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초 반달살이(3)
아침을 차린다. 계획적으로 전날 저녁거리를 살 때 아침 메뉴를 준비해뒀다.
양양에 매우 훌륭한 순대국집이 있다. 별미순대국집이라고, 기술을 가르쳐서 체인점도 몇 곳 낸 집이다. 그중 하나가 직장 바로 근처에 있어서 나의 슬기로운 검색능력으로 찾아가보고, 너무나 만족을 했다. 그래서 직장 동료들을 데리고 여러번 갔고, 지금은 우리 직장에선 "아 그곳?" 하고 다들 알 정도로 사랑 받고 있다.
양양 인근의 속초에도 분점이 있는데 그 맛이 그대로라 꽤나 평가가 좋다. 전날 술국 하나, 순대 하나를 포장해왔고 아침에 나는, 다른 숙소에서 묵고 아침을 먹으로 넘어올 바깥양반 친구 부부를 기다리며 혼자 순대국도 데우고 따로 사 둔 오징어순대 역시 계란물을 묻혀서 부쳐둔다.
그런데 첫번째 문제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가 완벽한 2인용이라 테이블도 식기도 부족하다. 불가피하게 4인 겸상을 포기하고 협탁에 하나, 싱크대 옆 작은 식탁에 또 하나. 이렇게 2인 상을 차려 둔 것이다. 오징어순대는 바깥양반 꺼.
이 별미순대국의 경우 맛의 비결은 사골육수가 아니라 고기육수다. 그래서 진하고 달달한 맛이 난다. 사골을 안쓴 경상도식 돼지국밥을 생각하면 되는 맛인데 여기에 선지를 넉넉히 넣은 수제순대가 들어가 시원한 맛이 일품.
두번째 문제는 동백이다. 넷이서 후다닥 식사를 마치고 나가야 하니 아이는 혼자서 누워있거나 해야 하는데 보통의 경우는 바깥양반과 내가 번갈아 먹거나 내 무릎 위에 아이를 앉히고 먹는데, 지금 그 두가지가 모두 어려운 상황. 그런데...생각보다, 혼자서 잘 노셨다. 이렇게 아침식사는 그럭저럭, 아니 그럭저럭 이상으로 상쾌하게 해결. 설거지도 하지 못하고 후다닥 짐들을 챙겨 숙소를 나선다. 친구부부와 하루를 보내고 서울로 다시 보내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바깥양반의 친구 부부 중 남편쪽, 나보다 두살 손위의 형은 네이버 파워블로거다. 기본적으로 하루에 1500명 정도 방문객을 유지하고 있는데 동네 김밥천국까지 세세하게 평을 하는 사람. 그래서 마케팅 제의도 퍽 많이 들어오는 편인데 현재까지 한번도 응하지 않았다. 블로그를 시작한 동기가 부부의 일기장 같은 느낌으로 일상기록을 써내려가기 위해서였는데, 그것이 어쩌다 성실성과 정직함으로 영향력까지 갖춘 케이스. 그런데 말 그대로 일상기록물이기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는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맛집이나 좋은 공간을 찾는 감각은 다소 부족함이 있다. 속초의 명물인 칠성조선소에 아직 와보지 못했다 하여 함께 왔다.
그러니까...사람 중엔 이런 경우도 있다. 성실함과 끈기가 주변으로부터 인정을 받아, 그것으로 상당한 가치를 창출하게 되었는데도 본래의 자기 색을 잃지 않는다. 여기에서 조금만 재주를 부리면 확확 더 큰 기회가 올 수도, 더 큰 수익이 창출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 길이 최선일지 모르겠다. 하나를 파고 들어간다는 것은 그 목적지를 정하여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방향을 지켜가는 것인데, 눈 앞의 작은 유혹에 자신을 합리화하며 이리 저리 핸들을 돌리는 것은, 아무래도 현명하지 못한 처사.
칠성조선소에서도 그런 느낌을 조금 받았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본래 카페공간으로 활용되던 본관이 서점 및 소품샵으로 바뀌었고 배를 만들던 2층 건물을 카페로 바꿨다. 칠성조선소가 처음 카페로 오픈했을 무렵부터 옛 대형장비들을 전시해 두는 등 본래의 공간성을 간직하려는 시도가 엿보기인 했지만, 아니 이정도로 핫플레이스가 된 마당에 수용인원을 늘릴 생각은 안하고 문화공간으로? 돈을 벌 생각이 있긴 한 걸까.
어떤 점에서 형은 그러니까 칠성조선소를 닮은 셈인데, 그런고로 칠성조선소 역시 쏟아지는 유혹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색을 지키려는 점이 경외스럽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세상에 많고, 그러한 가치기준은 개인들의 사정에 따라 판단되는 것은 아닐 테다.
배를 꺼트린 다음 식사를 위해 청초수물회에서 포장을 해 왔다. 맞수였던 봉포머구리집이 본래 자리로 옮기면서 나 홀로 청초호의 독보적 강자가 된 집이다. 지역에 하나씩 있는 대기업 수준의 맛집인데도 나는 그간 속초에서 물회를 먹는다면 그냥 봉포를 찾곤 했던 터라, 청초수는 이번이 처음.
두곳 다 철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집이지만, 또 이렇게 자신의 변한 모습에, 더 큰 성장의 기회에, 그것에 발맞추어 덩치를 키운 맛집들을 보니 새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지역맛집들이 외지인에게 알려져 몸살을 겪는 일이 많다. 이를테면 대전의 성심당은 전국구빵집이 된 지금도 대전 중앙로의 교통이 개선될 여지가 없어 명절 때면 본점 인근의 교통이 꽤나 골치다. 이곳저곳 대전에 분점을 내서 인파를 분산하고 있긴 하지만 대전역에서도 가까운 본점과 케익부티크는 그야말로 북새통. 봉포나 청초수나 예전 그 모습으론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하지 못했을 테니 그것을 그대로 두어도 문제다. 이쯤되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오롯한 자세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미련한 일이라고 해야할지 말이다.
나는 꽤나 이것저것 호기심이 동하면 해보는 편이라 형이나 칠성조선소처럼은, 안될거야 아마.
칠성조선소+청초수물회
다 알만한 곳이라 설명을 할 것이 없다만 칠성조선소의 경우 원두는 그냥 그랬다.
배 만들던 곳에서 뭐 화려한 원두가 나오면 그것도 문제긴 하지...