓고 싶다. 홍게가 발라먹기는 또 워낙에 번거로운 녀석인데 이정도로 풍성하게 살을 발라내서 준다는데. 이건 못참아야 정상이다. 게다가 칼국수엔 감자를 얇게 저며 넣는 디테일. 라면엔 홍게몸통을 토막쳐서 무친 반찬을 곁들이로 올려주는 디테일. 말 그대로 '아마이'다운 맛집이지 않은가.


내가 맛집에 대해 갖는 개인적인 기준이 있는데 줄 서서 먹는 맛집인데도 카운터 옆에 공짜 커피믹스 자판기가 있으면 진짜 진짜 좋은 집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후식으로 드실 수 있도록 공짜 커피를 두는 것인데, 낡은 전통이지만 그만큼 장사를 오래 했고 또 손님들을 배려하는 기본 자세를 갖추었다고 볼 판단기준으로 제법 쓸만하다. 요즘처럼 맛집들이 삽으로 돈을 퍼담는 세상에 커피믹스 자판기 관리비나 단가는 쥐오줌만큼의 부담도 되지 않으니, 그런 집에선 굳이 나도 믹스커피를 한잔 뽑아서 몇 모금 마신다. 그리고 가게 주변을 한바퀴 둘러보면 나의 맛집투어도 완성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마이홍게의 경우 자판기 커피믹스가 없었다. 마이너스. 그런데 가게 앞 풍경이 정말 너무나 아름답다. 또다시 마이너스 추가. 이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달달한 커피 한잔을 마시면 얼마나 행복하고 기분이 좋을까. 100점 만점에 마이너스 2점 해서 98점.


맛에 대해선 스스로의 기준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기에 다른 이들의 맛집 추천을 고려하는 바도 있지만 내가 알아서 찾아가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 그것이 뿌듯하고 성공률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내가 만들어서 내 입맛대로 먹는 게 아닌 한은 남의 입맛에 내 혀를 내어주는 것이고, 그런 경우 맛은, 전적으로 나의 혀에 기대기보단 가격이나 양, 분위기 등 여러가지 문제가 고려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맛을 모르지만 유명세에 따라 맛있는 음식이라고 스스로를 현혹할 때도, 몇가지 불편하고 부족한 부분에도 음식맛 한가지에 집중해서 내 개인적인 콜렉션에 넣어 둘 수도 있는 것이다.

먹어본 자가 맛을 안다는 관점에서, 백일둥이를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것은 인생이란 것을 제대로 맛볼 수 있도록 미리감치 경험을 시켜두는 측면이 조금 있다. 얼마 전에 아버지랑 통화를 했을 때 내가 예닐곱살에 무주 구천동에서부터 덕유산 정상에 올라갔던 이야기를 또 한번 한 적이 있는데, 어린 시절에 갖는 그런 경험 하나가 두고두고 가족이나 등산, 도전이라는 문제에 대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생각을 품을 수 있도록 밑바탕이 되어준다고 어른이 되면서 점점 느낀다.


아이에게 멋진 인생을 살아가도록 영어유치원, 비싼 과외선생님, 좋은 학교 같은 것을 우리 멋대로 미리 깔아두거나 강제할 생각은 없다. 아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미리 여러가지를 경험시켜두면 언젠가 기억으로 남아, 그리고 사진에 의존해, 자기의 경험의 질료로써 그것을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쯤이 되면 아이는 음식에 대해서, 여행에 대해서, 말고도, 책에 대해 공부에 대해 직업에 대해 삶에 대해...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한 터에, 우리는 아이에게 이런 저런 기억거리를 만들어둔다. 하루하루 힘 닿는 한도까지는.

그 사이에 바깥양반 친지 부부가 손님으로 찾아왔다. 점심을 홍게로 먹고 저녁은 함께 중앙시장에서 회와 닭강정 등을 사와 배부르게 먹었다. 제주도에 즐비한 오션뷰 카페 한곳, 학사촌 한옥마을 카페 한곳을 들렀다. 오션뷰 카페는 사람이 붐비고 한때 핫했던 한옥카페는 그럭저럭 사람이 오간다.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회를 사기 위해서는 결국 다시 타인의 맛집 경험을 빌려야 하는데, 아는 맛이라고 해도 모두 같은 맛이 또 아니다. 수십개의 닭강정과 수십개의 횟집들이 중앙시장 한군데에만도 몰려있으니 이처럼 복잡한 세상에선 더욱 나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하기란 쉽지가 않다.


해결책은 하나인데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을 회의하며 질문 그리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



너울집

속초 초입의 학사촌 한옥마을에 있어 보통은 속초에서 빠져나가는 날 머물다 간다. 한 때는 핫했던 카페. 솔잎모히또를 마셨는데 솔향은 별로 진하지 않았다.

아마이홍게

나는 이런 집이 정말 맛집이라 생각한다. 저녁에 손님이 들지 않으면 일찍 문을 닫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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